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사고·직감을 통한 유연한 투자… 부임 1년 만에 지방공무원 상조회 자산 1조 원 늘려새만금 문제 등 골치 아픈 일 많았던 전북 부지사 시절이 인생의 가장 큰 고비특유의중재·조정 능력으로 높은 평가… 안정 대신 도전으로 조직문화 혁신

미래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조직은 어디가 될까? 정부, 대기업, 군대, NGO…. 모두 틀렸다. 미래에 가장 큰 권한은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조직에게 돌아갈 것이다. 미국으로 따지면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 같은 초대형 연금이다.

캘퍼스는 140만 명의 회원, 150조 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면서 주식시장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업들도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딴 짓을 하면 바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투자는 국경도 없고 영역도 제한되어 있지 않다. 돈이 된다면 어디든 언제든 간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교직원공제회(회원 65만 명, 자산 15조 원), 군인공제회(회원 16만 명, 자산 7조 원), 행정공제회 등 ‘빅3’ 특수직역 복지기관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 중 23만 지방공무원의 상조회 성격을 띠고 있는 행정공제회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자산이 2조원에 불과했으나, 현 이형규(55) 이사장이 부임하면서 단 1년 만에 자산 규모가 무려 1조원이나 늘어나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 이사장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이 이사장의 첫 인상은 잘 생긴 학자처럼 보인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차분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뭔가 단단한 내공이 있다는 느낌이 왔다. 1년 만에 그런 성과가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행정공제회 이사장 자리는 고위 공무원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자리였다.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안전한 채권에만 주로 투자했다. 하지만 채권 이자로는 자산을 불리기 어려웠다. 쟁쟁한 CEO들과 경쟁을 거쳐 대의원 3분의2 이상의 지지를 얻어 이사장 자리에 오른 그는 관행을 혁파하고 뭔가 보여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통계학과 출신이다. 통계학은 수많은 데이터를 다룬다. 조사방법론을 통해 데이터를 정리하고 그것에 근거해 결정을 한다. 그는 몸에 그것이 밴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생각의 중요성’이라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봤다. 그의 말이다. “저는 공부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떨어졌고 2차로 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왜 그런지 반성을 했지요. 소화되지 않은 지식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가급적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추가로 공부를 하지 않았고 시험 때 며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봤습니다. 당연히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가 없으니 어설픈 지식이지요. 조금만 응용을 해도 풀지 못합니다. 이후 공부방법을 바꿨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인지 대학 3학년 때 별 준비도 안 했는데 행정고시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 방법이 뭐냐고 다시 질문을 하자 이런 대답을 한다. “우선 책을 보지 않는 겁니다. 대신 직접 문제를 보면서 생각을 해보고 답을 내는 겁니다. 생각하고 고민하다 비로소 알게 된 지식은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참 지식’이 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도 우리만의 생각을 가질 것을 주문합니다.”

그가 임직원에게 또 하나 주문하는 것이 있다. 유연성이다. 그는 주가전망 같은 것은 보지도, 하지도 말라고 주문한다. 거의 맞을 확률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를 가정한 예측은 변수 중 하나만 틀려도 빗나갈 확률이 높은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것이 고정관념으로 작용해 유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깊이 생각한 뒤에 떠오르는 직감을 활용하라고 주문한다. 높은 수익은 늘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법이다.

그의 주특기 중 하나는 중재와 조정이다. 그는 23년간 국무총리실에서 일하면서 28명의 총리를 보필했다. 마지막에는 총괄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의견이 다른 부서를 모아 회의를 주재하면서 결론을 내게끔 도와주는 역할이다. 거기서 갈고 닦은 실력이 행정공제회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조직을 바꾸면서 전문가들을 경력사원으로 채용했다.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기존 직원들은 대자보를 붙이면서 반대를 많이 했다. 그는 노조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서 설득했다. 그 방면에는 ‘9단’이다. 회의 주재에도 선수다.

“저는 가급적 선입관 없이 일을 하려고 합니다. 큰 투자를 할 때는 늘 의견이 엇갈립니다. 실무자들끼리 회의석상에서 충분히 얘기를 하게 합니다. 저는 잘 듣고 그 자리에게 판단을 합니다. LG카드에 3,600억 원을 투자하는 것은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팀장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그래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투자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총리실에서 전라북도 부지사로 발령을 받아 일한 3년이 그에게는 가장 큰 위기이고 시련이었다. 거의 차관을 바라볼 때 국장급인 부지사로 일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너무 골치 아픈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전북은 새만금, 부안 방폐장 건립 문제 등으로 시끄러웠다.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그는 일단 임무가 주어지면 우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모든 사람이 말렸지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우선 현장에 들어가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고생도 크게 했다. 생각처럼 성과도 나지 않았다.

방폐장을 군산으로 보내려다 결국 경주에 빼앗겼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는 공력도 길렀다.

“국무총리 총괄조정실에서는 머리로만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전북부지사 시절에는 가슴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여기(행정공제회)에서는 머리, 가슴, 손이 같이 일을 합니다.”

행정공제회에 온 뒤 그는 새로운 일을 많이 벌였고 지금도 벌이고 있다. 채권 위주의 투자를 주식 위주로 바꾸었다. 수익률은 무려 43.2%에 달한다. 남들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영화 등 문화산업 쪽에도 투자해 성공을 거두었다. 복합영화상영관 ‘메가박스’를 인수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의 투자원칙 중 하나는 명분이다. 문화 시대인데 이쪽으로 가지 않을 수 없고, 중간에 실패를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투자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프라 구축 사업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성남 판교신도시 중심상업용지 프로젝트에서 파이낸싱 민간사업자로 선정된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사람들은 대개 안정을 추구한다. 젊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려는 가장 큰 이유도 직업이 주는 안정성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된 사람들 눈에서는 광채가 나지 않는다. 안정이란 것은 좋기는 하나 삶의 활력을 빼앗아 간다.

이형규 이사장의 눈은 빛나고 있다. 새로움이 그에게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가 이끄는 조직도 활기에 넘쳐 있다. 안정 대신 새로운 도전을 택했기 때문이다. 행정공제회의 앞날이 주목된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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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