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크고 과감하고 인심 좋고… 창사 30주년 맞아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 올라

주식회사 지엔텍홀딩스는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환경설비 전문 회사다. 집진설비 국산화에 성공해 포스코, 한일시멘트 등과 함께 성장한 회사다.

자체 개발한 ‘마이크로 펄스 에어백 필터’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자원부국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유전사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2007년 현재 매출액은 700억 원 정도이고 주가총액은 2,000억 원에 이른다.

■ 세계적인 기술력 자랑하는 집진설비 개발 이 회사 정봉규 회장은 통이 크고, 과감하고, 주변에 잘 베풀기로 유명하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기업은행이 선정한 ‘2007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은 선정 절차가 엄격하기로 유명해서 중소기업인들에게는 큰 영광의 대상이다.

정 회장은 2006년에는 자신의 모교인 청주 대성고등학교에 30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해 청주 시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청주 인근의 인재들이 대성고등학교에 몰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은 코스닥 부자가 되었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한때는 영화를 한답시고 충무로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강원도 삼척 근처의 불영계곡에서 송진 채취 작업장의 감독 일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톱니바퀴 하도급, 수출용 포장박스를 만드는 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지만 하는 일마다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환경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결코 수월치가 않았다. 국산화에는 성공했지만 영업실적이 없어 수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빌린 사업자금에 대한 이자가 불어나면서 그는 돈을 꾸러 다니기에 바빴다. 처가와 친척을 비롯해 부인의 친구에게까지 손을 벌렸다.

■ 송진 채쥐·톱니바퀴 하도급 등 밑바닥 생활 부채는 순식간에 늘어났다. 1981년 초에는 원금 3억 원에 부채가 7억 원까지 늘어났고 한달 이자만 2,100만원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 지친 나머지 그는 월급날이 다가오던 어느 날 부인과 맥주를 마시다가 “같이 죽자”는 말을 내뱉기까지 이른다.

하지만 부인은 “죽으려면 혼자 죽으세요”라고 대꾸하며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이유를 세 가지만 대 보라고 말했단다. 또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한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봐요.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힘들면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내가 시장에 나가서 일을 해도 되고 당신이 운전을 해도 되니 다시 한 번 해봐요….” 이 말에 그는 용기를 얻어 일을 다시 시작했다.

정 회장의 결단력은 배울 점이 많다. 마이크로 에어백 필터를 어렵게 개발한 뒤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때였다. 그때 대성목재에서 집진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보름 만에 이를 제작해 대성목재 앞마당에 설치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제안한다. “2주일간 써보고 제품에 하자가 있다면 돈을 받지 않겠다.” 이런 배포와 자신감이 첫 수주로 이어졌다.

그는 수주에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예지몽을 꾸기도 했다. 한일시멘트에 집진기를 납품하려 했지만 잘 풀리지 않던 어느 날, 그는 한일시멘트 앞 개천에서 천렵을 하는 꿈을 꾼다. 그런데 엄청나게 큰 메기가 걸려들었고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마침내 가슴에 품는 꿈을 꿨던 것. 결국 그는 수주에 성공했다.

이런 에피소드들을 보면 역시 모든 일에는 열정이 최고인 것 같다. 이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일을 한 결과 그는 한일시멘트, 포스코 등에 납품을 하면서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 놓았다.

그는 일도 열심히 하지만 회사를 이끌어가는 리더십도 대단하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수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그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노동조합이 ‘노사 영구평화 및 임금 무교섭’을 선언했던 것은 그의 리더십이 절정을 이뤘던 사례다.

정 회장은 돈을 버는 것 못지않게 쓰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청주 대성고등학교에 30억 원을 기부한 일도 그런 활동의 하나다. 사실 그는 이전부터 후학들을 위해 장학금을 계속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찔끔찔끔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는 ‘시드머니’(종자돈)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이런 결심을 한 것이다.

사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서 30억 원을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가진 자가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해야만 사회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또한 그것만큼 가슴 뿌듯한 일이 없다는 사실도 느끼고 있다.

인터뷰를 가진 날 그는 양복 주머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예전에 그에게서 장학금을 받았던 여학생이 대학에 들어가서 보낸 것이었다. 사무실에는 대성고등학교 관계자들이 보낸 감사의 말을 모은 액자도 걸려 있다.

이에 대한 정 회장의 말이다. “가슴이 너무 뿌듯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가슴 벅찬 일인지 몰랐습니다. 여기에 적혀 있는 대성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격려들과 대성고등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후배들의 글, 그리고 편지를 보고 있으면 제가 살아온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합니다. 이들의 이런 격려가 제 인생의 새로운 3막에 커다란 힘을 주고 있습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함께 하기에 더욱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모교에 장학금 30억 원 기탁한 큰손 뭐니 뭐니 해도 그의 핵심 경쟁력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고, 사람들에게 베풀기도 잘 한다. 그래서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넘친다.

그가 이 정도로 사업을 일으킨 것도 사람에 대한 애정 덕분이지 결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람을 보는 안목도 남다르다. 그의 말이다.

“저는 사람을 뽑을 때 관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관상은 생각과 습관이 겉으로 드러나 형성된 것입니다. 잘 웃는 사람은 웃는 상이 되고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은 화난 얼굴을 하게 되죠. 그래서 얼굴은 평상시 그 사람의 생각과 생활을 볼 수 있는 정보의 덩어리지요. 얼굴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앉은 자세도 관상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식의 축적, 경험과 실패의 축적, 사람의 축적…, 이런 것들이 쌓여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초년에는 고생도 많이 하고 위기도 많이 겪는다. 정봉규 회장 역시 그렇다. 젊은 시절의 시행착오, 패기와 열정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다. 여학생의 편지를 보면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고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 약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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