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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초대석] 정치컨설턴트 전병민
"선거는 진흙탕 싸움일 뿐, 패배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3일간의 청와대 수석. 베일에 가려진 대권 책사(策士). YS의 한명회. 동숭동팀…

이 정도 수식어가 나열되면 ‘전병민’이란 이름 석자를 떠올리기 어렵지 않을 테다.

1993년 2월 17일. 그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YS 문민정부의 첫 내각을 구성할 인물들의 자료를 놓고 조각(造閣) 그림 짜맞추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는 극비 작업에 꼼짝없이 묶인 몸이었다.

같은 시각, 청와대는 비서실장ㆍ수석비서관 명단을 발표했다. 거기에 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정책수석비서관 전병민.’ 자리도 사람도 낯설었다.

늘 마감시간에 쫓기는 한 신문기자는 사진이며 이력서, 인물소개 자료 어느것 하나 쉽게 구할 수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도대체 전병민이가 누구냐’는 아우성이었다.

고졸 학력이 전부, 노태우 후보 선거기획… 등 다음날 터져 나온 그의 이력은 그래도 ‘학력 위주의 사회에서 능력만으로 일어선 사람에 대한 파격적 발탁 정도로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틀 뒤 사람들은 또 한번 놀랐다. 그의 장인이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의 암살범이라는 것.

그는 조용히 사퇴의사를 밝혔다. 결국 ‘3일 청와대 수석’이란 수식어만 남긴 채 중도 하차했다.

호텔 방에 묶여 기자들에게 제대로 해명할 기회도 없이 정치의 무대에서 물러난 셈이다. 그것도 남이나 마찬가지였던 일본에 밀항한 장인 탓에.

이후 그의 유랑은 길었다.

97년 대선에서는 YS의 비선(秘線)이란 소문에 정치적으로 손발이 묶여 버렸다. 그 다음은 더욱 가혹했다. 광주 민방(民放)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혐의로 6개월 영어의 몸이 됐다.

권력의 심장부에서 반짝 3일, 그리고선 수감 생활 6개월. 권력은 애당초 그와는 인연이 없었고, 영화는 스쳐가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던가.



2002년 대선 때는 아예 일본에 있었다.

3일간의 수석 이후, 꼬박 10년이 지난 2003년. 그는 선거 컨설팅회사 ‘한국정책연구소’를 차리고 본격적인 재기에 나섰다. 얼마 전에는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고문으로 나섰다는 소식도 들린다.

2일 한옥 보존지구인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자리잡은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전병민 보면 대권 향방 보인다" 회자

그의 첫 인상은 ‘어… 올해 환갑이 맞나’ 라는 물음표가 붙을 정도로 젊어 보인다. 날렵한 몸매는 93년 낙마한 다음부터 시작한 달리기 덕분이라고 한다.

먼저 아직도 헷갈리는 그의 이력부터 물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향은 충남 홍성. 9남매 중 넷째. 홍성고 졸업하고 형이 경영하는 문예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군에 갔다 왔다.

이후 중앙정보부 출연 연구소였던 ‘북한연구소’에 잠시 몸을 담았다. 70년대 말 일본 도쿄대 신문연구소에서 유학을 했다. 80년부터 87년까지 사회정화위원회의 현대사회 연구소 편집장과 기획실장을 지냈다.

이때 소장이었던 이영호 전 체육부 장관과의 인연으로 노태우 후보 선거지원 캠프에서 활동했고, 3당 통합 이후 YS를 만났다.

20대 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부름을 다녔다는 둥 세간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그의 숨겨진 이력에 목말라 하던 기자들의 소설일 뿐이다. 이후는 대충 알려진 바다.

그를 두고 왜 선거의 귀재, 정책기획통이라 하는가.

87년, 92년 대선에서 그가 만든 ‘작품’을 보면 대충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의 ‘중간평가’ 공약이 그의 아이디어다.

당선 이후 부담이 되자 정권의 실세가 두고두고 악수(惡手)라고 비난했다지만, 그는 오고 갈 때 마음 다른 ‘화장실론’으로 일축했다.

9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통일 대통령’을, 정주영 후보가 ‘경제 대통령’을 내세웠을 때 김영삼 후보에게 ‘개혁 대통령’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그의 대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호사가들 사이 “전병민을 지켜보면 대권의 향방이 보인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사실 92년 대선에서는 선거 전보다 집권 이후의 ‘개혁 청사진’ 그리기에 매달렸다. 그 작업을 한 곳이 ‘동숭동팀’이다.

그는 일찌감치 YS의 승리를 확신하고, 집권 후를 대비했다는 것. 자문단에는 고건 김덕 송복 박재윤 김창열 송정숙 주돈식 씨 등 재사들이 모였다.

당시 동숭동팀에서 마련한 개혁안 중에는 금융실명제 뿐만 아니라 공직자 재산등록, 하나회 해체 등이 열거되어 있었다. 대부분 YS의 치적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이다.



또 빛을 보지 못한 것들도 상당하다. 외환위기(IMF)의 원인이 됐던 부실대출의 고리를 끊었을 은행 민영화 프로그램, 요즘 한창 문제되고 있는 시군 통합 계획 등이다.

“그 때 내가 도중 낙마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말꼬리를 흐린다. 문민정부 개혁 입안자의 아쉬움이 배어 있다. 하지만 그는 재량껏 일하도록 해준 YS의 포용력에 지금도 감사하다고 생각 한다.

YS 차남 김현철씨와의 관계는 알려진 바와 다르다고 한다. 별 사이 아니라는 설명. 현철씨를 처음 본 것은 동숭동팀을 이끌면서였다.

당시 YS는 노태우 정권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 조직도 돈줄도 막혔다. 동숭동팀 운영비 마련도 힘들었다. 그래서 나선 것이 현철씨.

현철씨와는 그때 동숭동팀 운영비를 주고받는 사이였고, 현철씨는 나중에는 견제 차원에서 동숭동팀 해체를 주장하기도 해 그와는 서먹서먹한 관계로 변했다는 것.

또 현철씨와 함께 정부요직 인선자료를 정리해 보고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손을 내젓는다.

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에 사퇴 권유

평소 ‘음지’를 벗삼는 그이지만 선거만 다가오면 ‘거물’이 된다. 97년 대선 때는 ‘병풍’으로 위기에 몰린 이회창 후보 측이 사람을 보내왔다.

‘어떡하면 좋겠냐’는 SOS였다. “깨끗하게 후보 사퇴하고 다음을 기약하라”가 당시 그의 대답이었다. 물론 결과는 아는 바이다. 그밖에도 밝히기 힘든 스토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 선거는 과학이다. 선거 때마다 불리한 진영에서 ‘숨은 지지자’ ‘숨겨진 표’ 운운하는데 그는 “그런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여론조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책을 마련해야지 그걸 무시하면 결과는 뻔하다는 설명이다.



그럼 2007년 대선은 어떻게 보나. 그의 대답은 “글쎄, 지금 나오는 여론조사로 판단하기 이르다”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대선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

중간 선거 격인 지방선거의 경우 소위 ‘정권 심판’이니 ‘부패 심판’ 등 심판론이 먹힐 여지가 있지만, 대선은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표심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선택의 무게 중심을 둔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선거에서는 항상 뉴페이스가 유리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래 된 인물의 경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비해, 새로운 인물은 ‘신비주의적 요소’가 있는데다 메시지 침투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선거 기획자 입장에서도 도와줄 여지가 많다는 설명이다. 그에게 선거란 ‘신사 게임’이 아니다. 때론 ‘막싸움’도 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사전에는 ‘아름다운 패배’란 없다.

어울리지 않게 결혼정보회사 고문을 어떻게 맡았느냐고 하자, “그냥 색다른 분야에 대한 호기심에서”라고 한다. ‘선우’ 대표와는 로버트 김 후원회와 관련해 알고 지냈고, 고문자리 맡아달라고 부탁해 선뜻 응했다고.

얼마 전에는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를 지낸 부인이 파리로 미술공부를 떠나는 바람에 독수공방 생활도 1년 했다.

지방선거, 대선 등 또 다시 선거 바람이 분다. 그의 재기가 궁금해진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  


입력시간 : 2006-03-0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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