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정신과 조수철 교수… "천재란 어떤 존재일까" 호기심으로 공동 번역태어날 때부터 뇌의 구조가 달라, 정신병도 많아… 자폐아 출신 빌 게이츠 상담 받고 인생 전환점

빌 게이츠, 피카소, 아인슈타인, 다윈, 모차르트, 버지니아 울프…. 이들은 살았던 시대와 활동분야, 성별, 국적, 가정환경, 사회적 배경, 개성이 모두 각기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천재’라는 점이다.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세상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천재들. 천재는 시공을 초월해 세인의 선망과 관심의 대상이 된다. 많은 이들은 ‘내 아이는 천재일까?’ 혹은 ‘나는 천재일까’라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천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연말 출간된 ‘천재성과 마음’(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수철 외 공역, 학지사)은 ‘흔치 않은 종류’의 인간, 천재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이 책의 대표 역자인 서울대의대 정신과 조수철 교수는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에서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열린 정신과학회에 갔을 때 회의장에 이 책이 놓여 있었어요. 직업상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은 저는 ‘천재’라는 책 제목(Genius and the Mind)을 보는 순간 관심이 끌리더군요. 천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터라 더욱 호기심이 생겼죠. 그래서 생소한 종류의 인간에 대해서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미국에서 책을 사가지고 돌아온 조 교수는 본인이 몸담고 있는 서울대의대 정신과 교수들과 상의해 책의 공동번역작업에 착수했다. 천재라는 종류의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조 교수를 비롯해 번역작업에 동참한 교수들은 3년이라는 긴 여정 끝에 책을 펴냈다.

책은 역사적으로 각 분야에서 천재라고 인정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선정해 천재의 정의에서부터 천재에 대한 역사적인 개념의 변천과정, 유전적·환경적 요인과, 발달과정, 천재성과 광기의 관계 등을 폭 넓고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천재에 대한 접근방법이 매우 재미 있는 책입니다. 몇 년 전 천재성을 광기와 연결시켜 살펴본 ‘광기와 천재’라는 책이 있었지만, 천재를 이처럼 여러 각도에서 포괄적으로 연구한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지 않았나 싶어요. 책을 읽고 나면 천재를 보는 관점이 넓어질 겁니다.”

우선, 역사적으로 논란이 돼온 천재는 얼마나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또 얼마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궁금하다. 조 교수에 따르면 천재의 뇌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뇌의 구조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뇌신경세포의 약 20%는 유전적인 통제 하에 있고, 나머지 80%는 백지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천재가 유전적인 요인보다 환경적 요인에 더 많이 좌우된다고 믿기 쉽다. 물론 천재는 어느 정도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나, 일반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20%의 똑똑한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어야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설명이다.

“모차르트나 존 스튜어트 밀처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 경우도 있고, 베토벤이나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처럼 나이가 들어 천재성을 발휘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후자의 경우를 노력과 환경적 요소인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잠재돼 있던 천재성이 개인의 동기와 노력 등에 의해 꽃피우게 된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물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모두 천재는 아니다.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과 사회적인 인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어떻게 일부 천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같이 불리한 외부환경 하에서도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

모차르트는 생애 마지막 10년을 비엔나에서 보냈다. 이 시기 모차르트는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갖은 모함과 혹평 등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그는 주옥 같은 작품들을 쉴새 없이 쏟아냈다.

“모차르트는 자기한테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들을 전부 남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평론가가 악평을 하면, 자신의 곡은 완벽하나 청중이 이해를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식이었죠. 그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었던 많은 요소 가운데 이런 자세가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책은 천재성과 광기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천재 자체가 정신질환은 아니지만 천재와 광기는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지요. 천재는 희귀한 뇌를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정신분열을 앓은 버지니아 울프나 조울증을 앓은 바이런 등 뛰어난 창의성을 발휘한 예술가들 중에는 정신병을 앓은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다빈치는 집중장애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상은 주의력 결핍(ADHD)이에요(웃음).”

책을 통해 살펴본 천재는 ‘이례적인 사람’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조 교수는 사람마다 재능과 발전과정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어떤 분야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고 있는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부류의 인간을 탐구하려는 그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조 교수는 ‘천재성과 마음’ 외에 최근 ‘베토벤 그 거룩한 울림에 대하여’도 출간했다. 베토벤의 음악과 삶의 연관성을 탐색한 책이다.

천재에 대한 이해는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12살 때 심리상담을 받은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고 회고한다. 상담을 맡았던 심리학자는 무슨 일에든 쉽게 싫증을 내는 자폐아 소년이 비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든 열정과 관심을 재능개발에 쏟을 수 있도록 권유했다. 만약 심리상담사가 천재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빌 게이츠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