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등 독성 물질 밝혀내는 국가 공무원수은 연구로 국제학술지 실렸을 때 보람 느껴

너무 많이 물어봤다. 지면에 다 옮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나 질문이 절로 꼬리를 물었다. 이건 내 탓이 아니다. 엿볼수록 흥미진진한 그의 직업상 특수성 때문이다. 대신, ‘꼭 적어달라’고 한 이야기부터 먼저 전한다.

“ 관련 분야의 전공 출신자들에게 공직에 많이 진출해달라고 해 주세요. 독성학을 연구하는 후배들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팀 곽승준(36) 박사는 독성 전문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독극물은 물론,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나 발암 가능성 판별에 이르기까지 독성에 관한 모든 문제를 다 다룬다.

국립독성연구원 자체가 소속 직원 총 130명중 약 110명이 연구원으로 뛰고 있는 전문기구다. 독성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처로는 국내에서 최고이자 유일한 기관이다.

주무부서인 일반독성팀의 경우만 해도 매년 국가사업과제로 투입되는 금액만 약 70억원 규모, 연구과제로 치면 외부 용역과 자체 조사를 모두 합쳐 약 80건의 연구를 진행한다.

곽 박사는 학자인 동시에 공무원인 연구직 공무원이다. 업무 성격상 40%는 연구, 60%는 행정 업무로 이뤄진다. 일과 중 규칙적인 것이라곤 아침 출근 시각 정도 뿐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해 하루 일정부터 확인한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정해진 촘촘한 스케줄이 있다.

동물실험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은 특히 걸음이 바쁘다. 연구 과제 1건당 동물 실험은 짧으면 하루, 대개는 4주짜리가 보통이다. 발암성 연구의 경우 길게는 2년에 걸친 장기 실험도 있다.

대상 동물에게 특정 물질을 주기적으로 투약하며 반응을 주시하는 것으로부터 실험이 시작된다. 투약은 대개 가느다란 금속관을 이용해 직접 주사기로 실험동물의 입을 열어 식도까지 약물을 밀어넣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연구과제 1건당 보통 1백마리 정도의 실험용 쥐가 활용된다. 실험용 쥐는 덩치가 작은 ‘마우스(mouse)'와 체중 300g 이상의 팔뚝만한 큰 쥐인 ’래트(rat)', 크게 2종류로 나뉜다. 일반독성팀 연구작업의 경우 주로 래트가 활용된다. 래트의 자연수명은 2년 정도다.

“ 투약 때든 부검 때든 사실 실험을 하면서 저희 역시 실험동물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을 느끼곤 합니다. 단지 스스로 감정을 자제하며 덤덤하게 연구에 임하려 애쓰는 것 뿐이죠.

외국의 경우 이미 의료용 목적 외에는 동물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법안이 통과된 곳도 있고, 아마 우리나라도 나중에는 대체실험 추세로 갈 듯 합니다. 저희 연구원내 부서중에도 굳이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

동물실험 때에는 입실 절차부터가 적잖이 깐깐하다. 오염 물질을 막기 위한 ‘무진복’을 비롯해 실험실용 특수 모자, 마스크, 장갑 등으로 완벽 무장을 갖춘다.

겉보기엔 초정밀 반도체 관련 연구원들과 흡사한 복장이다. ‘에어샤워’를 마지막 순서로 비로소 ‘출입통제’ 구역에 들어선다. 동물실험은 각 투약 농도에서부터 성별 등에 맞추어 여러 소집단으로 세분해 면밀하게 진행한다.

실험자의 경륜은 투약 단계에서부터 바로 드러난다. 곽박사의 경우 투약에 걸리는 시간이 쥐 1마리당 1분 미만이다. 한 손으로 쥐를 들어올리자마자 바로 다른 손에 의해 순식간에 주사가 끝난다.

대학시절의 실험 경력까지 합쳐 약 10년에 걸쳐 훈련된 노하우다. 쥐의 목덜미 어디쯤을 어떻게 쥐어야 버둥거리지 않고 얌전히 응해주는지 실험동물을 다루는 데에도 적지않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동물이 버둥대다보면 잘못해 실험자 자신이 주사기 바늘에 찔릴 때도 있다.

■ 쥐 부검 땐 수술실 집도의가 된 느낌

예정된 투약 기간이 지나면, 부검 작업이 이어진다. 부검 때는 연구원 대여섯명이 팀을 이뤄 함께 일한다. 병원의 수술 집도 풍경과 비슷하다. 각자 마취나 혈액검사, 수술 등 자신이 맡은 역할별로 일사불란하게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움직인다. 세세히 떼어낸 쥐의 각 장기는 액체질소를 거쳐 포름알데이드로 처리해 고정시킨다.

부검에 걸리는 시간은 실험쥐 1마리당 대략 4시간. 적출한 장기 샘플은 현미경 등으로 다시 정밀 관찰해 투약한 물질의 위해성 여부를 알아내는데 쓰인다.

그래도 차라리 실험실에 있을 때 곽박사는 마음이 더 편하다. 일과 중 상당 시간은 행정 업무로 흘러간다. 낮시간 대부분이 사실상 문서 작업 시간이다. 외부 연구 용역을 준 과제들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도 일일이 관리해야 한다.

제약회사나 외부 기관 등의 실사 평가를 위해 외근을 나갈 때도 있다. 한달 평균 2,3번은 지방 출장으로 자리를 뜬다.

국회의 국정감사가 벌어지는 9,10월에는 얼굴이 더 까칠해진다. 국회의원들로부터 요청받은 자료를 준비하느라 다들 밤을 꼬박 샐 때도 많다. 관련 자료를 모두 모은 뒤 다시 요약하며 재구성해 말끔한 문서로 다듬어낸다. 지난해 국감때 제공한 자료만 해도 종이로 쌓으면 캐비넷 하나를 꽉 채울 정도다.

국감이 지나고 나면 곧장 연말이 다가든다. 이듬해를 위한 연구사업 계획안과 예산 편성 등에 골몰한 사이 한 해가 소리없이 지난다. 이럴 때 만큼은 영낙없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전형이다.

독성학계에 유명한 사건이 있다. 1960년대 유럽을 강타한 ‘살리도마이드 사건’이다. 살리도마이드는 당시 임신 여성들의 입덧 증세를 완화하는 등 수면 진정제로 널리 처방되던 약물이었다. 사전 임상실험에서도 실험용 쥐로부터 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무사통과되었다.

그런데 얼마 뒤 이를 사용한 임산부들이 출산기를 맞으면서 팔과 다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기형아들이 곳곳에서 태어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발병한 환자만 수만명에 이르렀다.

‘해표상 기형’이라 불리는 이 이상증세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긴급히 역학조사가 실시되었고, 결국 토끼 실험을 통해 살라도마이드 약물의 독성이 정체를 드러냈다. 독성 실험시 설치류인 실험용 쥐 외에도 반드시 1종류의 동물을 더 추가하여 실험을 거치도록 관련 국제 규정이 강화된 것도 이 사건이 계기였다.

■ FDA와 같은 안전 감시 역할 중요

“ 반면에 미국에서는 전혀 피해가 없었어요. 왜냐면 그 약물이 미국 시판을 위해 FDA(미국 식품의약국)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다소 독성이 의심된다’는 연구 결과가 제기돼 통과되지 못했거든요.

결국 FDA에서 이 연구를 맡았던 연구자의 말 한마디에 미국 국민 전체가 피해로부터 비껴날 수 있었던 거죠. 그만큼 국가기관이 맡은 안전 감시 역할과 사명감이 큽니다. ”

국내에서는 아직 신약개발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단계라 외국과 같은 ‘신종 약물 독성 사건’이 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논란이 되는 것은 주로 식품이나 수입약, 화장품 등과 관련된 경우다.

특히 언론을 통해 한번 불씨가 붙으면 여론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거세게 퍼진다. 부작용과 같은 식,의약품의 독성 시비가 터질 때면 한편에서는 그 진위 여부를 판정하기 위한 이들의 연구도 민첩하게 착수된다.

최근 국내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과자의 유해성 시비가 터져나온 적이 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특히 가족 중 아토피 환자를 둔 이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이에 대해 국립독성연구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방송에서 지적한 내용대로, 일반 아토피 환자들을 대상으로 과자의 첨가물을 이용해 독성 여부를 검증하는 실험이었다.

“ 용역을 통해 약 7개월만에 연구 결과를 얻었는데, 실험 결과는 ‘별 상관성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방송사 측에서는 ‘실험 방법이 잘못됐다’는 등의 내용으로 또 반박하는 보도를 냈지요.

당시 이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저희 자료의 신뢰성을 모두 인정받은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구요.

다시 공방을 치르며 저희가 일일이 설명을 해야 했는데, 결국 유야무야 더 이상 말이 없었습니다.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연구결과를 얻고도 결과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오해를 받을 때 한없이 답답하지요. ”

곽박사는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 1997년과 2006년에 ‘독성학’ 연구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립독성연구원에 들어온 것은 2000년의 일이다.

그리고 2004년, 어린이용 DPT 예방접종 등에 쓰인 백신 제재 ‘치메로살’ 시비를 만났다. 당시 이 백신의 수은 성분이 허용치를 넘는다는 논란과 함께 내내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던 영유아들의 돌연사의 주범으로 지목받은 것이다. ‘맞다, 아니다’의 편까지 나뉜 채 온갖 가설이 항간에 떠돌았다.

이때부터 곽박사는 직접 문제의 성분 연구를 시작했다. 2년에 걸친 수은과의 씨름 끝에 얻은 연구결과는 ‘해당 백신에 들어있는 수은의 양으로는 독성이 유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곧 세계 학계로부터 인정받아 국제학술지에 실렸다. 대단원의 연구작업이 총 마무리 된 지난해에는 직접 유럽독성학회에 참석해 내용을 발표, 높은 평가와 호응을 끌어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로부터 공동 연구 제의를 받는가하면 여러 나라들로부터 연구 자료를 별도 요청받는 등 한국 독성연구계의 위상을 뿌듯이 체험하고 왔다.

“ 무엇보다 한국을 상징하는 국가연구기관 소속원으로서의 뿌듯함이 컸습니다. 제가 맡은 직분에서 마침내 그간 애쓴 연구의 결과를 얻어냈을 때, 그 첫 순간에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무엇보다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에 항상 자부심을 느낍니다. ”

가끔은 일반인들의 문의전화를 직접 받을 때도 있다. 생식독성팀에 근무하던 때에는 ‘생식(生殖)독성’을 ‘생식(生食)독성’으로 오해해 ‘포도즙을 먹었는데 혹시 포도씨에 독이 있는 건 아니냐’며 불안스레 묻는 전화를 받은 해프닝도 있다.

때론 경찰청에서 범죄사건과 관련해 독극물 여부를 확인하려 의뢰해오기도 한다. 독극물에 관한 모든 정보가 집약된 곳이 국립독성연구원. 가검물에서 검출한 정체불명의 독극물 성분을 판별하는데에도 길어야 2,3일 이내에 답이 튀어나온다. 간단한 것은 전화 통화 중 즉석에서 답이 나오기도 한다.

평균 퇴근 시간이 밤10시. 평일에는 거의 한번도 가족과 밥을 먹을 때가 없다. 두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매일 아침 출근 전 아이들을 일부러 흔들어 깨우며 잠시 말을 걸어볼 때 뿐이다.

가능한 한 주말만큼은 가족과 보내려 애쓰지만, 그것도 실험상 투약 일정 등이 걸리면 허사다. 단 3,40분간 주사를 놓기위해 서너시간을 달려왔다 가기도 한다.

이따금 대학의 강단에 설 때면 그가 후배들에게 꼭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맨 처음에 말한 ‘공직에 진출하라. 그만한 보람이 있다’는 권유다. 실제로 그의 말을 믿고 같은 길에 합류한 후배도 여럿이다.

“ 이 일이 가진 매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저처럼 이곳에 들어온 후배들 중 아직 도중에 그만둔 사람 하나 없습니다. ”

내내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건물. 시간이 지나자 슬슬 초조한 기색이 곽박사의 얼굴에 나타난다. ‘질문 종료’를 알리고 인사를 나누자 쏜살같이 사라지는 곽박사. 이날에도 며칠짜리 실험실 부검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 국립독성연구원의 연구원이 되려면

약학, 생물학, 화학, 유전공학 등 관련 분야가 비교적 광범위한 편이다. 최소한 석사 학위 소지자 이상 지원 가능하며, 결원시에 한해 공채가 실시된다. 대략 매년 1회 이상 공채가 있다. 시험은 1차 서류전형, 2차 구술 면접, 3차 최종 면접 순으로 진행된다. 구술 면접은 사실상 구두 필기시험이나 다름없는, 전공 관련 심층 문답으로 이뤄진다. 2006년 공채시 경쟁률이 12대 1, 매우 치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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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