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권 광주요 그룹 회장, 옛 방식대로 만든 소주 '화요'로 고급 양주에 도전장… 재벌 회장 등 즐겨 마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LS전선 구자열 부회장…. 요즘 이들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단이 즐겨 마시는 술이 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술이길래?

명절 때면 단골로 뉴스에 오르내리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명품 와인 혹은 양주를 떠올린다면, 이는 오답이다. 정답은 ‘화요(火堯)’라는, 소주다.

전통자기 생산 업체인 ‘광주요’가 지난해 출시했다. 도자기 업체에서 느닷없이 소주를 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외인데,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소주 시장에서 이변을 만들고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첫 해 매출 10억 원. TV광고 등 별다른 마케팅 없이 순전히 ‘구전(口傳)’으로만 이뤄낸 성과라, 더 입맛을 당기게 한다.

광주요 조태권(58) 회장. ‘화요’는 전적으로 조 회장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 덕분에 탄생했다. 도수가 41도나 된다는 ‘화요’는 시판가 2만 2,000원. 영업점에서는 5만원대에 팔린다. 이 ‘초고가’ 소주가 탄생된 배경이 궁금하다.

조 회장은 ‘화요’ 이야기가 나오자 특유의 ‘귀족 문화론’으로 말을 풀어나간다. “절대 ‘싸구려’는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없습니다.” 온화한 백발의 노신사에게서 듣는 경영 철학치고는 진취적이고, 파격적이다. 문화란 “언제나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른다”고 믿는 평소의 신념이 묻어있다.

“세계적인 문화 유산인 피라미드는 따지고 보면, 독재자가 남긴 부산물이 아닙니까. 당시는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과 눈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은 그것이 엄청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죠. 문화란 그런 것입니다. 과거 강한 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나중에는 대중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할까요.”

세계적 명품은 최고급에서 탄생

그는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내려면, 그렇게 최고급 문화를 공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랬다. ‘화요’ 마케팅의 요체는, 항상 광주요 그룹이 지향해왔던 바와 같이 철저하게 상류층을 겨냥했다. 장인정신으로 빚은, 옹기 숙성주란다.

‘불로써 다스려진 존귀한 것’이라는 의미로 증류식 소주의 ‘소(燒)’자를 파자(破字)하여 이름을 붙였다. 화(火)는 불을, 요(堯)는 중국의 요임금을 지칭하는 말로 높고 멀다는 뜻.

보배에서 증류식 소주 ‘옛향’을 만들던 박찬영 씨가 고문으로, 진로에서 ‘레전드’를 만들던 소주업계의 마스터블랜더 고 김호영 씨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개발해냈다.

‘화요’의 큰 반향은 출시 전 이미 맥이 끊어진 우리 민족의 전통술을 복원한 데서부터 예견되기도 했다. 국내 고도 증류주 시장을 독점해온 고급 양주 시장에 대항해 우리 민족 전통방법으로 주조한 고급 증류주를 개발한 것.

“지금 세계 술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술은 대부분 알코올 도수 40도입니다. 위스키, 코냑, 보드카가 그렇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증류를 하지 않는 낮은 도수의 소주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우리도 알코올 도수 40도의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안동소주가 대표적이죠. 외침에 의해 맥이 끊어진 것인데, 옛 소주의 그런 부드럽고 깊은 맛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화요’ 돌풍의 기저에는 또 ‘사람 좋은’ 조 회장의 탄탄한 인맥도 빠질 수 없는 큰 몫을 했다. 그는 “주위에 3,000명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들이 1년 동안 평균 30병씩 마셔준 덕에 9만 병이 팔렸다는 계산. 올해는 ‘화요’ 마니아를 1만명으로 늘려 잡고 있다. 그 1만명이 다음 해엔 또 다른 1만명을 모으고, 2만명이 다시 2만명을 불러오는 ‘다단계론’. 다소 더딜 수 있지만, 목표는 원대하다.

“언젠가는 한 해 6,000억원이 소비되는 국내 양주시장을 대체함과 동시에 수출로 한국 전통술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50대 후반에 어디서 저런 열정이 나오는지 놀랍다. 이미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시장에 수출을 시작했으며 조만간 미국, 호주까지 시장을 넓힐 계획이다.

젊은 시절, 그는 ㈜대우의 상사맨과 개인 무역으로 사업의 기반을 잡았다. 그러던 그가 ‘전통의 세계화’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선친의 작고가 계기가 됐다. 1988년. 선친이 평생을 바친 회사를 문닫을 수 없어서 ‘효도 차원’으로 도자기 사업체 ‘광주요’를 물려 받아 전통 문화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나 이 전통의 복원은 참으로 오랜 인고의 세월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중산층을 중심으로 ‘생활 도자기’가 많이 보편화됐지만, 당시 도자기는 장롱 속에 보존되는 ‘골동품’이었다. 그 ‘귀한 물건’을 장롱 속에서 꺼내 식탁 위로 옮겨오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꼬박 10년의 세월을 쏟았다. 그 집념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고려 청자나 조선 백자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생활 속에서 끊임없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상상해보라. ‘고려 청자에 밥을 담아 먹어?’ 이게 어디 현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도자기를 생활 속에서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우리 음식과 도자기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그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지인들을 초대해 회사에서 만든 도자기에 음식을 담아 대접했고, 어떤 음식이 어떤 그릇에 어울리는지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으로의 초대는 한계가 있는 법.

그래서 98년부터 ‘아름다운 식탁전’이란 행사를 매년 진행하는 한편, 2003년엔 서울 신사동에 고급 도자기를 사용하는 한정식 레스토랑 ‘가온’을 열었다. 앞서 2001년엔 전통 민화를 벽지로 만들어 파는 업체 ‘자비화’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릇에는 음식을 담아야 하고, 술이 있어야 하며 또 미술 등 장식이 필요하지 않느냐.” 조 회장이 도자기 회사에서 주류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사업 확장을 해나가고 있는 까닭이다.

/ 김지곤 기자

광주요의 연간 매출은 150억원. 한정식 레스토랑 ‘가온’은 15억원선. 지금이야 각각 업계에서 내실 있는 업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지난 세월 동안 그는 “젊은 시절 무역사업 등으로 모은 재산을 ‘올인’했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벅차더군요.”

사업 초기를 돌이키는 그의 어투가 예사롭지 않다.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그릇을 내놨더니, ‘세트’를 찾더라. ‘이거랑 똑 같은 거 주세요’ 하고···”. 모든 것을 똑같이 대량 복제해내는 서구식 문화에 길들여져 있던 탓이리라.

뿐만 아니다. “이게 어디 한국 거냐”는 질타는 더욱 매서웠다. 한정식 레스토랑이라는 ‘언밸런스’한 타이틀이 붙여진 ‘가온’은 지금은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지만, 초기 그러한 비난의 폭탄 세례를 받았다.

최고급 호텔처럼 세련되게 꾸며진 ‘가온’의 공간 안에는 민화 벽지와 ‘시가’ 장식품 등 국내외 문화가 공존한다. 게다가 음식은 코스식으로 나온다. “우리의 식문화는 ‘한상 차림’이 원칙이지만, ‘섞어’가 아니라 ‘하나하나’ 차려냄으로써 ‘요리’로 인정 받게 한다”는 발상이 그 특이한 음식점 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전통의 복원은 옛 것을 그대로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에 맞게 재창조하는 것이 되야 합니다.” 우리 문화가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려면, 어떤 문화와도 잘 공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전시 중인 ‘한류, 한복을 입다’ 행사를 후원하고 있기도 한 조 회장은 작금의 ‘한류 정책’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배용준씨가 욘사마로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남이섬은 일약 관광지로 급부상했죠. 그때 지자체가 나서 남이섬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명소로 개발했다면, 욘사마가 잊혀져도 남이섬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땠습니까. 얼마나 더러웠으면, 일본인들이 가서 청소해주고 돌아갔겠습니까.”

세계화하기에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라는 관점에도, 조 회장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유형의 자원은 없지만, 무형의 자원은 무한한 나라”라며 “한류 스타와 더불어 우리의 의식주 전통 문화를 함께 알려 나가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도층 전통 술로 건배하는 모습 보여야

사회 지도층의 각성도 촉구했다. “사회 최고위층이 와인이나 양주로 건배하는 모습이 번번히 매스컴에 보도되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 전통술을 누가 세계에 알리겠습니까?”

그래서일까. 우리문화 세계화의 ‘고수’인 조 회장은 4월 말에는 ‘낙낙’ (樂樂)이라는 이름으로 강남에 전통주점을 낸다. 향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울 생각이다. 그래서 이 주점의 외국 명칭을 ‘knock knock(낙낙)이라 지어 놨다.

그 바람처럼 세계를 노크하며 주점과 함께 우리의 문화가 세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뻗어나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