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아들의 근육은 굳어가는데… "지켜보는 가족의 무기력이 가장 힘들어"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철 없는 아이들이 성치않은 아들을 놀리는 일이 많았다. 아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면 눈물로 범벅이 돼 있는 얼굴을 보는 일이 잦았다. 아들이 대학에 진학해 그토록 꿈꾸던 컴퓨터공학을 맘껏 공부할 수 있게 했으면….

“몸이 많이 불편한 데도 수업 한 번 안 빠지고 열심히 하려고 해서 대견해요.”

근육병의 일종인 희귀난치성 질환 ‘근이영양증(의학명 진행성 근디스트로피)’을 앓고 있는 심용기(18) 군의 어머니 김은선(45) 씨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아들의 등하굣길을 함께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근육이 굳어가는 병. 서서히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더니 휠체어에 앉게 된 지도 6년이 지났다. 하반신이 마비되니,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몸이 갈수록 불었다.

70kg이 넘는 장성한 아들을 업고, 두세 발자국만 내딛어도 김 씨의 온 몸엔 금세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용기는 어려서부터 말썽을 부리다가도 ‘자꾸 그러면, 내일 학교에 안 데려다 준다’는 말을 제일 무서워했어요. 건강한 아이들은 학교 안 간다고 떼를 쓰곤 하는데···.” 그래서 그런 아들 뒷바라지에 엄마의 몸은 녹초가 돼도, 마음만은 뿌듯하다.

수학여행 같은 야외수업을 빼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단 하루도 학교에 빠진 적이 없는 모자(母子)다.

이런 용기 군의 희망 전공은 컴퓨터공학. “컴퓨터는 집에서도 공부할 수 있고, 장애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잖아요.” 마우스를 잡은 고3 수험생인 용기 군의 손놀림이 빠르다.

12년 전 병을 선고 받은 날, 엄마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병명도 처음 들어보는 근이영양증.

“앞이 깜깜했어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잘못 될 수 있다는데···.” 엄마는 다리가 후들거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진료실 문밖에서 기다리던 어린 용기가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에게 닥친 슬픔을 감지했던 것도 그때였다.

“용기가 문틈으로 다 들은 거예요. ‘열심히 운동하면 낫냐?’고 묻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엄마는 그저 “눈물만 펑펑 쏟아졌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실 이상 징후가 시작된 건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다른 아기들에 비해 성장 발육이 늦었다. 걸음마를 시작한 것은 18개월이 지나서. 유치원에 가서도 뒤뚱거리거나 잘 넘어졌다. 그래도 ‘남자 애들은 늦된다’는 생각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또래 아이들과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면 친구들의 반도 못 쫓아갔다. 그때서야 정밀검진을 받은 것.

결과는 충격이었다. 근이영양증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듀센형’. 근육병 중에서도 환자 수가 가장 많고 진행이 제일 빠른 유형이었다. 엄마는 “어느 날부터인가 증상이 단계별로 뚝뚝 떨어지는데 감당이 안 됐다”며 말끝을 흐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발을 삐끗한 이후, 용기 군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엄마는 “용기가 휠체어에 앉으니까 살이 찌고 척추도 휘기 시작했다”며 걱정을 털어놓는다.

“아직 호흡은 양호한 편이지만, 계속 척추 측만이 진행돼 폐를 압박할까 걱정이에요. 작년에도 용기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저 세상으로 갔어요. 감기만 걸려도 폐렴으로 진행돼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거든요.”

그래도 엄마는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는데 5년, 10년이 지나고 주변에 같은 질환으로 아픈 사람들도 만나게 되면서 견디게 되더라”고 했다.

용기 군의 학교 생활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도 위안이 된다.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시절엔 철 없는 아이들이 불편한 몸을 놀리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아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면 눈물로 범벅이 돼 있는 아이 얼굴을 보는 일이 잦았다.

“감각은 있냐”며 굳어가는 다리를 꼬집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헹글라이더 경시대회에서 용기의 헹글라이더를 갈갈이 찢어놓은 일도 일어났다. 언어 폭력도 잔인했다.

“한번은 아이들이 용기 의자 뒤에 ‘병신 자리’라고 써놓은 낙서를 봤어요. 아, 우리 용기가 이런 놀림을 받는구나! 아이들은 장난으로 했겠지만, 그것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무너졌어요.”

열악한 학교 편의시설도 이들 모자를 많이 울게 했었다. 중학교에 배정 받고는 보름 만에 전학을 해야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에 배정 받아 갔더니 학교 관계자들이 ‘특수학교에 가지, 여길 왜 왔냐’고 하더라구요. 장애인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당황했던 거죠.”

고등학교도 차로 약 30분 거리의 학교에 진학했다. 이동 거리가 아니라, 장애인 편의시설이 진학 학교의 기준이 됐던 것. 이를 위해 엄마가 이 학교 저 학교로 적잖이 발품을 팔고 다녔다. 엄마는 “학교 배정이라도 쉽게 정보 공유가 원활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 다니는 서울 경일고등학교엔 장애인 화장실도, 엘리베이터도 있다. 엄마가 하루종일 교실 창 밖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친구들이 휠체어를 밀어 화장실에 데려다 주고, 식사 시간에 식판도 갖다 준다. “놀리는 아이들도 없고, 다들 많이 배려해줘서 고마워요.” 엄마도, 용기 군도 모처럼 웃는다.

하지만 평생 병마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용기 군 가족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옷을 갈아 입을 때도, 세수를 할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아들은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도로공사 일을 하는 아버지는 늘 지방을 돌며 일을 하다 보니 보름에 한 번 집에 들리기도 어려운 형편. 지금은 아직 엄마가 힘이 있으니까 아들을 돌보지만, 앞일이 걱정이다.

엄마는 “무엇보다 아픈 아들을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무력감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말한다.

“희귀질환 중에서도 일부 질환은 약이 있는데 그렇게 치료라도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하루하루 근육이 굳어가는 아들 곁을 묵묵히 지킬 수밖에 없는 모정이 애달프다.

◆ 발병 원인 및 증상

근이영양증은 근육을 유지하는 단백질의 결핍에 의해 근육 자체가 결합 조직이나 지방으로 대치되어 팔, 다리 등의 근육이 굳어져 결국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이다.

유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르면 소아기 때부터 발병한다. 근력감소, 근위축, 관절 변형, 심폐기능 감소 및 이것에 의한 일상생활 동작의 장애를 주증상으로 하는 진행성 근질환이다. 가장 대표적인 근이영양증인 듀센/베커형 근이영양증(DMD/BMD)은 출생 남아 약 3,300~3,500명에 1명의 발생률을 보인다. 유전성 근육 질환의 약 90%에 해당하는 X염색체 연관성 근이영양증이다.

듀센형의 경우 많은 수에서 초기 운동 발달이 느려 18개월까지 독립 보행을 못했던 경우가 많고, 보통 4~5세경 자주 넘어지거나 까치발로 걷거나 또는 계단을 올라가기 힘들다는 증상이 나타난다. 평균 10세경에 독립 보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휠체어에 의존하는 경과를 보인다.

베커형의 경우엔 보통 6~19세에 발병하고 하지의 근력 약화 뿐 아니라 비복근의 근육통 또는 근경련 등의 증상이 발현하며 병의 경과는 듀센형에 비해 느리고 다양하다.

◆ 진단 및 치료

앞의 증상이 의심되는 경우엔 소아신경과 전문의 또는 신경과 전문의를 방문하여 상담과 진찰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임상 소견 및 신경학적 검사 소견, 근전도 검사, 일반적인 근조직 검사 등을 시행하고, 필요한 경우 분자 유전학적 진단을 선행하거나 병행한다.

현재까지는 근본적인 치료법은 알려지지 않았고, 증상적 치료에 머무르고 있다. 즉 관절의 구축을 예방하여 보행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재활 치료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심장 및 호흡기의 합병증을 조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