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하나로 인생을 바꾼다화술교육과 달리 목소리 자체를 멋있게집중·감동 이끌어내는 악첼렌도 기법도호흡·공명만 잘해도 음성에 호감 실려

그와의 대화는 알 듯 말 듯한 선문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알아듣기 난해한 얘기다.

“ 노래하는 것이 말하는 것, 말하는 것이 곧 노래하는 겁니다. ”

보이스 컨설턴트(Voice Consultant) 여현구 박사의 지론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오페라 무대에서나 들을 법한 중저음의 중후한 목소리. 정말 노래하듯 말하는 그의 이 어려운 말뜻은 헤어질 즈음에야 해석이 되었다.

보이스 컨설팅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국내에 알려진 희소 전문직이다. 목소리를 활용해 그 사람의 일이나 삶의 질을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의사전달 수단의 약 80%가 목소리. 작게는 사석의 대화에서 상대를 감동시키거나 호감을 얻는 일, 더욱 직접적으로는 업무상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하는 일, 협상하는 일 등 폭넓게 적용된다. 목소리 하나로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철학이 여 박사에게 단호히 박혀 있다.

“ 사람의 목소리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 절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문가를 통해 훈련만 한다면 보다 좋은 목소리, 본인의 꿈을 더 쉽게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목소리를 가질 수 있어요. 조연을 주연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이 목소리 속에 숨어있지요. ”

화술 학원과는 다르다. '웅변‘의 용기와 내용이 아니라 목소리 자체의 조련을 담당한다.

“ 화술 교육의 경우에는 대개 거친 목소리, 우렁차게 내지르는 소리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소리를 너무 내지르다보면 원래의 음성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완전히 변할 수 있으므로 아주 조심해야 됩니다.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 학교 교사들의 약 80%가 인후경화증세를 앓고 있기도 합니다. ”

여 박사의 ‘목소리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와진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 7음7색

- 사람의 목소리는 7음7색으로 이뤄져 있다. 7음은 도레미파솔라시도 등 7가지의 음 높이를 말하고, 7색은 희노애락과 같이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각 목소리의 색깔을 뜻한다.

이것을 얼마나 고루 쓰느냐에 따라 본인의 삶이 결정된다. 가장 밑단계는 속삭임이다. 멜로디로 치면 ‘도’음에 해당한다. 적소적소에 잘 쓰기만 하면 웅변보다 더 값진 보석이 돌아온다. 제2,3,4(레,미,파)음은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목소리 높이다. 보통의 대화, 상담, 토론 등에 사용된다.

■ 직업과 목소리

- 홈쇼핑 채널의 쇼호스트들은 대표적인 제5(솔)음 사용자들이다. 한때 민영화 초기때 독특한 억양으로 성대모사의 단골소재가 되었던 전화번호 안내원들의 멘트도 이에 해당한다.

들뜬 듯하면서 화려하다. 짧은 시간에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상대를 귀빈처럼 떠받들어 주지만,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

빨리 질리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제6,7(라,시)음은 주로 웅변학원에서 들리는 소리다. 즉각적인 파급력은 커보이지만, 부산물로 찢어진 소리가 만들어지면서 자칫 상대에게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줄 수 있다. 코미디언은 제6(라)음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 권력을 만들어내는 목소리

- 7음7색을 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정치판에서도 패권을 차지한다. 장기 권력을 누린 故 박정희 대통령은 보이스 컨설팅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단한 고수다. 저음에서부터 고음까지, 7음7색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DJ는 제8(높은 도)음을 주로 사용한 정치인이다. 말 잘하는 방송 앵커 출신의 정치인들이 상당수 정계에 진출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대작’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소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앵커들은 주로 제3,4(미,파)음이 발달한 이들이다.

7,8음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고음을 포함해 선동적인 목소리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에 오른다. 저음, 즉 제1음에서 4음 정도까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은 내실파들이다. 선거캠프의 참모진 대부분이 이 유형에 속한다.

■ '수면제 목소리'의 이유

- 똑같은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똑같이 말해도 누군가에게서는 숨 막히게 실감이 나고, 누군가에서는 졸음과 하품이 몰려온다. 이같은 ‘재우기 명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7음도, 7색도 없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 높이가 비슷하고, 목소리가 허스키하며 말이 어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고수의 기본, 악첼렌도 기법

- 명창, 명가수에게는 남모르는 비법이 있다. 사람들의 집중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기본 원리다. 셈과 여림, 높고 낮음을 잘 이용해야 한다. 악첼렌도 기법은 속도를 천천히 내기 시작해 점점 가속도를 올리는 방법이다.

청중의 집중이 필요한 요소요소에 ‘미끼 상품’을 배치한다. 작게 속삭일수록 오히려 듣는 사람은 더 귀를 쫑긋하기 마련이다. 일정 부분에 이르렀을 때 반드시 클라이맥스로 결정타를 날린다. 이후 다시 속도를 낮추다가 잔잔하게 물 흐르듯 여운을 남기며 끝 맺는다.

여 박사는 ’91년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을 졸업, ‘93년 맨해턴 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거친 뒤 ’98년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약 3년간 김자경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한국성악학회 회장이자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99년경 그는 광고업계의 기린아로 불리며 현재도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 모씨에게 성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씨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했고, 여 박사로부터 지도를 받던 어느날 여 박사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얘기를 꺼냈다. 성악을 배우면서부터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성악식 발성이 몸에 배이면서 종전의 프리젠테이션보다 한결 부드럽고 설득력있는 프리젠테이션이 자연스레 흘러나와 전연 상관없어 보이는 본업에서까지 탁월한 효과를 얻고 있다고 했다. 노래는 말하듯이, 말은 노래하듯이 하자는 여 박사의 믿음이 그때부터 싹 텄다.

목소리의 위력에 확신을 얻게 된 그는 본격적인 컨설팅에 뛰어들었다. 성악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 모든 분야에 이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중 앞에서의 강연이 일상인 목회자에서부터 교사, 기업체의 간부직, 군인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지식을 나누었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알음알음으로 강연을 부탁하는 초청자들이 늘었다.

그가 청중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대략 두가지다. 숨 쉬는 방법과 목소리 공명법에 대한 것이다. 이 두가지만 제대로 해도 생활이 달라진다고 그는 확언한다.

“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갑자기 바짝바짝 입이 마르고 가슴이 떨리는 건 아드레날린 분비 현상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산소를 더 많이 공급해달라’는 신호지요

. 바꿔말하면, 무엇인가에 많이 긴장되거나 위축될 때에도 호흡법만 잘 조절하면 가슴도 진정시키고, 본인의 능력도 최대치까지 발휘할 수 있습니다. ”

건강을 위해서도 호흡법은 특히 중요하다. 호흡이 얕고 횟수가 잦은 동물일수록 수명이 짧다. 깊고 편안한 호흡은 우울증도 사그라들게 한다.

“ 말 자체로 본다면 ‘복식호흡’이란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호흡은 폐에서 이뤄지는 거지 배가 할 수 있는 기능이 아니거든요. 좋은 발성법이란 알고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공기를 들이마실 때 충분히 산소가 구석구석 들어갈 수 있도록 갈비뼈 안에 들어있는 폐가 쭉 벌어질 수 있게끔 가슴을 편안하고 반듯하게 펴주는 겁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폐활량이 적은 줄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이 가진 폐활량을 제대로 다 쓰지 못해서 힘들고 아픈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영화 대사를 읊듯 말하는 여 박사를 따라잡을 수 있는 두 번째 비결이 있다. ‘공명법’이다. 마법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목소리가 좋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목소리의 울림, 즉 공명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오페라 가수나 전문 성우들의 99.9%가 목소리 공명의 달인들이다.

“ 공명은 목소리를 더 아름답고 깊이있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소리가 혀 끝에서 나오는 우랄알타이어족 발성을 쓰지만, 혀 뒤쪽에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라틴어족 발성법을 이용하면 훨씬 기품있고 울림이 나는 소리를 얻게 됩니다. 소리가 혀 끝 쪽으로 갈 수록 ‘시장판’ 목소리가 되죠.

성악가들이나 성우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그윽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공명 효과 때문입니다. 새내기 아나운서들이 연습하는 것처럼 입에 볼펜을 물고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실제로 라틴어족 발성을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

폐 깊숙이 들어간 산소가 횡경막과 닿으면서 자연 진동이 일어난다. 이를 받아 입을 통해 소리로 꺼내는 과정에서 2차로 안면 공명을 거쳐야 아름다운 울림이 완성된다.

즉 폐에서 올라온 숨이 소리로 나갈 때 코를 통해 소리를 뽑아내는 것이 좋다. 둥글고 그윽한 소리를 만드는 숨은 비법이다. 이태리 출신의 세계적인 성악가 프랑코 코렐리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은 여 박사의 방식은 그렇다.

“ 자신의 직업에 활용하면 상당한 상승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험설계사 같은 영업직 사원만해도 단지 듣기 좋은 말재주로만 고객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 자체에서부터 깊은 신뢰감을 심어줌으로써 보다 쉽게 평생고객을 만들어낼 수 있죠.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목소리와 지구력을 가진 이들입니다. ”

보이스 컨설팅 분야는 아직 국내에 생소하다. 반면, 외국에서는 익히 알려진 전문영역이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마다 막후에는 각자의 보이스 코치가 자리해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뮤지컬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 컨설턴트들이, 할리우드에서는 영화배우 전문 보이스 컨설턴트들이 맹활약중이다.

이제 숙녀가 다 된 여 박사의 두 딸도 점점 더 발성이며 말투에서 아버지를 빼닮고 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신들과 어딘가 목소리가 다르다는 얘기를 곧잘 들어왔던 여학생들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곁에서 ‘노래같은 말 소리’를 듣고 자란 결과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열강을 벌이던 그가 뜬금없이 ‘어쭈구리’ 얘기로 돌아섰다.

‘뭍에 나온 잉어가 죽으라 뛰었지만 9리 밖에 못 가고 죽어서 ’어쭈구리(魚走九里)‘’라며 ‘아무 준비없이 허세만 부리다 낭패 보는 것을 빗댄 말’이라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는 그의 묵직한 중저음이 갑자기 더 느긋하고 나직해졌다.

‘자신의 목소리를 더 잘 활용해 어쭈구리가 아닌 어주백리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말과 함께 그의 1대1 공짜 강의는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방금 전 본인이 말했던 ‘악첼렌도 기법’이 불현듯 떠올랐다. “ 정말 끝까지 원칙에 충실하시군요!”라고 농을 건네자 예의 영화배우같은 목소리로 그가 껄껄 웃었다.

● 보이스 컨설턴트가 되려면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 경험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리 대중적인 직업이 아니다.

성악 등 발성과 관련된 전문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며, 단 발성법 자체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으므로 딱히 한가지로 규정하기 어렵다. 수요와 수입은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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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