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정제된 아름다움 공유하고 즐길 수 있게 해야"

올해 클래식 음악계의 히트상품을 꼽는다면 예술의 전당 ‘11시 콘서트’가 단연 앞 자리에 선다. 지난해 9월에 시작해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오전 11시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이 콘서트는 첫 회를 제외하고는 매번 전석 매진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관계자들도 놀랄 정도다. 그래서 ‘클래식 공연의 혁명’ ‘국내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역사’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붙고 있다.

이 콘서트는 전적으로 김용배(51) 사장의 아이디어다. 그가 선곡에서부터 연주자 선정, 섭외, 진행까지 모든 것을 맡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인 김 사장은 ‘11시 콘서트’ 이야기가 나오자 ‘연주자론’부터 말을 풀어나간다.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좋다고 생각하는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연주가의 임무입니다.

자신은 네모라고 생각하는데 청중이 세모로 받아들여서는 안되죠. 클래식은 너무 어렵고, 지루하고, 귀족적인 별개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클래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캐주얼과는 다른, 정장했을 때의 기분과 같습니다. 정제된 아름다음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11시 콘서트’가 성공한 데는 오전 11시라는 시간대가 큰 몫을 했다. “음악회는 저녁이라고 하는데, 아침에 해도 내용이 좋은 음악회는 사람이 올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시간이면 연주회장도 비어있으니까 사각 지대를 공략하는 것도 되죠.”

주부를 대상으로 한 전략이 주효한 것 같다고 하자 대번 손사래를 친다. “당초 주부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시간대로 볼 때 주부가 많지만, 그건 말이 안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 500명만 오면 그들을 다시 오게 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회에 1,200명이 몰렸고, 2회부터는 매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만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남성들이 기피할까 우려됩니다.” 그는 ‘제발’ 주부 대상이라는 표현은 말아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클래식은 조금만 알려주면, 조금만 알게 되면 자꾸 빠져드는 세계입니다. 마치 늪과 같습니다. 관중이 좋아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유행인 ‘블루 오션 전략’은 결코 아니라고 또 한번 강조했다.

국내 연주가 이미 세계적 수준

좋은 음악이 있으니까 관객이 몰린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국내 연주자나 관객들의 수준을 높이 평가한다. “국내 연주자 수준은 세계적입니다.

스타 바로 밑의 A급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연주자는 기피하고, 외국 연주자라면 B급이라도 비싼 돈을 지불합니다.

국내 연주자만으로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김 사장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연주자만을 고집한다. 잠시 귀국한 연주자는 제외한다.

선곡은 약간의 설명만 곁들여진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곡을 중심으로 한다. 그렇지만 한 껍질 벗기면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클래식 대중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오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설탕을 발라서 주면 설탕만 빨아먹습니다. 오이의 참 맛을 모르게 되는 것이죠. 언젠가 오이 맛을 알게 해야 합니다. 쉽게 만들어 들려 주는 것 보다는 해설의 도움을 통해 그 자체를 즐기게 해야 합니다.”

클래식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직접 해설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김 사장은 특유의 조리 있는 말 솜씨와 해박한 음악 지식으로, 명 해설자로 꼽힌다. 해설의 주안점은 크게 두 가지다. 선곡 기준과 같은 맥락이다.

하나는 대중적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으로, 너무 쉽게 끌어내리지 않는다. 두번째는 교육적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적이면 금방 실증이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메뉴’를 한번 살펴 보자. 10월에는 베토벤의 ‘레오노레’ 제3번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5월의 아름다운 어느 날과 같이’,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바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등이었다.

12월에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제8번, 치마로사의 오보에 협주곡 C단조, 보로딘의 오페라 ‘이골 공’중 ‘플로베츠인의 춤’, 포레의 ‘파반느’,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 등이다.

국내 정상급 지휘자 이대욱, 강석희, 김경희, 장윤성과 솔리스트들이 강남심포니, 코리안심포니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여유 시간에 폼 잡으며 가볍게 들을 수 있는 곡들하고는 거리가 멀다.

‘11시 콘서트’의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1만5,000원이라는 중저가라는 점이다. 균일 가격이어서 선착순으로 좋은 좌석을 차지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차등제를 요구하나 김 사장이 반대하고 있다.

클래식이 대중을 찾아가야 할 때

가격에 대해서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요즘 음악회 가격을 보면 화가 날 정도가 아니라 적대감까지 생긴다고 했다.

비싸야 잘 팔린다는 생각은 무척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으로, 구조적인 문제다. 티켓 값은 내려야 하고, 또 내릴 수 있다. 거품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값 싸고 좋은 공연이 찾아 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제는 청중들의 의식이 중요한 때입니다.”

“콘서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특별한 아침의 신선한 감동, 클래식으로 만나는 상쾌한 아침, 모닝 커피처럼 감미롭고 진한 클래식의 유혹에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초대는 계속 유효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 동안 경험으로 보아 클래식 팬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한 주부는 이런 편지를 보내 왔다.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조금 전에 들었던 음악의 CD를 샀습니다. 저녁 때 아이와 남편에게 들려줄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가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청중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좋은 것을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저변을 확대해야 합니다.” 그가 중저가를 고집하는 중요한 이유다.

콘서트를 처음 시작할 때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만큼 된 것이 아니라, 사전 기획단계부터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있었다.

들인 노력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라고 했다. “순수 예술이 가야 할 길은 대중음악과는 다릅니다.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합니다. 항상 같은 마음으로 해야 겠죠.” 그는 ‘항심(恒心)’을 강조했다.

그가 지난해 4월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사장에 취임하자 주변에서는 깜짝 놀랐다. 본인도 처음에는 놀랬고,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단다.

“공연장을 예술을 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 임명권자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장이 예술을 안다는 것이 경영이나 행정을 잘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술이나 경영이나 최종 목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나머지는 부수적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의 경영방침은 간단하다. 관객들은 가장 좋은 분위기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예술가들은 가장 좋은 상태에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감상과 창조의 조화다. 우선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이 실력 있는 예술가를 발굴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올해 처음 실시한 교향악 축제 협연자 오디션 등이 그런 노력의 하나다. “간단한 일 같지만, 실제 해 보니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김 사장은 물러날 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을 작정이다. 자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격렬하게 일하고 떠나고 싶을 뿐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滴水穿石’(적수천석)이라는 액자가 걸려있다. 물 한 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라는 의미로, 끊임없는 노력을 하라는 말이다. 젊은 시절 한 선배가 써준 것으로, 이를 그는 사무실에 둘만큼 마음에 새기고 있다.

예술은 부와 명예의 수단이 아니다

젊은 예술가에게 주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확실하다”였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술을 부와 명예를 위한 매개로 삼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절대’를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예술가보다는 교수가 되겠다는 젊은이가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100을 목표로 하면 절대 100에 못 다가가는 것이 예술이어서, 무한대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예술가를 볼 때마다 우직한 소처럼 앞만 보고 노력하는 모습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

그 자신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강제로 시켜서 피아노를 시작했다. 전공 학생 못지않게 연습이 힘들어 어머니와 갈등도 많았다.

음악이 좋았지만 대학에서는 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피아노에서 멀어질 수가 없어 대학 4년간 열심히 피아노를 파고 들어, 대학원에서는 피아노를 택했고, 유학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작곡가를 특히 좋아하고, 어떤 작품을 자주 연주하느냐는 우문을 했다. 어느 작품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에는 아직 어린 것 같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연주자란 모름지기 모든 작품을 나름대로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한번 우문을 했다. 클래식 감상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무조건 많이 들어야 한단다. 그래야 깊이 보인다고 한다.

대학 4학년 때 졸업논문을 두고 3월부터 고민만 했다. 그때 한 선배가 충고했다. “일단 써봐. 쓰면 생각이 나.” 클래식도 마찬가지란다.

‘11시 콘서트’는 히트 상품답게 음악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지에서 이를 본 딴 공연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같은 공연들이 클래식이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