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파문, 전화위복 계기 삼아야"

생명과학 기술분야 최전선에 선 선구자. 난치병의 고통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과학자.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 이후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원을 묘사하는 문구들이다.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다소 신비스럽고 숭고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이런 표현들은 그러나 연구에 대한 실상을 접하게 되면 금세 사라질 지도 모른다.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김시내씨(28)의 말을 들어보면 속칭 ‘노가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줄기세포 연구는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한 노동입니다.

현미경을 7~8간씩 들여다보면서 세포를 키우고 쪼개고 배양접시를 옮겨 증식시키죠, 테라토마 실험을 해야죠. 실험만 하나요?

데이터 정리와 세미나 발표 준비도 해야 돼요. 배양액도 매일 갈아줘야 하다 보니 주말이 따로 없어요.”” 수려한 용모에다 서글서글한 성품을 지녀 정적인 실험실 분위기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를 풍기는 김씨가 줄기세포 연구에 뛰어든 시기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던 2003년 여름. 박사과정 5학기를 마친 3년차 학생이다.

연구소 지원 당시만 해도 줄기세포에 대한 붐이 일기 이전이어서 졸업 후 전망조차 불확실했다. “뜨는 분야도 아니고, 졸업 후 진로도 잘 모르겠다는 이 연구소 정형민 소장의 솔직담백한 말에 더럭 겁이 났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이것 정말 될까 하고’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막연한 느낌이 들더라는 말도 했다. 그렇지만 실험 결과가 하나 둘 씩 나오는 요즘 들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조금만 더 한다면 실제로 뭔가 될 것같다는 믿음이 있어요.”” 지난 2년 반 동안 김씨가 매달려온 일은 줄기세포에서 뼈로 분화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

대학원에서 뼈(골다공증)를 연구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일본 츠쿠바에 있는 렌코연구소에 한 학기 동안 연수를 다녀온 재작년 여름 이후에는 에이즈(AIDS) 바이러스에 대한 유전자 치료 분야에도 손을 대, 지금 마무리 중인 박사과정 논문도 이것에 관한 것이다.

이 분야 연구자로는 그가 국내에서 유일하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렌티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한 뒤 그것을 줄기세포에 넣어서 원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작업으로, 최근의 실험 결과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흐뭇해 한다.

실무팀장 역할, 멀티플레이어 돼야

박사과정 3년차로 지금은 주말이면 공연을 보거나 독서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김씨는 연구소 생활 중 가장 힘든 일로 배양작업을 손꼽는다.

줄기세포는 배양하기가 일반 세포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줄기세포는 환경변화에 아주 민감하고 사람 손을 많이 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죽기가 십상이란다.

“배양액을 갈러 갔는데 세포가 죽어 둥둥 떠있거나, 별 이유도 없이 잘 자라지 않을 땐 정말이지 황당했어요.”” 줄기세포 연구 작업은 철저한 팀워크로 이뤄진다.

연구소장 밑에 박사, 다시 그 밑에 박사과정과 석사과정 학생들이 한 팀을 이룬다. 연구소에서는 다양한 연구 분야, 다양한 실험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한 연구원이 여러 가지 일을 겸하는 일이 흔하다고 김씨는 설명한다.

박사과정인 그의 역할은 석사과정 학생들을 데리고 연구를 이끌어 가는, 일종의 실무 팀장이다. 석사는 줄기세포 배양 등 실무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다.

박사과정에 들어서면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후배 연구원들을 이끌고,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의 윤곽을 잡고, 논문을 쓰는 등의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덧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했다고 김씨는 말한다. 예를 들어 세포배양이라면 어떻게 쪼개야 잘 자라고, 배양액을 교체할 땐 어떤 점에 신경을 써야 하는 지 등 요령이 생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세포에 이상이 생겨나도 '아, 무엇이 문제겠구나' 하면서 금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작업 과정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줄기세포를 염색하다 보면 색이 아주 신비스럽고 예쁘게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땐 황홀하죠.”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여태까지는 반사이익을 챙겨왔다.

이웃 일본만 해도 자격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줄기세포에 대한 실험은 말할 것도 없고 세포 자체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게 김씨의 판단이다. “줄기세포 분야 논문 제출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국적이 싱가포르 스웨덴 독일 등으로 아주 다양해졌다.

“논문 업데이트 사이트를 뒤지다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연구 주제가 비슷한 것들이 속속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해외 과학저널에 박사과정 논문 기고를 앞둔 요즘엔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서 있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파문 이후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한 해외 과학저널이 국내 연구원이 낸 줄기세포 관련 논문을 게재 신청 하룻만에 퇴짜(리젝트)를 놓았다는 말도 들었단다.

보통 리젝트를 놓더라고 하룻만에 통보를 하는 일은 거의 관례가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리젝트를 맞더라도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구소 소장님과 연구생들과도 이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고 이미 다짐을 했습니다. 리젝트당할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실험을 더욱 꼼꼼하고 하는 한편 더 많은 데이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번만 살피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도 지금은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이제는 좀 늦더라도 차근차근 제대로 밟아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 파문이 장기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