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의 삶 43년에 대한 내 확신을 다지는 계기"실험극장 창단 46주년 기념 공연… 인간의 확신과 의심 다룬 심리극14년째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해외서 봉사활동 "천상의 소녀"

한 연기자가 연습 도중 연출가에게 거듭 질문을 던진다. “제가 (연출의 의도를)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살며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연기자는 40년이 넘게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인생을 살아내며 다양한 캐릭터를 변주해온 ‘한국 연기자의 대모’ 김혜자(64). 엄청난 흡인력으로 객석을 압도하는 그가 연습실에서는 마치 신인처럼 대본을 들여다보며 눈동자를 반짝인다는 것이 의외다. 작품을 익히려는 학구열이, 초심 그대로다.

“대사 중에 ‘만족은 악덕이다’는 말이 있어요. 그 말에 많이 공감해요. 과연 소크라테스가 만족했을까요? 연습을 게을리 하는 배우는 이해 못하겠어요.” 24시간 대본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로도 유명한 그는 스스로 “난 맹꽁이 같다. 무엇을 하면 병적으로 그것 하나밖에 모른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렇듯 ‘연습벌레’인 김혜자가 한동안 뜸했던 연극 무대에 돌아온다. 12월 5일부터 1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실험극장의 창단 46주년 기념공연 ‘다우트(Doubtㆍ02-889-3561)’로 무대에 다시 선다. ‘셜리 발렌타인’ 이후 5년 만의 연극 나들이다. 공연까지는 아직 한 달여가 남아있지만, 김혜자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연극계는 벌써부터 술렁이고 있다.

‘다우트’는 현역 미국 최고의 극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존 패트릭 쉔리(Shanley)가 쓴 작품. 200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이듬해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인간의 확신과 의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지적인 심리극으로 새로운 연극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이다.

한마디로 작품은 대단히 ‘어렵다’. 반면 무대 장치는 극히 단조롭다. 무대 배경은 교장 집무실과 정원 등 딱 두 곳. 작품의 성패가 오로지 배우의 대사와 연기만으로 가늠될 듯하다. 가볍고, 화려한 공연 트렌드가 각광 받는 이즈음, 왜 이렇게 유행과는 정반대인 작품을 선택했는가를 물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 싫어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장르도 있어야 해요. 미국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는데 우리 반응은 어떨지 기대됩니다. 저 자신도 처음 대본을 읽고는 깜짝 놀랐거든요.” 그는 작품의 성패를 딱 꼬집어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은 확신에 차 있는 듯 보였다.

작품은 매혹적이란다. 하지만 솔직히 그도 출연 여부를 놓고는 꼬박 두 달을 고민한 바 있다. 주인공인 의심 많고, 냉철한 엘로이셔스 원장 수녀 역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에너지가 굉장히 많은 여자죠. 무엇인가를 의심하는 건, 믿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잖아요. 저한테는 없는 면이 많은 성격이라 곁에서 지켜보기 버거웠어요. ‘저 사람은 싫어’ 다가가기 꺼려졌지요.”

그러나 다섯 번이나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작품과 인물에 대해 어느새 빠져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절대 웃지 않는 원장수녀가 딱 한 번 웃는 장면이 있어요. ‘나도 결혼한 적이 있어요. 히틀러 때문에 남편을 잃긴 했지만’ 하면서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죠. 그때 ‘이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수녀

가 되기까지 많은 곡절이 있을 수 있잖아요.”

서서히 엘로이셔스를 이해해 가고, 흥미를 느껴가고 있다는 김혜자는 그러나 평소의 그와는 전혀 딴 판인 역할을 소화하는 게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평소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의 그는 ‘따지기 좋아하는’ 엘로이셔스가 되기 위해 “말을 똑부러지게 하는 연습부터 하고 있다”고 했다.

이화여대에서 생활미술학을 전공한 재원인 김혜자는 1962년 KBS 공채 탤런트 1기로 방송에 데뷔했다. “배우가 되려거든 공부 많이 해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그를 올곧은 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김혜자의 아버지는 1952년부터 3년간 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차관을 지냈던 고 김용택 씨.

그러한 그에게 연극 ‘다우트’의 제목이자 주제처럼, 배우로서의 43년 인생에 회의가 들었던 순간은 없었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김혜자는 “배우의 길에 대해 의심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배우의 길을 ‘잘’ 가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한다”고 말했다.

“제 자신을 소모품으로 던지지는 않았는지, 사람들한테는 무엇을 줄 수 있는 배우였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요.”

정상의 배우로서 삶이 아름답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삶이 결코 수월치 않았으리라는 것은 “속절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는 그의 고백에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기나 사람들의 관심은 다 부질 없는 것인데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죠. 가치 없는 일이라 여기면서도 아직까지도 솔직히 신경이 쓰여요. 어차피 배우는 남에게 보여주는 직업인 만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없잖아요. 그것이 우울증을 부르기도 하죠.”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무엇이든 쉽게 싫증을 느낀다”는 그가 연기 외에 질리지 않고 이끌림을 느끼는 건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올해로 꼭 14년째 그는 월드비전의 친선대사로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소말리아, 르완다, 방글라데시,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찾아 다니며 전쟁과 가난 속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돌봐왔다.

“연기와 아이들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연기는 원한다고 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허망함을 느낄 때가 있지만, 아이들은 언제든지 보고 싶으면 보러 갈 수 있어서 좋아요.”

▲ 기아로 고통 받는 아이들과 함께 한 14년

공연이 끝나면 그는 또다시 아이들을 만나러 갈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나만 보면, 꽃을 꺾어줘요. 저를 좋아해서 매달리고 부비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마음이 가장 맑아지는 걸 느껴요. 서울에 있으면 항상 머리가 복잡한데, 그곳에 가면 여기에서의 모든 고민들이 다 그렇게 소소해보이네요.”

몇 달 전 김혜자와 함께 아프리카 기아 현장을 다녀온 사진작가 조세현은 그를 ‘깊고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정말 사랑스럽고 순수한 천상의 소녀’라고 표현했다.

수백 마리의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뚜껑을 열고 흔들어 개미를 달아나게 한 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설탕을 커피를 타는 데 사용하고, 심한 굶주림으로 병든 시한부 소녀를 위해 덥석 1,000달러가 넘는 병원비를 내놓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치관까지 바꿀 정도로 감동적인 것이었다는 얘기였다.

조세현의 말처럼, 아프리카 기아 현장의 아이들과의 14년 동안 그는 알게 모르게 많이 변했다. “한번 아프리카 기아 현장을 다녀온 사람들은 예전처럼 살 수 없습니다. 1,000원이면 살 수 있는 항생제가 없어서 눈이 멀고, 다리가 잘리는 아이들이 항상 머릿속에 맴도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김혜자를 떠올릴 때면 연기자인 동시에 끊임없는 선행의 봉사자라 기억하지만, 그는 정작 ‘봉사’가 뭔지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가 아프리카에 가는 것을 봉사라고 표현하는 게 이상해요. 그냥 아이들이 보고 싶어 가는 것일 뿐인 걸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받은 느낌은 그는 연기자도, 봉사자도 아닌 듯했다. 그는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깊이 체득한 구도자 같았다.

<지구상의 60억 인구 중에서 12억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들 중 대부분은 가뭄과 전쟁과 빈곤의 희생자들입니다. (···) 만일 내가 비라면 나는 물이 없는 곳으로 갈 겁니다. 만일 내가 옷이라면 세상의 헐벗은 아이들에게 먼저 갈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음식이라면 모든 배고픈 이들에게 맨 먼저 갈 겁니다.>

그가 아프리카 등 소외지역 아이들의 고통을 담아 펴낸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오래된 미래 발간)’의 1장의 글귀(‘굶주린 아이들을 위한 모금’ 연설에서 한 내용)다. 그는 이 책을 쓴 걸 평생 가장 잘한 일로 꼽았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