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聖)과 속(俗)은 둘이 아니다' 사제의 길 좌절 후 과감한 진로 변경사업 초창기 혹독한 시련… 아내의 약국 금고서 밥값 슬쩍하기도해외시장 개척·기술개발에 '올인'…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키워

유도실업은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핫러너와 산업용 로봇을 만든다.

특히 핫러너 분야에서는 세계 1위다. 핫러너는 플라스틱 제품의 대량생산에 필수적인 핵심부품으로 금형 내에서 원료가 굳지 않고 골고루 퍼지도록 열선을 내장하고 있다.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데 대당 가격은 100만 원부터 1억 원까지 다양하다.

유도실업은 해외 17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고, 7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한다. 지난해 531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해외법인 매출을 더하면 1,200억 원 정도가 된다.

경기 화성에 있는 본사에 도착한 순간 필자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고급 리조트에 왔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당 건물처럼 생긴 공장 외관, 멋진 조경(심지어 인공 폭포까지 있다), 우아하게 설계된 내부와 곳곳에 걸린 그림들…. 공장도 이렇게 지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 유영희(61) 회장을 보는 순간에도 독특한 인상을 받았다. 마치 성직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쇠를 다루는 회사의 오너라고는 전혀 보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집안은 4대째 가톨릭을 믿을 만큼 신앙이 골수에 박힌 집안이다. 7남매를 둔 부모님은 자식 중 신부와 수녀가 하나씩 나오길 기원했다.

그는 광주 사레지오중학교와 사레지오고등학교를 나와 가톨릭대학을 졸업해 착실하게 사제의 길을 걸었다. 한 번도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원 1학년 때 사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신부 외에 다른 길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 사건이 젊은 유 회장의 인생을 흔들어 놓았다. 이때 “성(聖)과 속(俗)은 둘이 아니다”란 신학자 본 회퍼의 말이 그를 위로한다. 비록 신부가 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세상 안에 들어가 실천하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이 세상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랫동안 신부 공부를 하는 바람에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게 된 것도 세상 물정을 몰랐기 때문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는 기업인이 뭔지도 몰랐지만 기업인이 될 목표를 세운다.

이를 위해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기업 두 군데, 중소기업 두 군데를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참 남다른 생각이다. 그래서 대우전자 2년 남짓, 금호전자 2년 남짓, 대우전자의 하청업체인 세청산업을 1년 정도 다녔다. 그가 핫러너라는 아이템을 만난 것은 세청산업 이사 시절 전문서적을 읽을 때였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강한 의지와 신념이 없는 사람은 불가능하다. 그는 1980년 핫러너 아이템을 갖고 독립을 한다. 핫러너에 ‘필이 꽂혀’ 핫러너의 판매권을 가진 무역회사에 1년간 무보수로 일을 하면서 여기에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약국을 하는 아내에게 “집에 있는 돈은 가져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6년간 별다른 성과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생활이란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그

는 점심 사먹을 돈이 없어 약국 금고에서 아내 몰래 1,000원짜리를 두 번 훔친(?) 경험이 있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최대의 위기였다. 하지만 그 자신은 고통스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단다. 신부가 되는 데 실패했는데 또 다시 실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매달린 것이다.

1984년 무렵 코엑스에서 무슨 전시회가 있었다. 돈을 쏟아 부었지만 성과는 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현대건설이 그 동안 만든 건물의 모형을 보다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깟 히터 하나를 못 만들고 헤매는데 저들은 저렇게 멋진 건물을 수도 없이 만들다니.” 그 날 이후 그는 자신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다. 겸허해지고 실체를 인정하게 됐다. 그 이후 회사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유도실업은 1996년부터 해외 수출에 나섰다. 곧 이어 터진 외환위기 덕분에(?) 회사는 한 단계 점프업을 한다. 달러 값이 올라 현금 흐름이 좋아졌는데, 이를 모두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또 한국시장이 죽자 금형업체들이 외국 수출을 모색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도실업의 영업사원 역할을 해준 것도 보탬이 됐다.

유도실업은 고유 브랜드, 직영 판매체제로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만약 국내시장에만 안주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또 기술에 ‘올인’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작은 회사지만 핫러너 분야를 평정한 것도 기술력 때문에 가능했다.

유도실업이 보유한 80여 개 특허 가운데 50여 개가 유 회장이 직접 낸 아이디어다. 해외 출장 길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본사로 연락해 시제품 제작을 지시한다. 그는 중소기업은 최고경영자가 기술에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전문경영인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지만 기술에 관해서는 아니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비는 무한대다. 번 돈은 모두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왔다. 2000년 150억 원을 들여 무인생산시스템인 ‘사이버 팩토리’를 지었으며, 넘치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향후 또 다른 사이버 팩토리를 건설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이 회사에는 영혼이 살아 있다. 곳곳에 유 회장이 직접 쓴 ‘유도(柳道)의 길’ 이 걸려 있다. “유도는 땅에 그 발을 내딛고 있으나 항상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유도는 인간의 길이며 정성된 삶의 장이다(중략).”

약간 종교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는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직원들에게는 ‘혼(魂)을 녹이는 열정’을 요구한다. 경영방침은 인격경영과 정직투명 경영이다. 친인척이 없는 인성중시, 지역색이 없는 인재중시, 학력차별이 없는 능력중시가 그것이다. 또 중소기업이지만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을 이미 1990년에 도입했다. 대단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필자처럼 수많은 기업을 다니는 경영컨설턴트는 어떤 회사에 가면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고 판단을 한다. 이 회사가 잘될 것인지, 아니면 시원찮을 것인지…. 그때 중요한 것이 사무실 분위기와 직원들의 표정이다.

이 회사는 남달랐다. 직원들의 표정이 밝았고 안내를 한 직원도 자부심에 넘쳤다. 만약 이 회사가 상장기업이라면 당장 주식을 구입했을 것이다. 왜 유 회장이 기업은행과 중소기업진흥회 명예의 전당에 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유도실업이 좋은 회사를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가길 기원해 본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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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