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졸업'서 순진한 청년을 유혹하는 중년 여성 역전라 연기 "더럽혀진 영혼을 벗는게 진짜 어려워요"

점점 더 농익어간다. 그렇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도도함은 여전하다.

연극 ‘졸업’에서 관능미와 원숙함으로 순진한 청년을 유혹하는 중년 여성 로빈슨 부인 역은 그래서 배우 김지숙에게 딱이다. 외적인 분위기만 말하는 게 아니다. 세속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아 보이는 사고 방식과 태도가 너무도 여유롭다.

극중 아들뻘되는 남자와의 연애, 그 남자와 딸의 결혼 수락 등 다소 위험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설정에 대해서도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 넘겼다. “밥만 먹나요? 외식도 하죠.”

공연 전 벌써부터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노출 장면에 대해서도 “자신 있어요. 이쁘면 얼마나 이쁘고, 미우면 또 얼마나 밉겠어요? 솔직히 옷을 벗는 건 쉽죠. 더럽혀진 영혼을 벗는 게 진짜 어려운 것 아닌가요?”라며 또렷또렷한 말투로 되묻는다.

1976년 극단 ‘현대’에 입단해 연기 생활 30년을 넘긴 배우 김지숙(50)이다. 그간 ‘버자이너 모놀로그’ 등에서 섹시한 이미지로 어필해왔지만, 실제 노출 연기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쉰 살의 나이에 노출신? 이에 대해 김지숙 본인에게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들의 추측과는 확연히 다르다.

“노출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기쁘게 벗어야죠. 하지만 지나치게 노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연극 ‘졸업’이란 작품의 의미가 묻힐까 걱정입니다.”

그는 작품에서 “전신 노출을 하지만, 절대 벗기 위한 작품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극 속 로빈슨 부인은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에서보다 훨씬 원숙하고 인간적인 여자다. 청년 벤자민과 딸 엘레인, 그리고 자신의 방황과 일탈에 방점을 찍는 ‘졸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단 한 번의 사랑으로 임신해 꿈을 접고 주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한 여인의 지난한 여정도 연극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여성성을 잃어버리고 일상에 치여 사는 중년 여성의 공허감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았어요. 반복되는 삶의 따분함, 성장할수록 멀어지는 아이들, 생활과 바로 연결되는 결혼 문화 등. 그러한 여인들의 자아 상실감을 대변하죠. 벤자민과의 만남도 결코 육욕적이거나 동물적인 만남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불륜을 접고, 딸의 행복을 위해 두 사람을 떠나보내는 ‘졸업’을 맞이하는 거죠.”

때문에 연극 ‘졸업’은 비단 여성성에 혼란을 겪는 중년 여성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연극이 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김지숙은 “연령이나 성별을 떠나 모든 사람이 무대 위의 주인공들을 보며 자기 삶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젤’ 이후 1년 반 만의 무대 복귀를 앞두고 하루 열 시간 가까이 연습을 강행하는 김지숙은 “캐릭터 분석에 빠져들다 보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처음엔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경험이 없어 안 해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로빈슨 부인과 자신을 혼돈할 지경이 됐다고. “영매가 들어온 것 같아요. 제가 무속인의 기질이 있는 것 아닌가 싶네요.”

쿨하면서도 뜨거운 로빈슨 부인처럼 그도 무척이나 열정적이다. 그런 그도 중년의 상실감을 느끼며 살까. “솔직히 ‘여자’로서 끝나간다는 상실감은 거의 느끼지 못해요. 하지만 앞으로 가슴 떨리는 사랑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해요. 참 철딱서니 없죠.“

사랑스러운 만년 소녀의 감성과 관록 있는 여인의 매력을 김지숙은 ‘졸업’을 통해 동시에 보여주려고 한다. 연극인으로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입학’의 문에 들어서고 있기도 하다.

“연극 ‘졸업’은 요즘 척박한 연극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블록버스터(제작비 4억원 상당)에요. 공연 3주 동안 객석이 꽉 찬다 해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그 마음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잘 돼서 뮤지컬뿐만 아니라 ‘정극’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갖는 시발점이 됐으면 합니다.”

영화와 뮤지컬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 연극계의 르네상스를 위한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김지숙의 연극 ‘졸업’은 2월 3일부터 2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진다. (02) 3485-8700

생년월일: 1956년 10월 10일

키: 162cm 체중: 46kg

데뷔 : 1976년 극단 ‘현대’ 입단

수상: 1993년 동아연극상

1994 대한민국 문화인 BEST 10(연극부문) 외

대표작 : 연극 ‘인형의 집’, 모노드라마 ‘로젤’, ‘버자이너 모놀로그’ 외 다수

경력: 現 연극협회 부이사장

기초예술연대 집행위원장

성균관대 연기예술학부 교수

아프리카 지원단체 ‘피스 프렌드’ 홍보대사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