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영화 '열 한번째 엄마' 자원 출연… 뭉클한 연기로 변신 또 한번"20년 넘는 주연 역할은 행운"… 결혼은 아직 때가 아니에요

배우 김혜수에게는 이성적이고 똑 부러진다는 이미지가 있다. 청소년 시절 데뷔해 무려 20년 이상 주연을 놓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의 첫 인상은 역시 야무지다는 것이었다.

“식사 하셨어요?” “스웨타가 예쁘네요.”

첫 대면에도 스스럼 없이 대하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지난해 흥행작 <타짜>에서 섹시한 마담 연기를 하더니 <좋지 아니한가> <바람피기 좋은 날>에서 변신을 거듭했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열한번째 엄마>(감독 김진성ㆍ제작 씨스타픽쳐스)에서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엄마가 됐다.

김혜수가 출연한 <열한번째 엄마>는 저예산 영화다. 사실 김혜수에게 출연 제안은 없었다. 오히려 우연히 시나리오를 접한 김혜수가 직접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시나리오가 참 좋았어요. 좋은 이유는 여러 개죠. 가슴 아프고 속상한 이야기에요. 보고 나서 ‘이런 사람도 정말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마음 속으로 울컥울컥 그려졌어요. ‘내가 모르는 이런 인생이 있구나’ ‘존재하는 이라면 어떻게 살까’ ‘복에 겨워 엄살 부리지 말자’ 등 많은 생각을 했어요.”

김혜수는 톱스타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딴죽을 거는 질문에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스타로서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다”고 하자 “장동건은 <해안선>, 차승원은 <아들>에 출연했죠. 저도 <쓰리> <좋지 아니한가>에 나왔고요. 배우라면, 영화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작품이라면, 단지 개런티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출연 안 할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김혜수는 <열한번째 엄마>에서 숏커트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출연한다. 김혜수는, 이런 시도는 칭찬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뉘앙스로 질문을 던지자 “이 여자의 처지나 입장이 단장할 상황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분홍신> <좋지 아니한가> <바람피기 좋은 날>에서도 화장도 안 하고 옷도 막 입었는데요? 물론 이번이 좀 심하긴 하죠, 호호”라고 말했다.

어떤 질문에도 <타짜>의 정 마담처럼 조곤조곤,그러나 물러섬 없이 답했다. 그런 김혜수의 표정이 환해진 것은 영화 속 아들 재수 역을 맡은 김영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김영찬의 별명이 ‘천사’였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가공하지 않은 순수한 감성에서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았죠. 오래 아역을 했는데도 잘 자랐던걸요. 눈이 너무 예쁘고 슬퍼 보여요. 타이트한 일정에도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내 손이 차다고 잡아주고요. 극에 몰입하면 빠져 나오기 힘들어 하더라고요. 카메라가 잡아내지 못할까봐 안타까울 정도로 순수하게 연기를 했어요.”

재수는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매번 바뀌는 엄마들에 지친 아이다. ‘열한번째 엄마’ 김혜수와 티격태격하다 정이 들어 버린다.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힘든 연기를 하느라 김혜수는 2개월여간의 촬영 기간 동안 평소에도 우울한 채 지냈다. 가끔 옷가지를 가지러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가 “그래도 너무 우울해 하지는 말거라!”고 당부했을 정도란다. 김혜수는 “제 모습을 보고 슬픈 영화인가 보다고 어머니가 짐작하셨나봐요. 좀 낯설었던지 그런 말씀을 다 하시더라고요”라며 김혜수 특유의 애교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코를 찡긋해보였다.

김혜수는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사적인 영역까지 침범을 받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번 영화는 저예산 영화인 만큼 제작비 절감을 위해 빡빡하게 촬영되어 사적인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적으로 힘들게 유지가 되었다고 한다.

“저는 사적 공간에서는 연기와 별개로 사는 편이에요. 설경구는 <그놈 목소리>의 막바지 촬영을 위해 실제로 1주일간 안 자고 안 먹었다죠. 배우마다 캐릭터에 어프로치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아요. 정답은 없겠지만요. 이번엔 일정이 타이트해 사적 기운을 배제하고 싶었어요.”

김혜수는 요즘 박해일과 함께 경성시대를 다룬 <모던보이>를 촬영 중이다. 지난해 <타짜>와 <좋지 아니한가>를 겹치기 촬영했듯 올해도 쉴 틈이 거의 없었다. 돌이켜 보면 20여년을 그랬다.

“그래요, 정말 연기한 지 오래되었죠, 호호. 어려서 주연을 한 것은 제가 잘 해서가 아니라 신선해서였던 것 같고요. TV드라마는 일상적인 게 미덕이라 시청자에게 제가 친숙했던 것 같아요. 2000년 이후 영화적 고민을 하며 작품을 선택하긴 했죠. 다행히 좋은 작품을 잘 만나요. 오래된 얼굴이 익숙하고 편안하지만 지루함일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제가 행운이죠. 노력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요? 노력은 다들 하죠. 하지만 노력해도 기회가 없으면 안 될 텐데 기회가 주어지니 감사해요.”

똑부러진 이미지와 달리 평소 김혜수는 어수룩하다. 미니홈피에 각종 사진과 글을 올리기 좋아하지만 김혜수는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팬 관리도 아니고요”라고 말했다. 집에 있을 때는 ‘맹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두기도 한다. 조카들 보러 다니기도 하고 5남매가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제가 사실은 요리를 잘 해요. 밖에서 맛있는 음식 먹어보고 집에 와서 하면 그대로 되요. 생선조림에 녹차가루를 넣기도 하고, 크림스프 대신 두유와 코코넛을 섞어서 똑 같은 맛을 내기도 하죠.”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을까.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아직 적당한 때가 아니라고 한다. 나이 때문에 억지로 할 생각은 없다. 일 욕심도 크지만 개인적인 선택을 그것 때문에 보류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하겠다고.

사적인 이야기를 내놓을 때는 상당히 감수성이 깊어 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스스로 감성적이라고 보느냐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김혜수는 “감성이 아니라 감정적이죠. 태어나길 감성이 풍부하게 났어요. 감정적인 천부함을 극복하려 이성적이려 노력하죠. 그래서 오히려 연기할 때 감성이 부족하다고 오해하는 감독도 간혹 있죠. 하지만 저는 결정적일 때는 이성적이지 않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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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연예부 이재원기자 jjstar@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