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의학·동양 철학 등 험난한 학습과정 30%는 제때 졸업 못해스트레스·지나친 승부욕 등 정신적인 질병 요인 많아"일거리 많지만 보람있는 일… 잘 자는 게 보약이에요"

이름만 대면 알만한 60대 고위직 인사가 언젠가 다급히 그를 찾았다. 갑작스런 와사증(안면신경마비증)으로 입이 돌아가 있었다. 추운 겨울 지방 유세중 갑자기 증세가 나타났다고 했다.

참모진을 비롯해 측근과 가족들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노령의 나이와 사회적 지위도 아랑곳없이 환자는 젊은 의사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며 절망했다. 신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좌절에 부닥쳐 있었다.

“하지만 결국 1주일만에 다 나아 다시 TV에 나와 연설하시는 모습까지 보았어요. 사실 그때 그 분에게 말은 안 했지만, 실은 제 자신이 바로 그 1주일 전에 똑같은 일을 겪었던 터라 그 심정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고, 분명히 나을거란 저의 확신 또한 확고했지요. ”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한때 전문인으로서의 명망에다 활동량도 많았던 일중독자였다. 한의사 장현진(46) 박사. 서울 한성한의원 원장이자 20년 경력의 노련한 현역 의료인이다.

위의 와사증 환자를 만나기 전 몇 달 동안 그는 매일 진료에다 학회 일 등으로 하루 평균 2시간씩 자며 과로를 이어갔다. 미국 학회 참석차 떠난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입이 돌아갔다.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 충격과 심정은 위의 환자 그대로였다.

“스스로 환자 입장이 되어 건강과 잠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은 것도 그때부터입니다. 일은 열심히 하되, 잠을 절대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

10여년전쯤, 그는 하루 80,90명씩 환자를 진료했다. 오전 9시부터 7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만 빼고는 종일 치료실과 상담실 사이를 왕복달리기로 살았다. 단순계산만으로도 6분에 1명꼴로 환자를 쉴틈없이 진료하는 셈이다.

실제로는 침 치료만 필요한 재진 환자의 경우 한 환자당 걸리는 시간이 약 2,3분, 침만 놓고나면 바로 부리나케 상담실로 달려가 이미 들어와 대기중인 환자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초진 환자의 경우 기본 상담만 약 30분, 길게는 2시간을 넘길 때도 있다.

물어볼 것들은 무한대로 쌓였다. 최소한의 확인 항목만 추려도 수십가지다. 환자의 성별에서부터 체질, 주소(환자 본인의 주요 호소 증세), 증상, 병력, 가족력 등, 잘 하려고 들면 들수록 상담은 무진장 늘어난다.

“하루에 환자 10명 이상만 상담해도 정신이 없어요. 겉보기엔 조용한 대화 같지만 제 머릿속에선 계속 처방전이 돌아가지요.

순간의 집중도 자체도 높은데다 이것이 장시간에 걸쳐 이어지다 보니 하루 진료가 끝날 때면 거의 진이 다 빠져요. 그래서 최근엔 일부러 진료 보는 환자수를 하루 30,40명선으로 낮췄어요. 대신 연구에 많은 시간을 갖죠. ”

상담외에도 일거리가 산더미다. 한의학 치료는 크게 침과 뜸, 그리고 약 치료로 나뉜다. 어느 하나도 간단한 것이 없다. 침술만 해도 기본 원칙은 있지만 환자의 상황에 따라 침의 강도와 위치, 조합 등 전체 경우의 수가 무한정이다.

한약의 대표처방만해도 약 3백가지에 이른다. 이를 기본으로, 약재의 선택과 조합, 약재의 그램수, 사용 빈도, 환자의 연령과 성별, 체력의 경중 등 머리 아프도록 수많은 갈림길에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한의사는 무궁무진 뿌듯하고도, 무궁무진 고단한 자리다.

“흔히 갖는 환상과는 달리 실제로는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누구네 아빠가 한의사인데 잘 살더라’는 식의 소리만 듣고 무작정 도전하면 대학과정에서 이미 후회하거나 실패하기 딱 좋습니다. ”

신기한 건, 과로로 몸이 괴롭다가도 진료 순간만 닥치면 저절로 몸이 다시 깨어난다. 없던 생기가 샘 솟아오른다. 천직 한의사의 유쾌한 중독 증세다.

장 원장은 1986년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 1994년 동 대학원에서 ‘사상체질 의학’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현재 사상체질의학회 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의사가 된 것은 사실상 필연에 가깝다. 부친이 한의사였다. 4남매중 눈에 띄게 몸이 약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한약을 먹으며 자랐다. 행여 탈이 날세라 부친의 손길 아래 모든 생활습관이며 치료가 한의학 안에서 이루어졌다. 부친은 현업 당시 명의로 이름 나 있던, 사상체질 의학 초기 학자중 1인이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처럼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6년의 공부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험난했다. 너무 많은 지식들을 익히도록 요구 받았다.

동양철학, 동양의학, 서양의학, 생리학, 약리학, 병리학 등. 수술 등 임상 분야만 제외하고는 사실상 서양의학 이론 전반에다 동양의학과 철학을 모두 익혀야 했다. 도중에 그만두거나 전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같은 해에 입학한 동기생 중 약 30%는 유급 등의 문제로 제때 졸업하지 못했다.

장 원장은 특히 환자들의 체질 관리를 전문으로 생활 전반 관리 겸 상담을 맡고 있다. 초면의 환자든 단골 환자든 많은 속내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건강을 돕는다. 고부갈등에서부터 학생들의 학습 지도, 공부 일정, 성별과 연령을 불문한 인생상담까지 나누곤 한다.

의사를 가장 골탕먹이는 것은 본인의 증세나 발병 배경을 숨기는 환자들이다. 초기에 솔직히 털어놓았으면 제때 치료할 수 있는 질병도 환자가 부인하거나 숨기는 바람에 결정적인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환자와 의사 모두 헛된 고생과 통증을 치르게 된다. 고학력, 지식인층 환자일수록 금연 권유에 질색하는 애연가들도 장 원장의 ‘요주의 환자’중 1순위다.

“그래도 결국 너무 아파서 본인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다 끊게 됩니다(웃음).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꼭 아기를 키우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최대한 좋은 얘기로 아이를 얼러가며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끌어가는 것과 같죠. ”

현대인들의 질병 상당수는 그 안 깊숙이 직장문제나 가정불화 등 개인사에 얽힌 정신적 스트레스가 스며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나친 승부욕도 병을 부른다. 언젠가 한 어르신이 고혈압 등 여러 군데의 병을 안고 한의원을 찾아왔다.

치료가 계속됐지만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장 원장은 내심 의아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캐물어가다 보니 환자는 대단한 인터넷 바둑광이었다. 인터넷 바둑 중 십대의 손자뻘 상대와 대국을 하다가도 본인이 지기만 하면 바로 혈압이 치솟아 병원을 찾곤 했던 것이다.

대상포진으로 내원했던 어느 환자도 비슷했다. 대상포진은 대부분 몸이 약한 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세.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상대는 건강 체질이었다. 대상포진이 생긴 이유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보고 나서야 답이 나왔다. 환자의 취미는 테니스. 단, 어느 게임이든 상대에게 지기만 하면 바로 화가 나서 코트에 드러눕는 다혈질이었다. 취미가 취미 이상이면 질환에 가깝다.

장 원장은 89년에 개업했다. 그리고 약 10년후 한약재의 중금속 성분 논란이 터졌다.

간염 환자가 급증하자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수많은 생화학 분석 전문가들이 조사에 착수, 토양 오염 문제가 주 배경으로 포착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애꿎은 포격을 맞은 것이 한약재였다. 이후 잘못된 내용으로 혐의가 벗겨지긴 했지만, 당시의 독성 논란으로 인한 여파와 타격은 오늘날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문제의 대상은 오염된 토양에서 자란 계피나 버섯 등 음식과 차 등으로 누구나 쓰는 천연 식재료 모든 것들이었는데, 그 중 일부, 전체의 20%에 불과한 한약재가 전체 문제인 것처럼 오해를 받은 거죠.

요즘은 한의원들에서도 엄격히 검사기준에 합격한 약재들만 사용하고 있고 특히 대한한의사협회에서는 최근 ‘클린 한약재’ 제도까지 도입해 검사에 합격한 약재만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워낙 한의학 시장이 크다 보니 상대적으로 치르게 되는, 일종의 과도기 현상이라고 봅니다. ”

와중에 휴식 없는 격무로 본인 역시 건강의 무서운 경고를 겪은 바 있다. 자신의 의학적 소신과 실력 그대로 잠깐의 와사증은 곧 회복되었고, 그때부터 의사로서든 개인으로든 일상 생활에 새로운 생각과 철칙의 변화가 찾아 들었다. 무엇보다 수면, 숙면에 대한 것들이었다. 실제로 그와의 대화 중 상당 부분도 ‘제대로 숙면을 취하는 법’에 대한 요긴한 정보들로 이뤄졌다.

“충분히, 깊이 잘 자야 건강해집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후 6-7시쯤 소화가 잘 되는 좋은 음식을 먹고 약 30,40분간 가벼운 산보를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사실상 ‘잘 자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9시 뉴스는 절대 보지 마세요.

숙면의 최대 적이자 독입니다. 살인사건, 비리 등의 소식이 우리의 뇌를 흥분시켜 겨우 안정기에 막 들어가려는 몸 상태를 다시 해쳐놓습니다.

당연히 잠도 방해합니다. 밤11시쯤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고, 잠들기 전에 본인이 좋아하는 양서를 읽는다든가 요가, 명상을 하거나 아이들에겐 밝고 좋은 내용이 들어있는 동화책을 나직하게 읽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반드시 불을 끄고 조용한 가운데 자야 한다는 겁니다. 반드시 주변이 어둡고 조용해야 숙면이 가능합니다. ”

흥분은 흥분이지만, 취침전 부부관계는 오히려 숙면에 도움을 준다. 단, 부부간의 애정과 동의가 전제된 하에 서로의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진 상태에서의 얘기다.

이 경우 뇌의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피가 돌면서 뇌의 혈행을 확 뒤집어주는 역할을 한다. 동반효과로 순간 수면을 일으킨다.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대지진과도 같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한마디. 일중독자들에 대한 선배로서의 황금 조언이다.

“잠 자리에 누우면 과감하게 그 날 일은 덮어야 합니다. 마치 앨범을 덮듯이. 저도 이 훈련에 성공하기까지 개업 후 3,4년이 걸렸습니다. 종일 진료하고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워도 ‘그 환자가 과연 괜찮을까, 지금 어디가 아프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로 처음엔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최선을 다한 후의 결과는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생각을 계속 스스로 되뇌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결국 일과 잠의 분리가 가능해지더군요. ”

자신의 선친이 걸어온 행로 그대로, 장 원장 역시 해가 갈수록 점점 경제적 수입보다는 공부에 빠져들고 있다. 진료 자체가 본인의 현장 공부이자 수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봉사 정신이 있으며, 동양 학문과 연구를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최고의 직업’이라고 그는 말한다. 딱히 정년이란 것도 없다. 서울 강남에는 90대 고령으로 활동 중인 한의사도 있다.

보람도 크고, 어려움도 못지않게 크지만 날이 갈수록 한의사에 대한 동경이 높아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현실이다.

“ 중고등학교 때 학습 문제로 상담해 줬던 어린 친구들이 나중에 보면 한의사가 되어 나타나 제가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그것도 과학을 좋아해 과학고에다 대학 진학 때도 과학관련 학부에 가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한의대에 들어갔다고 했다가, 나중에 보면 정말 한의사가 되어 나타나 학회나 한의사협회에서 마주칠 때가 있지요. 한편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사실 있어요(웃음) ”

● 한의사가 되려면

경희대, 원광대를 포함해 전국 11개 대학교에 한의학과가 개설돼 있다. 기본 교육 6년 과정. 수업 불충실 등 일정 기준에서 낙오할 경우 유급 당하거나 제적될 수 있다. 졸업 후 한의사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해야 정식 자격이 주어진다. 전문의가 되려면 수련 병원의 전문의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국가고시 합격 후에도 기존 한의원에서 1,2년간 근무하거나 군의관 복무 등으로 현장 경험을 쌓은 뒤 개업하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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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