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상 만드는 바느질 장인 한땀 한땀 정성을 아로새기죠정인보 선생 외손주 며느리… 시어머니로부터 침선 물려받아입문 40년 만에 무형문화재 영광 "3년은 배워야 기본을 알 수 있죠"

“ 친정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한테서 배우려니 얼마나 더 마음이 어렵고 힘들었겠어요. ”

구혜자(65) 여사의 옛날 이야기가 쏟아진다. 전통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사의 모습이 무척 단아하다. 우리의 전통 의상을 직접 손바느질로 지어내는 국내 최고의 장인,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針線匠)의 자태다. 침선장은 우리 고유의 바느질 기법으로 옷 등을 짓는 장인을 뜻한다.

여사의 시어머니는 지난 4월 작고한 故 정정완 여사다. 고인은 위당 정인보 선생의 장녀로, 8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2005년에 은퇴, 생전부터 맏며느리 구 여사에게 빼어난 솜씨를 대물림하고 가셨다.

당신 역시 부유한 반가(班家)의 딸로 태어나 ‘왜 굳이 궂은 일을 하느냐’는 가족의 만류를 물리치고 침선을 고집했던 장인이다. 워낙 손맵시가 있던데다 바느질을 좋아했다.

“ 어머니(故 정정완 여사)도 저도, 옛날엔 다 도제식으로 어깨너머 배웠어요. 부유한 집안이라 침모가 따로 있었지만, 워낙 당신 자신이 이 일을 좋아하셨어요. 옛날엔 한복을 만드는게 삶 그 자체였지요.

한달에 두세번은 어르신들 옷을 빨아서 갈아입게 해드려야 했는데, 그냥 세탁만 하는게 아니라 다시 각 부분을 죄 뜯어서 다시 풀을 먹이고, 새 옷을 짓듯이 다시 바느질로 하나하나 꿰매어 옷을 만들어야 했어요. ”

깔끔한 성격에다 고집, 바느질을 좋아하는 성미까지 고부가 닮았다. 전통 한복 중에서도 정갈하고 기품있는 옷을 좋아하는 취향도 두 사람이 판박이다.

“ 어머니는 주로 귀족적인 옷을 좋아하셨고, 침선장으로 지정받은 것도 양반 사대부가의 옷이었어요. 저도 비슷하죠. 화려한 것과 난(亂)한 것이 다르고, 소박한 것과 가난한 것은 다른 거쟎아요. 저는 우리 원래의 단아함, 소재, 전래의 바느질법을 그대로 지키고 싶어요. ”

혼인한 68년부터 침선에 입문했으니, 바느질을 시작한 지 올해로 40년째. 일반인이 구 여사의 솜씨를 따라잡기란 애초에 엄두 낼 일이 못된다. 기본적인 바느질을 제대로 배우는 일만으로도 요즘 세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통 바느질 기법만 대강 헤아려도 17가지쯤 된다. 홈질, 박음질, 감침질 등은 기본 중의 기본, 상침뜨기 하나만으로도 한땀, 두땀, 세땀 상침 식으로 섬세하게 나눠진다.

침선장의 평생 벗이자 필수 장비인 바늘도 크기가 제각각이다. 옷감의 재질이나 특성에 따라 바늘을 달리 고를 수 있지만, 가장 좋기로는 ‘스스로 쥐기 편하고 익숙한 것’이 최고다.

여사가 즐겨쓰는 것은 머리카락만큼 가늘고 짧은 바늘이다. 이 하나만 있으면 웬만한 겨울 옷감도 능숙하게 꿰맨다. 견고하고도 반듯한 구 여사의 옷 만들기 비결중 하나다. 만들어진 옷만으로 봐서는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손바느질인지 재봉질 작품인지 쉬 구별하기도 어렵다.

“ 손바느질로 하면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담겼다는 가치도 있지만, 재봉질로 만들면 옷 선이 다소 거칠고 딱딱해지는 반면 손바느질로 만든 건 옷 태가 아주 부드럽게 나와요. 엄연히 다르지요. 대신 바느질을 아주 잘 해야만 해요. ”

여자 치마, 저고리 한 벌을 만드는데 손바느질 보름이면 끝난다. 짐작보다는 빠른 기록이다. 재봉질로 치면 5일만에 해치울 양이다. 바느질 한땀마다 옷을 짓는 이의 숨결과 실력이 함께 꿰매진다.

“ 원래 시력이 좋은 편인데, 이 일을 하다보니 노안이 비교적 빨리 오긴 한 것 같아요. 종일 앉아서 바느질 하는 자세도 몸에 좋을 리가 없죠.

그래도 저는 젊을 적부터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바느질을 한 편이라 큰 통증없이 살았지만, 이제 나이가 들고보니 안되겠어서 얼마전부터 책상을 두고 의자에 앉아 일하고 있어요. ”

전통 바느질이 쉽지 않음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더 확연히 드러난다. 여사는 현재 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맡고 있다. 수강생은 의상학과 학생들에서부터 전업 주부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계층이 다양하다.

약 1개월은 기초 바느질부터 가르친다. 그리고 고유의 신생아 옷인 아기 배냇 저고리로 첫 습작을 지도한다. 한달쯤 지나 완성되면 아기 백일 옷 만들기 단계로 넘어간다.

이 무렵이 경계선이다. 적성과 인내력이 맞지 않는 경우, 이 단계가 지나면 기권자가 속출한다. 강의 시작 2개월쯤이면 애초의 수강생중 3분의 1이 사라지고 없다.

난이도는 점점 높아진다. 1년차쯤 되면 성인 옷을 시도하고, 2년차면 전통 예복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다. 3년차면 혼례복까지 손수 바느질해 만들어 볼 수 있다. 최소한 3년은 배워야 침선의 기본을 맛 보는 정도다.

그 역시 침선에 들어선 초창기 10년간 여간 맵고 힘들지 않았다. 특히나 장인급 솜씨의 어머니 앞에선 여간해서 눈에 들기 어려웠다. 꾸중을 듣기는 다반사, 때로는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심한 면박도 들으며 일을 익혔다.

“ 다른 일로는 단 한가지도 말씀을 들은 일이 없었는데, 유일하게 꾸중 들으며 배운 게 바로 이 일이었어요. 그러다 어느날 ‘웬만큼 흉내를 냈구나’라고 하신게 당신에게서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죠. ”

스승이자 침선장 대선배이기도 한 시어머니가 전통 복식을 그대로 구현하고 계승했다면, 며느리 구 여사는 이를 체계화하고 계량화하는 역할을 해 냈다. 그는 한복 제작뿐 아니라 조선시대 복식사 연구와 재현 작업도 꾸준히 이어왔다.

여사의 귀한 재현 의상들은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에서도 성황리에 선보였다.

남자의 포(袍.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는 겉옷류) 종류만 약 20벌을 포함해, 여자 궁중 복식, 어린이 옷 등 작고하신 시어머니의 생전 공예대전 출품작 등 유작까지 차곡차곡 모으거나 만들어 온 의상들이다.

2005년 10월에는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한국 문화의 밤’에서 궁중 의상들로 패션쇼를 펼쳐 갈채를 받은 바 있다.

구 여사가 가장 즐겨 만드는 의상은 남자의 포 종류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입혀지기 시작한 행사용 의상이다. 조선시대의 남자 복식은 요즘의 여성 의류 못지 않게 다양하고 아름답다. 색이나 모양을 자연의 동,식물에서 본 따 온 것들이 많다. 조선시대 복식사를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옷 이야기도 많다.

“ 주로 적, 흑색으로 만들어진 파발복은 그 소매를 기밀서류를 보관하는데 쓰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또 ‘동다리’라는 남자 의상은 비상시 소매를 뜯어서 붕대처럼 사용해 응급처치에 쓸 수 있도록 된 옷이예요. ”

구여사는 2006년 문화재청의 엄격한 실사 끝에 지난 7월 중요무형문화재로 정식 지정됐다. 앞서 3월에 이미 인정 예고를 통보받았을 때의 감회가 새롭다.

“ 솜씨가 좋은 분들도 많은데 그중 제가 보유자로 지정될 수 있었던 건 이 침선을 위해 그동안 오랜 세월 부지런히, 열심히 일했다는 것에서 주신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정서를 받을 때는 굉장히 감격스러웠죠. 처음부터 어머니의 후계자가 되려고 작정한 일도 아니었고, 그저 삶 자체로 살았을 뿐이니까요. 지금부터 진짜 다시 시작이구나, 그 생각을 했어요. ”

그는 배재대와 건국대 대학원 등 대학에도 여러 해 째 출강, 좋은 후학을 길러내는 일에 거의 모든 시간을 쓴다. 개인적인 작품활동도 밤 시간에야 틈틈이 가능하다.

저서 ‘한복 만들기, 구혜자 침선 노트’ 로도 여사는 전통 바느질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제법 익숙한 이름이다. 그는 ‘가르친 제자가 내 마음, 내 뜻을 흡족한 결과로 만들어냈을 때 가장 만족스럽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 점점 쇠락해가는 우리나라 전통 공예 분야의 전반적인 추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 침선분야는 일반인들의 관심도 많고, 실제로 ‘입는 옷’이다 보니 그래도 사정이 좋은 편이예요.

쓰임새를 이용해 돈을 벌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경우에는 상업적인 옷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고정적으로 큰 수입을 올린다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예요. ”

오히려 빠지면 빠져들수록 돈 들어갈 일만 늘어난다. 당장 재료비부터가 솔찮다. 같은 길을 생각하는 수강생들에게 여사는 시작부터 쐐기를 박아두는 이야기가 있다.

“ 당장 이걸 배워서 큰 돈을 벌 생각이라면 이 일이 마땅치 않아요.

실제로 그런 생각으로 오신 분들은 얼마 안 가 포기하더군요. 다들 한복이라면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장신구도 잔뜩 달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의상들을 연상하곤 하지만 그런건 어디까지나 영화 의상이지 우리의 실제 의상과는 다릅니다. 수익성을 생각한다면 딜레마가 생기죠. ”

여사는 요즘 새 숙제를 안고 목하 고민 중이다. 그는 정부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국쇄 제작’ 사업에 위촉된 장인 24명중 한 사람이다. 국쇄는 국가적인 주요 문서 등에 사용하는 도장이다. 옛날로 치면 왕실의 옥쇄와 같다. 이번에 만들 국쇄는 대한민국 네 번째의 제작에 해당한다.

“ 저는 국쇄를 올려놓을 보자기를 만드는 일을 함께 맡게 됐어요. 보자기 하나에도 침선뿐 아니라 염색, 자수 등 여러 분야의 장인들이 함께 작업을 하게 되지요.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뒤 제일 처음으로 맡겨진 중대사라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부담과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

서울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관에 마련된 여사의 공방은 언제나 실밥 투성이다.

한번 작업이 시작됐다 하면 주변이 금새 천조각, 실밥 등으로 어질러진다. 누군가 예고없이 손님이 다녀갈 때면 배웅 때마다 손님의 옷부터 살핀다. 바느질중 떨어진 실오라기나 실밥이 행여 손님 옷에 붙어나갈까 신경이 쓰인다.

“ 지금도 침선은 제 삶 자체나 다름없어요. 숨 쉬는 것처럼, 밥 먹는 것처럼, 바느질은 제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삶 그 자체가 되어 있지요. ”

올 11월에는 서울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을 통해 또한번 바느질 인생 40년의 대가, 구 여사의 고운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선대와 후대의 숨결을 덧대어 꿰매는 침선장의 바느질 한땀이 오늘도 가지런히 줄을 짓는다.

● 침선장이 되려면

전공 불문, 나이 불문. 일반인들의 경우 전통공예건축학교의 교양 강좌를 통해 입문할 수 있다.

본인이 원하고 적성과 가능성이 확인되는 경우 침선장의 전수장학생으로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전수장학생 경력 3년이면 이수자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수자로서 5년 이상 교육을 받으면 전수조교 후보 자격이 주어지며, 단 문화재청에서 직접 실사를 통해 대상자를 선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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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