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 실제주인공 은퇴

쫓는 자보다 쫓기는 자가 더 조급하고 허점을 쉽게 드러내는 법이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달랐다. 그런 범인의 꼬리를 쫓아 평생을 바치다시피 한 베테랑 형사는 이제 수갑을 놓게 됐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실제 주인공인 하승균 경정(59ㆍ경기지방경찰청 수사지도관)이 11월30일 오후 후배 형사들에 대한 고별 강연을 끝으로 34년 강력계 생활을 마감했다.

정년 퇴임을 8개월 여 앞두고 있지만 범인도 못 잡으면서 나라의 녹을 먹는 게 부끄럽다는 이유로 옷을 스스로 벗었다.

1971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하 경정은 ‘광주 여대생 공기총 피살 사건’과 ‘포천 농협 총기강도 사건’ 등 국민의 시선이 쏠린 큰 사건들을 잇달아 해결하면서 경찰 내 최고의 ‘사건통’으로 명성을 날렸다.

2003년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남긴 수사 일지와 사건 자료 등을 토대로 자전 에세이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를 펴내 화제를 모았다.

“30년 동안의 외근 형사 생활은 성공적이고 보람도 있었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평생의 한이 될 것입니다.”

하 경정이 화성에서 얻은 ‘실패의 추억’이 얼마나 가슴 깊이 패였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고별사다.

하지만 “형사는 범인 검거 결과로 말하는 것”이라는 당부를 귀담아 새긴 후배 형사들이 자신의 한을 언젠가는 풀어주기를 그는 떠나서도 기다리지 않을까.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