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분야의 성공사례 만들 것"

질병은 치료보다도 예방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전염병은 특히 그렇다. 일단 발생하면 광범위한 지역으로 급속히 번지는 특성 때문이다.

초기대응을 놓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전염병은 발생 자체를 원천차단하는 것이 상책이다.

만일 감염이 시작됐다면 이의 확산을 신속하게 저지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전염병과의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감시ㆍ예방시스템이란 무기가 먼저 갖춰져 있어야 한다.

동식물처럼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조류인플루엔자(AI)나 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등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AI를 가리켜, 어떤 사람들은 14~17세기 유럽 전역을 휩쓸며 인구의 절반을 삼킨 페스트(흑사병)에 견주어 ‘페스트의 귀환’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우려를 기우라고 평가절하하더라도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하지 않는가. 전염병 대처 문제는 이제 정부가 팔을 걷고 적극 나서야야 할 핵심 정책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은 고약한 병입니다. 여름철에 잘 익히지 않은 소고기를 먹어 발병하는 데 5세 미만 소아들이 주로 걸립니다. 신장기능을 망가뜨리고 오줌도 안 나오는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유발하죠. 만성 신부전으로 악화되면 힘겨운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받아야 하거나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습니다.”

소아신장 분야 국내 권위자다. ‘1군 전염병’인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의 동태를 감시하고 이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2003년에 가동한 감시망의 설계를 주도했다.

그 공로로 지난해 12월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은 고약하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그가 왜 이 작업에 나섰는지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연약한 소아들의 신장을 망가뜨리고 목숨까지 빼앗는 치명적인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치료법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이유는 또 있다.

증상이 설사와 비슷해 감염돼도 그냥 지나치기 쉽상이어서 초기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1주간의 잠복기를 거친 뒤 빈혈이나 장출혈, 무뇨증 등 증상이 나타나면 그제서야 ‘아, 이거구나!’ 하면서 부랴부랴 감염원 역추적에 나서는 것이 우리 의료계의 현실입니다.”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은 1980년대 이후 등장한 신종 전염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96년 이웃 일본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라 2000년에 부랴부랴 1군 전염병으로 지정했을 정도다.

98년 환자 발생이 처음 보고된 이후 2004년까지 총 190건의 감염 사례가 있었고 이중 3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대규모 발병이 심심치 않게 보고되고 있고, 발병률도 2000년을 전후로 급증하고 있다.

1군 전염병이란 전염속도가 매우 빠르고 국민건강에 미칠 피해 정도가 너무 커, 발생 또는 유행 즉시 방역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요주의 전염병으로 질병관리본부가 그 동태를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콜레라, 페스트,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세균성이질,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 등 모두 6종이 지정돼 있다.

음식물 오염이 원인인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은 큰 맥락에서 보면 우리의 식생화 패턴이 서구화한 탓이다. 그런데 발병 양상은 나라마다 다르다.

“원인균을 비교 분석한 결과, 미국과 유럽은 O-157이 대부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것이 10% 정도 밖에 안 되고, O-61, O-26 등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고기 주요 수입원인 호주에서 O-1111이 유행하여 이것이 국내에도 퍼진 것이 아닌가 긴장한 적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있는지, 각각 어떤 특징이 있는지 등은 앞으로 밝혀내야 할 과제입니다.”

이 부원장에 따르면,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집단 발병할 수 있다. 2003년 6월 전라도 광주에서 67명이 집단감염 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가 기획한 감시시스템이 그 위력을 본격 발휘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감염이 일어나면 설계한 시나리오에 따라 전국 40여 곳의 소아신장학회 회원 병원은 그 사실을 질병관리본부와 해당 지역 보건소로 즉시 보고한다.

이 부원장이 소아 환자의 병세를 살피고 있다.

당시 모든 환자들을 2주간 병원 내 격리조치를 취하고 대대적인 역학조사를 벌이는 등 법석을 떨었다고 한다. 다행히 별다른 증상 없이 회복되는 무증상이어서 조용히 지나갔다.

그러나 감염원 추적에는 끝내 실패했다. 게다가 한바탕 소동도 일어났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멀쩡한 아이를 병원에 가두어 공부를 못 하게 만든다”며 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장출혈성 대장균감염증에 대한 감시망이 앞으로도 잘 운영된다면 보건의료 개선의 성공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특정 질병에 대한 예방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사례는 이미 있다.

바로 B형 간염과 홍역에 대한 예방접종이다. 지난 수 십년간 꾸준한 예방접종 노력을 기울인 결과 해당 질병의 발병률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수준으로, 또는 그 이하로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소아신장 질환 전문가답게 이 부원장은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른 초중고생 대상의 소변검사 제도에 개선할 점이 많다는 지적도 했다.

예를 들어 ‘소변 이상’ 판정의 90% 이상은 ‘가양성(假陽性ㆍ실제론 정상임에도 ‘이상’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란다. 사후조치라는 것이 “당신의 소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으니,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에 그칠 뿐, 추적관리를 안 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소변 이상’ 판정자 10명 중 9명은 공연히 헛고생만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1차검사 자체가 부정확한 것이죠. 건강한 아이도 막 뛰어 놀다가 검사를 하면 혈뇨가 나올 수 있고, 감기 기운이 있어도 단백뇨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단백뇨가 나온다고 해서 신장염이 걸린 것도 아닙니다. ” 그의 말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