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학 국회보좌관, 역대 정권 도·감청 실태분석 논문

지난해 세상을 뜨겁게 달군 X파일은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권력의 음침한 이면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검찰이 발표한 국가정보원 도청 사건 수사결과는 인권과 개혁을 앞세웠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조차 상시적으로 도청을 실시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도ㆍ감청 문제를 학문적으로 천착, 우리 사회의 정치문화를 한단계 끌어올린 땀의 결정체가 나와 눈길을 끈다.

현직 국회의원 보좌관인 고성학(47ㆍ김형오 의원실)씨의 ‘한국의 민주화와 감시권력의 변화’라는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 논문이다. 도ㆍ감청 분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정치학 논문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논문에 따르면 도청은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내 유선도청을 하는 ‘여론조사팀’에서 출발한다.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은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을 통해 광범위한 도ㆍ감청을 시도했고 민주화 시대 이후 김영삼ㆍ김대중 정권은 주로 국정원이 중심이 돼 이동식휴대전화 감청장비(CAS),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 등을 통해 도ㆍ감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 보좌관은 ‘도청은 권력의 아편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뒤 “권력의 도ㆍ감청 탐닉은 정치적 민주화라는 제도가 구비된다고 해서 결코 줄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정치문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통제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 보좌관이 ‘감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98년 국정감사 때다. 이후 2000년까지 3년 동안 하나의 주제를 갖고 폭 넓고 집요한 문제 제기를 하였다.

그 결과 ‘통신비밀보호법’을 전면 개정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관련 논문까지 나왔으니 도ㆍ감청을 ‘이슈화’‘제도화’‘이론화’한 셈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고 보좌관과 4선의 김형오 의원(부산 영도)의 ‘특별한 인연’이 한몫했다.

고 보좌관은 88년 국회에 들어와 14대 국회 때인 92년 김 의원의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활동한 보좌관 중에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이 있다.

이후 고 보좌관은 김 의원과 15년 동안 한 팀으로 지냈다. 국회에서 가장 오랜 커플이기도 하다.

김 의원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10년간 활동하면서 고 보좌관도 이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97년 휴대폰 원천기술업체인 미국 퀄컴사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기술배분료를 주지 않자 소송을 제기, 2001년 2억 달러 상당의 분배금을 되찾아 온 것은 대표적인 예다.

고 보좌관은 보좌관의 역할에 충실, 논문은 엄두도 못냈다. 그러던 중 2001년 김 의원이 과기위 위원장이 돼 다소 여유가 생기면서 논문을 준비했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지만 선행 자료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지만 도ㆍ감청이 사회문제로 되면서 오히려 독창적이고 선도적인 논문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고 보좌관은 여태껏 한눈 팔지 않고 초심을 유지해온 것처럼 끝까지 ‘스페셜리스트’로 남겠다고 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