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한 오스트리아 대통령도 반해

4월 초 한국을 방문한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인사동 거리를 돌아본 후 고색(古色)한지로 만든 등(燈)을 선물 받고 매우 기뻐했다.

더구나 피셔 대통령의 한국 전통문화 체험을 가이드한 오스트리아인이 직접 만든 선물이었기에 감동은 더욱 컸다. 가이드는 오스트리아 출신 베나테트 프라이샨들. 요즘 KBS TV 인기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에도 출연하고 있는 외국인이다.

프라이샨들은 2005년 4월부터 성균관대 국제교류교육센터에 근무하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지난해 6월 종이문화연구소 정순석(62) 한지공예가에게서 고색한지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색한지 공예는 천연염색한 한지를 탈색시켜 앤틱(Antic, 고풍스런)한 분위기를 내는 한지를 소재로 한 공예로 일반 오색한지에 비해 제작기간과 비용면에서 경제적이다.

정 씨는 고색한지 공예를 창안한 장본인. 그는 20년 전 박을 이용한 등을 제작하다 박 공급이 부족하자 궁리 끝에 한지로 등을 만든 게 계기가 됐다. 고색한지를 재료로 등 공예품을 만든 후 수요가 폭증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호감을 보였다. 정 씨는“고색한지 특유의 앤틱한 분위기와 실생활과 관련있다는 점이 관심을 끈 것 같다”고 말한다.

프라이샨들은 “오스트리아 어머니한테 고색한지 등을 보내드렸는데 ‘은은하고 아름답다’거 해 정 선생님께 배우게 됐다”면서 “한국적인 멋스러움이 잘 나타나 있다”고 칭찬했다.

정 씨는 남대문, 명동, 이태원 등을 거쳐 5년 전부터는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공예마을(http://papercrart.com)’ 공방에서 창작 활동과 공예 강좌를 병행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는 서울 삼청각 전통문화체험교실에서 한 달에 약 100명씩 외국인을 상대로 고색한지 등 공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공예마을’공방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매일 20~30명이 강의를 듣고 있고 전체 수강 인원은 300여 명에 이른다. 정 씨에게서 고색한지 공예를 배운 제자들은 전국적으로 150여 개의 공방을 개설했고 세계 8개국에 12곳의 공방이 활동해 지금도 정 씨로부터 재료를 공급받고 있다.

경력 13년째인 정신자(52) 씨는 지난해 오하이오 테이틴 대학의 말구유전시회에 고색한지 말구유를 보내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캐나다에 공방을 연 윤영삼 씨나 일본 교토에 공방을 차린 요시다 리사는 현지에서 한국 문화를 알릴 뿐 아니라 양국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정순석 씨는 장남이 공예 재료를 생산하고 차남은 수송을, 3남은 정 씨를 도와 강좌와 창작품 발송 일을 맡고 있으며 부인은 인사동에서 고색한지 전문점을 운영해 가족 모두가 고색한지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정 씨는 매년 제자들과 고색한지 공예 전시회를 여는데 해외 순회전이나 외국의 제자들과 합동전시회를 갖기를 기대한다. 그런 정 씨에게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 요구로 인사동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인 것. 정 씨는 “고색한지 공예는 어디서든 할 수 있지만 인사동은 상징적 의미에다 우리 문화를 국내외에 알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데 돈 때문에 그런 기회를 잃을까 우려된다”토로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