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쳐간 PD만 120명… "민심 살피러 지방 해장국집·목욕탕 자주 가요"

“전국노래자랑은 대표적인 B급(저제작비, 스타 없이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이다. 거기에 나온 일반인들은 일단 튀고 봐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웃기려는 몸부림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시청자는 그 지점에서 묘한 흥미를 느낀다.”(어느 방송국 관계자의 말)

이 관계자의 지적처럼 KBS TV <전국노래자랑>은 일반인들이 나와 노래 부르는 아주 간단한 포맷으로 30년 가까이를 ‘버티고 있다’. 그 뿐인가. 여타 가요프로그램이 개편과 폐지를 반복하는 동안 부동의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낮, 국민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전국노래자랑이 1,400회 방송을 앞두고 있다. 무려 27여 년의 세월이 담아낸 진기록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힘은 누가 뭐래도 진행자(MC) 송해(81) 씨. 이제 ‘송해 없는 노래자랑’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프로그램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1,400회 방송을 앞두고 있는 국민 MC 송해 씨를 만났다.

“전국노래자랑의 주인은 방송국도, MC도, 스텝도 아니고 국민입니다. 여기는 자격기준이 없어요. 예심에서 뭐든지 보여주고 통과되면 주인공이니까. 국회의원도 나오고 반찬가게 하는 아주머니도 나오고. 똑 같은 자격으로 설 수 있는 무대가 노래자랑이거든요.”

국민 MC 송해 씨는 롱런 비결에 대해 말했다. ‘누구나 주인인 무대’가 전국노래자랑의 가장 큰 매력이란다. 1980년 방송을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은 84년부터 지금의 송해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햇수로 24년간 방송을 진행한 셈이다. 덕분에 그가 얻은 별명은 ‘일요일의 남자’. 그는 “그 동안 거쳐간 PD만 120명인데, 그 많은 분들이 아이디어를 쏟고 정열을 부어서 기반이 닦아졌다”고 강조했다. 27 년의 세월을 거치며 전국노래자랑은 시대를 담아내는 ‘영상기록’이 됐다.

“전국노래자랑 처음 시작했던 필름을 보면 여자 분들은 10명에 9명은 파마를 했어요.또 10명에 8명은 한복이었죠. 옛날에는 남자들이 노래할 때 가만 서서 했습니다. 지금은 가만 서서 하는 걸 못 봐요. 뭘 해도 들고 뛰지. 그러니까 세월의 변화를 전하는 역할을 우리(노래자랑)가 하게 된 거죠.”

출연자들은 종종 김치며 떡을 가져와 할아버지 뻘인 진행자에게 먹이고 엉덩이를 두드린다. 바짝 얼어있던 출연자도 진행자와 대화 몇 마디를 나누다 금세 긴장을 풀고 구성지게 노래한다. 송해 씨는 그의 말처럼 출연자를 ‘뭘 해도 들고 뛰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대화 밖에 없어요. 아마추어들은 사람 많은 데만 가도 이름이 생각 안 날 때가 있습니다. 그 마음을 풀어 주려면 대화밖에는 없어. 그래서 저는 출연자와 대화를 많이 합니다. 방송 전에 ‘연출가가 하는 말 신경 쓰지 말고, 맘대로 떠들어요’라고 하지. 그럼 다들 환하게 웃어요.”

그는 노래자랑 녹화 하루 전 지방에 가서 마을을 살핀다. 시장 해장국 집과 목욕탕은 그가 ‘민심’을 확인하기 위해 자주 가는 장소다.

■ 초등학교 4학년생이 "송해 형" 불러

“예전에 내가 길을 가면 ‘송해간다’그랬어요. 그런데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오랫동안 하자 언제부턴가 ‘어! 노래자랑 간다’ 그러더군요. 요새는 달라졌어. 여자 분들은 대개 ‘오빠’그러고, 중고등학생들은 내가 전철타면 자기들끼리 얘기하다가 ‘어! 딴따다다다다다~’ 이러고 로고송을 불러요. 얼마 전 나주에 갔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꼬마가 “송해 형, 나 거기 출연할 수 없어?” 하더라고. 이렇게 부르는 게 장난하곤 다른 거 같애. 노래자랑 시청자 폭이 넓으니까 진행하기 굉장히 조심스러워지죠. 한 시도 한 눈 팔 수가 없어요.”

수 십 년 관록을 지닌 진행자이지만, 그는 아직도 “대 여섯 번 대본을 읽고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으면 작가에게 의도를 물어본다”고 한다. 출연자의 장점을 끌어내기 위한 준비다.

수 십 번 해외공연을 다니면서도 단 한번도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방송 준비에 방해가 될까 하는 노파심에서다. ‘원칙주의자’ 송해 씨는 요즘 MC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MC가 이건 꼭 지켜야 된다’하는 그런 건 없어요. 방송환경이 계속 변하니까. 다만, 진행자는 출연자보다 말을 많이 하면 안돼요. 진행자는 출연자를 소개해주고 장점을 발견하는 입장이지. 내가 어떻다고 하고 남을 무안주면 잘못됩니다. 간혹 보면 자기가 웃기려고 남을 걸고 가는 사람이 있어. 그건 출연자의 특징을 발견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20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개성은 있지만, 정석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어떤 시청자가 보더라도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진행을 하는 것이 MC의 본분이라고. 젊은 MC들의 가벼운 진행에 대해 쓴 소리도 덧붙였다.

“난 요새 ‘개그’라는 말도 이해가 잘 안 와요. 우리 본분은 희극인이지. 희극은 먼저 정극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비극을 알아야 희극을 하는 거야. 극을 보고 돌아가면서 ‘그것 참 재미있는 일이야’ 관객이 이렇게 말하면 이게 진짜 희극이지. 근데 그렇지 않은 프로가 많아. 잠시 폭소가 쏟아지는 게 진짜 재미있는 게 아니에요. 요새 프로그램이 일회용이라 좀 아쉬워.”

전국노래자랑이 사랑 받는 이유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기 때문이란 뜻이다. 송해 씨는 “지난 시절 희극인이 대중 앞에 웃음을 주면서도 대중에게 소외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요. 지난 시절 우리 원로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애 썼다는 건 분명히 인정해 줘야 돼. 그렇죠? 나도 남은 세월 옆을 존중하고, 받들어 주고 하면서 동행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찾아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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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