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 퇴치 '희망의 불' 될겁니다"

간염은 국민병이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1명은 B형이나 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다. 특히 B형 간염은 치명적인 간 손상을 일으키는 각종 간질환의 주범이다.

450만명에 달하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중 3분의1 정도는 간경화나 간암으로 악화하여 끝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85년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시작한 이래 10세 이하에서의 감염률이 1% 선으로 뚝 떨어졌고 최근 들어선 대표적인 치료제인 인터페론 이외에 제픽스, 헵세라 등 부작용 발생은 적은 반면 치료 효과는 월등한 신약들이 속속 개발되어 치료율을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숙제도 남아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 치료제는 복용을 중단하면 바이러스가 곧바로 증식을 재개할 뿐만 아니라 약에 대한 내성을 가진 변종 바이러스가 출연하여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그것이다.

“B형 간염에 대한 새로운 항바이러스 제제인 클레부딘(Clevudine)을 300명의 환자에게 6개월간 투여 후 6개월간 추적 검사한 결과, 복용을 중단하더라도 6개월 이내 바이러스 증식이 없었고 내성을 키운 돌연변이 바이러스 출현도 없었습니다.”

B형 간염 및 간암치료 권위자

지난달 14일 오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제56차 미국 간학회 회의장 장내가 갑자기 술렁거렸다.

서울삼성병원 암센터 유병철 소장(53ㆍ소화기내과 교수)이 새로운 B형 간염 치료제인 클레부딘에 대한 3상 임상시험(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신약의 효능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과정) 결과를 공개하자 전세계에서 몰려온 간질환 권위자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 소장이 발표한 내용이 그 동안 내로라하는 간질환 대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어도 못 푼 숙제를 일거에 해소한 낭보였기 때문이다.

현재 치료에 쓰이는 개량 신약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후 시판을 기다리는 최신 치료제라는 것들도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만 있을 뿐, 장기간 투약하거나 약의 복용을 중단하면 내성을 가진 더 강력한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들던 터였다.

이날 미국 간학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유 소장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B형 간염 및 간암 치료 권위자다.

1999년 한국산 다람쥐에게서 새로운 파보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으며,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 변이 연구 성과와 간암에 대한 고주파 시술 실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을 갖고 있다.

클레부딘에 대한 국내 라이선스사인 부광약품의 의뢰로 1998년께부터 국내 임상시험을 주도해왔다.

“그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만, 현지의 반응은 상당했습니다. 신약에 대해 대규모 임상시험을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진행한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입니다.”

국내에서 주도한 이번 임상시험은 그 자체가 전세계 간학계의 뉴스거리일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는 유 소장은 연구 결과가 미국 간학회 발표 의제로 채택된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보기 드문 일이었던 만큼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을 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우수한 연구인력과 의료 인프라를 갖춰져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지난달 1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간학회에서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유병철 소장이 B형간염 새 치료제인 클레부딘에 대한 임상시험 결과를 구연발표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수천 명의 환자와 자원자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험을 통해 기존 약물에 비해 효능이 뛰어난 반면 부작용은 적다는 것을 입증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약 1개당 평균 15년의 개발기간과 2억 달러의 개발비용이 소요된다는 것만 봐도 그 어려움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신약에 대한 대규모 임상시험은 대부분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와 첨단 의료 인프라가 집중된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에서는 일본 정도나 가능한 일이었다.

임상시험은 유 소장이 혼자 해낸 일은 아니다. “혼자할래야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는 몸을 한사코 낮춘다. “국내 33곳의 대형병원이 참여한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저는 대표자로 발표만 한 것 뿐입니다.”

바이러스 증식 장시간 억제 효과

클레부딘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식약청의 승인을 받아 제품화되면 벌어들일 돈도 돈이지만, 간염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고 유 소장은 전망한다.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효능이 모든 치료제를 통틀어 가장 강력할 뿐만 아니라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독특한 치료 메커니즘을 지녔다는 게 자신감의 배경이다.

“다른 치료제들과 달리, 클레부딘은 바이러스 증식을 일으키는 모체 세포 내 cccDNA란 유전자를 억제하기 때문에 약의 복용을 중단하더라도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이 약으로 6개월간 치료하고 6개월간 추적 관찰한 결과를 분석한 초기 연구 결과이기 때문에 약을 완전히 끊어도 될 지는 좀더 연구해봐야 최종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 소장에 따르면, 클레부딘은 바이러스의 증식 억제 능력도 뛰어나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이런 약은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 약들과 직접 비교한 시험은 아직 없지만, 적어도 발표 수치를 놓고 봤을 때는 그렇습니다. 기존 치료제들은 복용을 중단하면 바이러스 수치가 한 달 이내에 원래대로 되돌아 가는데, 이 약은 투약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도 바이러스 수치가 1,000배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활동성 간염의 지표로 간주되는 e항원 양성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한 조사 결과에서는 이 수치가 10만 배나 줄었습니다.“

예방백신의 꾸준한 접종으로 “앞으로 20~30년 후면 간암, 간경변 환자가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는 유 소장은 그러나 “치료효과가 개선된 신약이 나와야 가능한 일”이라고 클레부딘에 대한 기대감을 은근히 부풀린다.

“예방접종으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전세계에는 3억명이 넘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기존 치료제 3가지를 섞어 사용하는 극약처방(병합요법)으로도 바이러스의 증식을 장기간 억제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연구투자에 국가차원의 지원 결실

그는 신약개발 뿐만 아니라 외국처럼 트랜슬레이션 리서치, 즉 임상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초연구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연구에 투자하지 않으면 의료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재원조달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현행 의료 수가체제 하에서는 병원들이 수입으로 연구비를 자체 충당하기는 역부족입니다. 미국 등 선진 외국은 연구비의 상당 부분이 민간 기업이나 단체, 개인들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용어설명

임상시험= 1상 임상시험은 동물을 상대로 한 전 임상시험을 거친 신약을 사람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하는 안전성 평가다. 2상은 100~200명 정도의 환자를 대상으로 약리효과를 확인하고 적정 용량의 범위와 용법을 평가하는 것이다.

3상은 신약의 효과가 어느 정도 확인된 후 수백 명 이상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약의 효능을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끝나면 신약에 대한 시판허가를 받게 되는데, 시판허가 후 희귀하거나 장기투여 시 나타나는 부작용을 확인하여 안전성을 재확립하는 단계가 4상이다. 시판 후 추적 검사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암센터 허브 육성 목표

“환자를 돌보고 기초연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산업에 좀더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인력과 하이 테크놀로지로 국제경쟁에 나서야 하는 우리로서는 BT가 승부수입니다. 의사들도 더 노력해야 합니다. BT산업은 의대 출신들의 참여 없이는 힘듭니다.”

BT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유병철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소장은 소위 환자들을 치료하는 임상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연구개발에 의사들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구상에 대한 액션플랜까지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그는 클레부딘에 대한 임상시험 뿐만 아니라 간암 수술과 고주파 시술의 치료 성적을 비교하는 대규모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2007년 오픈 예정인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 관해 그가 자랑삼아 늘어놓는 말에서도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2008년 1월 정식 개원할 암센터는 600병상 규모로, 세계적인 암센터 허브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가려 뽑아올 계획입니다.

암센터가 개원하면 곧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그 중 일부는 내년 3월께부터 해외연수를 보낼 예정입니다. 진료방식은 기존의 과 중심이 아니라 협진시스템으로, 위암 간암 폐암 등 암별 센터체제를 가동함으로써 최상의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또 암 등록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역학, 기초연구와 임상시험 등을 활발하게 펼쳐나갈 생각입니다.”

그는 B형 간염과 간암에 대한 병합 치료법 개발에도 계속 매진해 나간다는 생각이다. 여러 가지 약을 함께 씀으로써 완치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간암에 대한 양성자나 고주파 치료 등 새로운 방법이 자꾸 개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임상시험도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