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출신… 20일 대학로 소극장서 '클로저 댄 에버' 막 올려"20년 후에도 후배에 도움주는 중견배우 되고파"

그가 정말 변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이하 지킬)에서 격정적인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했던 류정한(35)이 눈빛과 어깨의 힘을 확 뺐다. 10월 20일 대학로 씨어터일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클로저 댄 에버’(이하 클로저)의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요즘 되게 편해졌어요. 전에는 공연 들어가면 신경이 날카로워져 후배들과 말도 잘 안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풀어져서 서로 잘 어울리죠. 바보짓도 하고요.”

새 뮤지컬 ‘클로저’에서 그가 맡은 수의사 ‘준희’는 ‘철없고,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 “이전 색깔을 다 버렸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그는 이번에 180도 변한 연기 스타일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무대 스케일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간 ‘류정한은 왜 표값이 그리 비싸냐’는 얘기가 많았어요. 큰 극장에서만 공연했다는 얘기죠. 내년이면 데뷔 10년 되는데 대학로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오페라의 유령’, ‘지킬’ 등으로 줄곧 초대형 무대에만 서 왔던 그는 그래서 소극장에서 6명이 공동 주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 오히려 끌렸단다. “관객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작은 극장에서 앙상블로 조화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무대 경험을 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그가 극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가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단다.

“3년 전 뮤지컬 ‘킹 앤 아이’ 공연 때는 딱 두 장면에만 등장했어요. 그때 붙여진 제 별명이 ‘심한 조연’이었죠. 하지만 ‘킹 앤 아이’가 명작이고, 두 곡은 제가 정말 잘 부를 수 있는 곡이었기에 지금도 출연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1997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 데뷔한 류정한은 ‘성악가 출신 뮤지컬 배우 1호’다. 서울대를 나왔다. 당시 웬만한 신문 문화면에는 빠짐없이 등장할 만큼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기실 성악가를 꿈꾸던 그의 인생 지침을 돌려놓은 이는 바로 지휘자 정명훈 씨. 집안끼리 가까워 교류가 많았던 차에 정명훈 씨로부터 “뮤지컬을 해봐라”는 말을 듣고 199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는 작품을 보러 갔다. 그 공연을 보며 뮤지컬의 재미를 느낀 류정한은 뮤지컬 배우로 꿈을 수정했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오디션에서 당당히 주연으로 뽑혔다.

무대에서 혼신을 다하는 정신도 정명훈 씨 집안 덕분. “밥을 먹을 때도 바이올린을 끼고 밥을 먹던 정경화 누님,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정트리오 콘서트가 있으면 손수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던 할머니(정명훈 씨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무대에서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바탕이 됐다.

특히 이원숙 여사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힘을 준 은인. “가난한 고학생 시절 대학 등록금을 후원해줬고, 방황하던 때에도 저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고 응원해주던 단 한 사람”이라며 “할머니 은혜를 꼭 갚고 싶다”고 말했다.

▲ 뮤지컬 '클로저 댄 에버'

요즘 출연작마다 팬들을 몰고 다니는 그는 조승우, 오만석과 함께 뮤지컬계 ‘3대 천황’으로 불린다. 이들 중 가장 ‘맏형’. 소감을 묻자 기쁜 내색은커녕 “연예인처럼 순위 매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단호히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 제의가 있지만, 오직 뮤지컬의 외길을 걷겠다는 그는 “후배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진출해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은 좋지만, 자칫 뮤지컬이 (영화, 드라마) 스타가 되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으로 인식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10, 20년 뒤 계획에도 예상 밖 대답을 내놓았다. “가장 안타까운 게 우리 뮤지컬계는 40,50대 배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에요. 너무 어린 배우들만 있어서 극의 중량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 제가 40,50대가 된다면, 후배들이 좋은 공연할 때 아주 작은 배역이라도 꼭 필요한 적역을 맡아줌으로써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걸 돕고 싶어요. 그게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늘 진지한 예술 정신으로 무대에 서는 류정한. 그가 이번 공연에선 어떤 모습으로 관객 마음에 아름다운 뮤지컬 선물을 선사할지 궁금하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