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페미니즘 운동의 대모(代母) 베티 프리단이 4일 워싱턴 자택에서 85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프리단은 1963년 저서 <여성의 신비>를 통해 어머니, 아내 역할에 중독되어 있는 주부들을 흔들어 깨우며 미국 여성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페미니스트다. 뉴욕타임스는 5일자 부음기사에서 프리단을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사회를 영원히 바꿔놓은 주인공”으로 추모했다.

저서 <여성의 신비>에서 그는 “미국 여성들은 중산층 가정이라는 안락한 포로수용소에서 미디어와 광고주, 사회학자, 교육학자들이 조작해 낸 ‘여성의 신비’라는 이데올로기에 속박돼 있다”는 도발적 주장을 펼침으로써 현대 여성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닦았다.

대학 졸업 후 전업주부로 사는 여자 동창생들의 결혼생활을 추적한 탐사보도 형식인 이 책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 260만부 이상 팔려 페미니즘 운동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21년 미국 일리노이주 피어리스에서 보석상의 아버지와 전직 신문기자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스미스 칼리지를 최우등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심리학과에서 특별 연구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다.

이후 뉴욕에서 노동전문기자로 활동하다 47년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됐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가 여성운동가로 변신한 것은 마흔살이 넘어서였다. 출산으로 인한 해고와 22년간의 결혼이 파국을 맞은 뒤 그는 자신과 같은 삶을 미국의 많은 여성들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프리단은 강력한 성평등 메시지로 미국 최대의 여성운동 단체인 전미여성기구(NOW)와 전미낙태권행동리그(NARA), 전미여성정치회의(NWP) 등을 창립해 낙태, 출산 휴가권, 승진과 보수에서 남녀평등을 위한 운동을 펴며 여성의 사회진출을 늘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프리단은 여성운동의 선구자였지만 급진적 노선과는 일정한 선을 그었다.

그는 끝까지 여성 동성애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여성들에게 가정과 직장 일을 모두 완벽하게 해내라며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부추긴 탓에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의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말년에는 손자 돌보기의 기쁨, 건강하고 젊게 사는 법 등에 집착해 급진 페미니스트들을 당혹케 했다. 또 노인문제에도 관심을 쏟았다.

그는 “노인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마치 20년 전 여성들에게 그랬듯 동정만 베풀며 인격을 무시하려 든다”고 비판하고 93년에 마지막 저서 <노년의 샘>을 남겼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