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희망시리즈 출간한 … 가난·멸시·차별의 벽 뚫고 하버드大박사가 된 희망의 전령사두 번의 이혼·식모살이 등 수많은 난관 뚫은 억척 인생술 장수 어머니·엿장수 아버지·오빠와의 차별… 어릴 때 역경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 힘의 원천

“제 나이 올해 예순이지만 아직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미국 국무장관이 되겠다는 목표를 향해 지금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민자 출신인 메를린 올브라이트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들이 해냈듯이 제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희망 메신저’ 서진규(전 미 육군 대위) 박사는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꿈을 이야기했다.

꿈과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인생에서 환희와 열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최근 출간한 ‘서진규의 희망’이라는 3번째 희망 시리즈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다.

자신의 저서 판매수익금의 10%를 소년원 청소년들에게 기부하면서 ‘희망책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도 그의 말대로 “세상에 절망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바로 꿈을 꾸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서 박사 역시 ‘희망의 상징’이 되기까지 가혹하리만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야만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단점투성이였던 어린 시절이 오히려 행복의 가장 큰 밑거름이 돼주었던 것 같아요.”

그는 가난한 생활로 인한 주변의 무시, 집안에서 오빠와의 차별 대우 등으로 마음 속 분노가 가득 찬 반항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는 주로 나쁜 방향으로 표출되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발전과 성공의 자원이 됐다.

“아버지는 엿장수를 하셨어요. 식구 다섯을 건사하기에 아버지벌이만으로는 힘들어서 나중엔 어머니가 술 장사를 시작하셨죠. 술장사의 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게다가 어머니는 아들 딸 차별이 심한 분이셨어요. 결국 저는 반발심이 커질 때 마다 ‘공부를 잘해야겠다’ ‘성공해야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서 박사는 “저에게 어린 시절의 역경이 없었더라면 아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대충 살았을 겁니다”며 고난과 역경이 자신을 깨어나게 했다고 말했다.

온갖 차별과 무시 속에서도 서 박사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했고, 우등생이었지만 오빠에게 밀려 대학 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가발공장 직공, 식당 종업원 일을 전전하며서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고, 힘들게 가정부, 식당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도 한국에서의 밑바닥 생활을 생각하며 낯선 땅 미국에서 어려움을 견뎌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룬 그는 미국에 간 지 1년 여 만에 대학 진학에 성공하지만 대학생활을 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결혼 생활은 그를 또다시 불행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온 합기도 유단자였는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더군요. 증오와 사랑이 공존하니 매를 맞으면서도 이혼은 못했죠. 그리고 딸이 태어났고, 폭력을 견디다 못해 8개월 된 딸을 한국에 있는 부모님한테 맡긴 채 도망치듯 군대에 갔어요.”

서 박사는 “피신처로 군대를 찾았지만 떨어져 있을 때뿐 폭력은 계속됐죠”라며 남편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혼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 이혼을 했고, 곧 이어 미군 장교와 재혼을 했다. 그러나 이 결혼 역시 끝까지 이어지지 못해 이혼을 해야 했고, 그 이후 군 생활에 더 전념했던 그는 마흔 셋의 나이에 육군 대위가 됐다.

실력을 인정 받은 서 박사는 동북아지역전문가로 선발돼 일본 파견을 앞두고 평소 상상조차 못했던 하버드대학에 지원서를 냈고, 기적처럼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동북아지역전문가로 뽑히면 해당 지역 언어 교육 1년, 대학원 교육 2년, 지역 답사와 교육을 4년 반 동안 군에서 시켜주죠. 시범 케이스로 뽑힌 저는 일본에 가게 됐는데 일본 남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하버드 학위’를 생각해냈어요. 당시 하버드 학위 하나면 일본에서는 만사형통이었거든요. 마흔 셋인 제가 하버드에 합격했을 땐 기적이 일어난 것만 같았어요.”

가발공장 직공과 가정부에서 하버드 대학원 입학, 그리고 16년만인 59세에 그는 하버드대 박사(국제외교사)가 된다.

“하버드는 제가 보다 멀리 그리고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 과제였어요. 전세계 수재들과의 경쟁이 두렵기도 했고,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거기서 그만둘 순 없었죠. 하버드를 향한 도전은 서진규이기 이전에 한국인의 저력으로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런 과정을 통해 세계 속의 한국인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더욱 자신감을 얻어 계속해서 꿈을 향해 도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는다’ ‘서진규의 희망’에 이어 군대생활이야기를 다룬 희망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다. 또 현재 국내에만 나와있는 희망 시리즈를 영어로 번역해 전 세계인들과도 감동을 함께 나눌 계획이다.

“스스로가 언제 어디서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번 주어지는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곧 자신의 선택에 의해 좌우됩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있건 그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뿐입니다. 세상이 나를 비웃고, 나를 버려도 자신만큼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켜줘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서 박사에게서 가슴 뜨거운 희망이 느껴졌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