"요즘 연극쟁이들, 치열함이 없어"

연극은 다른 장르에 비해 기록으로 남기가 쉽지 않은 예술이다. 요즘은 주요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기본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비디오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불과 수 년 전만 해도 연극은 그냥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하기야 1950년대 이후만으로 국한해도, 한국 영화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몇몇 작품들도 원본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연극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기껏해야 “아, 그 때 그 작품은 누구누구가 만들었지”하는 정도다. 그것도 영화나 TV에 비해 관객이 적고, 기간도 짧아 내용이 정확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더구나 그것이 무대 뒷이야기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연극계 중진인 유용환(66) 실험극장 상임 자문위원이 한국 연극 50년을 증언하면서 펴낸 ‘무대 뒤에 남은 이야기들’(지성의 샘 발행)이 주목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광복 후 1세대 연극 기획자로 꼽히는 유 자문위원은 이 책에서 고등학교 연극반 시절부터 대학 극회, 60년 극단 실험극장 창립 동인, 80년부터 95년에 이르는 한국연극협회 감사 및 사무국장, 82~84년 국립극장 기획위원 등을 거치면서 겪거나 듣거나 느낀 것을 담담하게 썼다.

“연극하는 사람들 흔적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무대 위에서 지나가버리면 없어지기 때문이지. 그래서 흔적을 남기려고 한 것이야. 요즘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아. 모두 깍쟁이가 되어버려 그렇지. 연극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되고 있어. 이해관계에 밝다는 것이지. 그래서 실수한 이야기를 하면 자칫 프라이버시를 건드린다며 반발해 참 조심스럽게 돼. 60, 70년대에는 낭만적이어서 그랬을까, 실수가 나와도 서로 웃고 지나갔지.”

연극인들의 아지트격인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뱉는 그의 말에서는 쓴 커피보다 더 진할 듯한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책 내용은 거의 다가 직접 체험한 것이고 그 외의 것은 연극계에서 전설처럼 전해 오는 이야기들이야.”

극작가 노경식은 이 책을 한국 현대연극의 ‘연극유사(遺事)’ 라고 했다. 지난 50년 동안의 그의 연극인생에서 매우 솔직담백하고 확실한 살아있는 역사이며, 따뜻하고 재치 있고 심성 고운 필치로써 엮어낸 동시대 연극인들의 숨어있는 진솔한 야사(野史)이기 때문이란다. 유민영 단국대 교수는 이렇게 평했다.

“멀리 극단 신협 이야기에서부터 88년 서울 올림픽 때 동구권 연극단체의 내한 공연까지의 뒷이야기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엮은 것은 이번 그의 책이 유일무이하다. 그런데 이 책이 주목되는 것은 그의 탁월한 기억력에서 나온 정확성과 함께 현대 연극사의 배경을 틀리지않게 서술한 점이고, 동시에 문장의 유려함에서 찾을 수가 있겠다.”

책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나 연극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단지 비사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우리 현대 연극사의 한 단면이다.

그는 기획자다. 처음에는 연기자로 출발했지만 곧 무대 밖의 일로 40년 이상을 보냈다. 아니, 지금도 보내고 있다. “기획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었지. 68년 현대극장 김의경 대표가 미국 유학을 가면서 급히 극장 맡길 사람을 찾는데, 걸려들었지. 무대에 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단 운영도 재미있다. 너의 적성에도 맞는다. 뭐 그런 유혹에 넘어간 거지.”

그는 스스로를 주변머리가 없다고 했다. “연극협회 사무국장을 10년 넘게 지냈어. 4명의 이사장을 모셨지. 이사장이 바뀌면 사무국장도 바뀌게 마련인데, 얼마나 주변머리가 없으면 계속 있었겠어.”

'아무나' 하는 연극이 하향평준화 불러

주변머리가 없어서인지 그의 말은 직설적이다. 먼저 요즘 연극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60, 70년대보다 하향 평준화했어. 중ㆍ고교 교육과 비슷하지. 대학에 연극영화과가 너무 많아. 전국에 50군데가 넘는다더군. 1년에 졸업생이 2,000명이 넘고. 그러다 보니 연극계가 이들을 제대로 소화 못하고, 당연히 질 저하를 가져오지. 연극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하향 평준화를 초래한 것이지.”

누구나와 아무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연극 정신이지.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오로지 모든 것을 연극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지. 그럼 연극이란 무엇인가. 흔히 연극을 인생의 재현이라고 하는데, 평범한 인생은 연극이 안 된다고 생각해. 독약보다 독한 약을 극약이라고 한다면 인생의 극약을 늘어놓는 것이 연극이야.”

그러면서 민감한 돈 이야기를 지나가는 듯이 무표정하게 꺼낸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배우든 연출자든 돈 받는 것을 수치로 여겼지. 혹시 관객이 많아 제작자가 금반지라도 만들어 돌리면 다음 연극 때 제작비에 보태라며 돌려주기도 했지. 그런데 이제는 배우가 캐스팅을 조건으로 지분까지 요구하는 시대가 됐어. 돈은 물론 필요하지. 하지만 돈을 앞장 세우면 안되지.”

아니 때가 어느 때인데, 연극은 배를 곯으면서 하라는 말인가. 그는 가난한 것은 연극인의 운명이라고 잘라 말한다. 연극은 어차피 일회성이다.

600~700석으로 한정되고, 직접 무대에 서야 한다. 영화처럼 동시에 할 수도, TV처럼 한번에 수백만 명에게 보여 줄 수도 없다.

그래서 가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습장소에 그나마 성의 있는 친구 분들이 사탕봉지라도 사 들고 들어오면 구세주였다. 누군가 우리 총 출연자들에게 수고한다고 국수를 사준 적이 있었다. 비록 국수 한 그릇이었지만 그렇게 그 사람이 돈 많아 보이고 고마워 보이고 저런 사람이 있는 한 우리 연기자들은 열심히 연극해서 보답해야 한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다짐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당시 우리가 연극운동을 한다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인기를 끌기 위해서 그런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고, 오직 하고 싶다는 의욕만으로 맨 주먹으로, 빈 주머니로 뭉쳤다.” 배우 여운계는 60년대 초를 이렇게 회상했다.

바로 그 때문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시민들이 연극을 후원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극이 살아 남지 못해 선진국들은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단다.

자연히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로 향한다. “우리는 지원종류는 많은데 실질적 지원액수는 적어 지원 받아 공연 후 빚을 지는 극단도 적지 않아. 지원단체나 편수는 줄이더라도 충분하게 지원해야 돼.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지. 그래야 제대로 된 연극이 나오고, 연극이 발전하게 되지. 지원금에 맞춰 만들어서야 좋은 연극이 나올 수가 없어.”

그는 한 마디로 ‘독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술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질적으로 같지 않다. 그 차이 나는 만큼 지원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잘하는 단체는 계속 잘 하도록 북돋워주고, 엉터리 구단은 도태 시켜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다같이 빈곤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 TV 영화 쪽하고 연극하고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상대적 빈곤의 심화지. 그러니 재능 있고, 뜻 있는 연극인이 연극 무대를 떠나 진정한 의미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야.” 국가나 지자체 등이 연극에 대해 지원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뮤지컬에 아쉬움

수년 전부터 붐을 일으키고 있는 대형 뮤지컬에 대해 물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요즘 재벌이나 재력가의 뮤지컬 시장 진출을 보면 혹시 이들 재력가들이 뮤지컬 시장을 지배하면서 희희낙락하며 시장을 신나게 요리할 때 그 동안 고생해온 연극이나 뮤지컬인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뒷전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다 보기만 하는 결과가 오지나 않을까 걱정이야.” 뮤지컬 시장규모는 연 1,000억원에 이른다. 본토 뮤지컬 도입은 물론 필요하지만, 쓸데없는 경쟁으로 값만 올려놓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20만원을 넘는 관람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어이가 없어. 너무 심해. 한국이 봉이 된 느낌이야.”

방송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뮤지컬을 공동 제작하는데, 이런 예는 우리나라에만 있단다. 재벌이나 재력가들이 직접 뛰어드는 경우도 없다.

후원이나 투자에 국한한다. “기업 윤리 문제지. 오늘날 상황을 보면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70년대 재벌들의 아이스크림 제조에 밀려 거리에서 리어커를 몰고 호구를 연명하던 아이스크림 장수들이 일시에 사라져버린 현상이 자꾸 연상돼.”

극작가로는 윤대성 이재현 등이, 연출로는 오태석 허규 이기하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스태프는 너무 많아 거론하기 힘들다. 배우는 김동훈을 최고로 친다.

분석력이 뛰어나 연기에 실수가 없는 선천적인 배우였다. 이낙훈도 마찬가지다. 여배우로는 김혜자와 여운계 등이 얼른 떠오른다.

김혜자는 지금은 끊었지만 줄 담배였고, 여운계는 공연 중에도 잠을 잤다. 에피소드가 많은 만큼 연기도 일품이었다. 이들의 연기는 관객들 넋을 빼기에 충분했다.

흔히 이런 종류의 인터뷰에서 그렇듯이,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당장 돌아온 답이 날카롭다. “요즘에는 눈에 들어오는 배우가 없어. 예전에는 수는 적었어도 좋은 배우가 많았지. 연극은 굉장한 지능과 체력이 요구되는 예술이야. 머리가 좋지 않으면 못하지. 무대 위의 지성이 관객의 그것을 압도해야 연극이 재미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관객이 무대를 깔보면 연극이 안돼. 연극은 몸을 재료로 해서 하는 예술이니 만큼 열심히 단련해서 좋은 연기, 아니 그보다는 알맞은 연기를 보여주어야 해.” 한 마디로 연극의 성취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연극에 바쳤지만, 그는 요즘 연극을 거의 보지 않고 있다. 앞으로 계획도 백수로 보내는 것이다. 그만큼 연극을 사랑하는데, 이에 못 미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 분노의 표현일 것이다.

그는 연극계에서 유명한 술꾼이다. “술을 떼면 연극이 안돼. 암만 가난해도 술 값은 어떻게든 마련했거든. 이따가 한 잔 해야지?”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