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허준'서 각인된 단아한 분위기 탈피… "난 생각보다 애교 많아요"데뷔 15년만에첫영화 '밤과 낮' 출연'소금인형' 이어 김영호와 또 부부연기 호흡아픈 만큼 성숙… 결혼하는 동료 보면 부러워요

한 사람을 한 가지 색깔로 규정할 수 있을까. 다혈질이다, 사려 깊다, 섹시하다, 참하다 등의 갖가지 수식어 중 한가지만 콕 집어 내 사람을 묘사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스스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색깔이 빨간색이지만 타인은 그를 흰색이라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어느 한 인격체에 대해 단 한 문장으로 정형화하는 것은 인간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연예인의 경우 그런 ‘수식어 감옥’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우 황수정 역시 그런 대표적인 연예인 중 한 명 아닐까 싶다. 1994년 MC로 데뷔했지만 사람들에게 ‘황수정’이라는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것은 MBC 사극 <허준>이었다. <허준>의 황수정은 동양적인, 단아한 외모를 지닌 참한 아가씨였다.

황수정 이름 앞에 붙여진 ‘단아하다’는 표현은 강렬하기 그지 없었다. 그 수식어는 <허준> 이후 그가 겪었던 ‘큰 사건’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황수정은 단아하고 참하고 착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잘못은 국민에게 ‘배신’이었던 것이다.

황수정은 5년의 시간을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며 보내야 했다. 지난해 SBS 드라마 <소금인형>(극본 박언희ㆍ연출 박경렬)과 올해 영화 <밤과 낮>(감독 홍상수ㆍ제작 영화사 봄)을 통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수정은 예상과 달리 발랄하고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다. 워낙 그런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시련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그토록 긴 시간을 쉬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어요. 요가 등 운동을 하며 제 생활에 충실 하는 동안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죠. 나름대로 저에게 투자하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훌쩍 나이를 먹은 것이 실감나지 않아요. 예전에 일할 때는 선배님이 많았는데 어느덧 후배님이 많아졌다고나 할까요. 마음의 여유는 생긴 것 같아요.”

황수정은 지난해 <소금인형>에 출연하며 배우 김영호와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 모두 먼저 다가서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밤과 낮>에서 또 다시 부부로 출연하니 “보통 인연은 아닌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실은 황수정이 <밤과 낮>에 출연한 것도 김영호 덕분이었다.

김영호가 홍 감독의 영화에 캐스팅됐다며 함께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황수정은 영화 <오!수정>을 앞두고 홍 감독과 만났다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경험이 있던 터라 그저 ‘예전에 알고 지냈던 분을 다시 만난다’는 느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셋이 같이 만났는데 감독님이 다짜고짜 농구를 하자고 하셨어요. 땀 흘리면서 재미있게 했죠. 골도 넣었고요. 농구를 해 본 적은 없는데, ‘내가 농구에 소질이 있나’ 하면서 필사적으로 했죠,호호.”

황수정이 오디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날의 만남 이후 김영호의 아내 역에 캐스팅됐다. 작품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있으라는 주문 뿐이었다. 홍 감독의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등을 워낙 좋은 느낌으로 봤던 터라 황수정은 그야말로 기대만발이었다. 데뷔 15년만에 처음으로 출연하는 영화였다.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고생이 컸다. 스케줄 때문에 파리 로케이션에 동행하지 못한 황수정은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파리와 전화 통화를 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하루 하루 시나리오를 쓰는 홍 감독의 특성 때문에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했다.

“매일 따끈따끈한 대본을 받았죠. 파리에서 같이 영화의 흐름을 타고 있었던 게 아니라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영화 속 거리감이 잘 살아난 것 같아요. 제 목소리가 생각보다 하이톤이라고, 일부러 그렇게 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사실 의식을 못했거든요. ”

황수정은 감독과 김영호 등 <밤과 낮> 팀이 파리 로케이션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촬영할 때를 대비해 운동하면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생각보다 적은 분량 때문에 다소 서운했다. 실제 얼굴이 나오는 촬영 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감독님께 투정도 부렸어요. 주연이라고 하셨잖아요,라면서. 호호. 첫 영화이다 보니 기대도 많았거든요. 그런데,영화를 보니까 성인에게는 그게 맞더라고요. 캐릭터에 맞는 분량이라고 생각해요. 즐거웠어요.”

황수정은 이번 작업을 통해 연기에 대해 배운 것도 많다. ‘생각이나 관념을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연기하라’는 홍 감독의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함께 작업하며 홍 감독의 연기 스타일에서 거짓 없는 연기에 대해 배웠다. 앞으로 자신의 연기 생활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평소 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자 황수정은 친한 친구를 만난 듯 스스럼없이 말하며 웃었다. 황수정은 “저는 한식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일하느라 제대로 못 챙겨 먹고 김밥으로 떼우고 했는데…몸에 안 좋더라고요. 요즘은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서 하루 세 끼를 꼭 챙겨 먹으려고 해요. 집에서는 어머니가 챙겨 주시니까 다행이에요”라며 밝게 웃었다.

1972년생 쥐띠로, 무자년의 감회가 남다를 황수정은 일에 있어서나 사랑에 있어서나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다. 황수정은 그동안 ‘단아하다’는 이미지의 감옥에 갇혀 있던 자신을 해방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단아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밝고 애교도 많다고들 하세요. 이것 또한 저의 모습인데요. 앞으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 사람은 여러 색깔을 갖고 있잖아요. 주된 색이 무엇이냐 정도이지 한 가지 색으로 규정할 순 없겠죠. 제게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는 제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서 재창조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황수정은 결혼에 대한 속내도 밝혔다. 요즘 만난 싱글들과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며 누군가 결혼했다는 소식에, 친한 친구에게 하듯 곱게 눈을 흘겼다. “어머, 배신자.”

아픔을 딛고 밝게 피어난 만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배신’해 배우로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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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연예부 이재원기자 jjstar@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