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최장수'에서 남성들의 눈물샘 자극… 힘겨운 시간 "소중한 가족이 있어 견뎌냈다"

“나, 바보 등신 됐대. 아무 기억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대. 당신이랑 애들한테 아무것도 못해준대. 이런 나라도 괜찮아?”

17일 KBS2 수목극 ‘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주인공 장수 역의 유오성(39)이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아내에게 털어놓는 애절한 눈물 연기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것도 “일생에 세 번 운다”는 남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화제를 뿌렸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대단한 배우’, ‘명 연기’라는 유오성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남성들의 멜로’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는 것.

그런 장수 역에 대해 유오성은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 상”이라고 표현했다. “시청자들은 유오성이 장수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고 보겠지만, 저에게는 최장수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경찰 일에 매달려 가족에게 소홀했다는 명목으로 이혼 위기까지 겪었지만, 죽어가면서까지 가족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 헌신하는 장수의 속 깊은 가족애는 어찌 보면 바로 그의 진정한 속마음이라는 것. “아마 작품이 끝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제 ‘유오성이 사람 됐구나’ 하실 겁니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유오성은 2001년 영화 ‘친구’의 대박으로 단연 연기 잘하는 톱 배우로 등극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그 이후 참 많은 부침을 겪었다. 그것도 뜨는 부(浮)보다는 가라앉는 침(沈) 일색이었다. ‘친구’ 이후 출연한 영화 ‘챔피언’(2002)과 ‘도마 안중근’(2004), 드라마 ‘장길산’(2004) 등이 줄줄이 대중의 외면을 받았고, 영화 관련 소송에도 휘말리는 등 수많은 억측을 낳았다.

연예계 안팎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돌출 행동과 튀는 발언으로 ‘뜨거운 감자’였다. 한때 재기가 요원해 보였다.

그런 유오성은 드라마 ‘장길산’이 끝난 뒤 그의 고향과 같은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스타가 아니라 배우로서 초심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자신을 돌아보면서 새롭게 자신감을 회복했다.

생년월일: 1966년 9월 11일
신체: 키 178cm 체중: 77kg
출신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데뷔: 1992년 연극 '핏줄'
수상: 2002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인기상

“저에겐 ‘질풍노도’의 시기가 늦게 왔어요. 근래 힘겨운 몇 년을 보내면서 세상에 대해 좀 더 유연하게 사고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런 유오성의 재기의 힘은 드라마에서와 같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에 있었다고 한다. “많이 지쳐있을 때 아내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극을 해보라고 제안해서 하게 됐어요. 꼭 그런 조언이 아니라도 아내와 아들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었죠.”

유오성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소중한 인생의 가치를 새록새록 깨달아간다. “가족을 이룬 것, 배우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너무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기와 작품의 흥행에도 연연하지 않는 드문 배우로도 소문이 나 있다. 흥행 질문에는 “(배우 입장에선) 잘 되면 배우 공이고, 안 되면 제작자 탓 아니겠냐”고 농을 던지는 여유를 지녔다.

“지금까지 흥행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선택한 작품에 최선을 다했는가 아닌가 하는, 제 자신의 절대 평가에만 신경을 씁니다.”

대표작 ‘친구’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연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유오성은 스스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조만간 관객에게 그때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살아있는 눈빛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신발 끈 다시 묶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세월 속에서 더욱 원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유오성.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질주가 다시 기대된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