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축제 조직위 집행위원장 손기환 교수모든 행사 형식 바꾸는 대모험 강행… "세계수준과 비교해도 손색 없어요"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목숨 걸고 뛰는 중입니다.”

제 12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하 SICAF)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손기환(51) 교수. 축제의 중책을 맡은 그는 요즘 총선 후보 못지않게 치열한 하루하루를 맞고 있다.

자신의 차에도 SICAF 대형 로고 스티커를 사방으로 대문짝만하게 붙인 채 서울 거리를 누빈다. 오는 5월에 열릴 SICAF의 성공을 위해서다. ‘정신없이 보낸 날들’ 덕에 행사는 이미 내부적으로 거의 다 준비된 상태. 행사를 알리고 손님을 불러모으는 일만 남았다. 손 교수의 차가 대형 로고 스티커로 무장된 이유다. 적지않이 비장하다.

SICAF는 아시아권에서도 최대 규모의 만화 애니메이션 축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5년에는 ASIFA(국제애니메이션 필름협회)로부터도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 더욱 입지가 확고해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자마자 올해 대혁신의 모험을 감행했다. 결과에 대해서도 이미 예감이 좋다. SICAF는 크게 만화 전시와 애니메이션 영화제, 그리고 이와 관련된 비즈니스형 산업마켓(SPP) 행사로 구성돼 있다. 그중 애니메이션 영화제만 해도 올해 총 63개국으로부터 수천점의 작품이 몰려들었다. 역대 대회중 최다 규모의 신기록이다.

“ 올해는 종전의 행사 형식을 확 바꿨습니다. 저희 내부 6개 단체의 이야기를 적극 수용해 기획과 디자인, 행사 구성 방식 등 모든 것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누구든 인상에 남을 작품들이 곳곳에 많을 겁니다.”

■ 만화 100년, SICAF 12년의 길

국내에 만화가 태어난지도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는다. 한 일간지에 최초의 만화가 실린지 올해로 꼭 99년째다. 그 가운데 SICAF가 처음 개막된 것이 1995년. 오늘까지 이르는 동안 손 교수는 SICAF의 역사를 함께 겪어 온 원년멤버 중 일원이다. 때로는 작가로, 때로는 집행부원으로 명찰만 바뀌었을 뿐이다. 행사 세트를 함께 만든답시고 함께 못을 박던 추억도 아련하다.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인 그는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이면서 본인 역시 만화가이기도 하다. 그중에도 국내 만화학계의 1세대이자 교수 1호다.

홍익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 원래 고교때부터 이미 학교 교지에 만화를 실을 만큼 남다른 만화광이었다. 대학원 석사 과정중에 민중미술운동에 참여, 보다 더 효과적인 민중과의 소통방법을 고민하다 찾은 것이 벽화였다. 한동안 대학건물 외벽과 담벼락에 도배를 하다시피 벽화를 그려 내걸었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그린 민중벽화가 계속 떼어지거나 불에 타 없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장르를 바꿨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판화와 만화였다. 만화가 민중미술운동 안에 들어서게 된 배경에도 손 교수의 역할이 적지 않다. <만화정신전>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그는 이희재, 이원복씨와 같은 만화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만화와 미술을 연결하는 노력이 더욱 구체화됐다.

얼마뒤 민족미술협회중 국내 미술단체로는 최초로 ‘만화분과’가 생겼고, 손 교수는 그 첫 번째 분과위원장이 되었다.

당시 <보통고릴라>의 주완수, 한겨레의 박재동씨 등이 시사만화가로서 등장해 국민적인 응원과 사랑을 받던 무렵이었다. 손 교수는 내내 만화쪽에 몰입해있다가 컴퓨터를 알게 되면서 자신 역시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옮겨가는 개인적 변혁기를 맞았다. ‘신 몽유도원도’, ‘호수’ 등 직접 제작한 DVD 애니메이션도 여러편이다.

“ 주로 꿈에 관한 것들이예요. 깜빡 졸다보니 몽유도원도의 세계에 가 있고, 다시 깨어보니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식이죠. 제 자신이 ‘삶은 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SICAF의 무릉도원을 찾아

이젠 혼자 꾸는 꿈이 아니라 SICAF 전체의 꿈이 초대형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갈수록 위축되는 만화시장에서 어떻게든 만화와 SICAF의 명성을 되찾으려 애쓰는 국내 만화인들의 소망이 깃들어 있다.

“요즘은 만화잡지가 도무지 잘 안 팔려요. 대학에서도 학생들을 기껏 가르쳐놓으면 졸업후 만화나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가는게 아니라 게임업계쪽으로 빠지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이건 우리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내려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거죠.”

생각할 수록 지나간 초창기의 호시절이 그리워진다.

“ 초창기때가 오히려 가장 좋았어요. 그땐 이런 행사가 국내에서 처음이다보니까 정부에서도 관심이 많았고, 일반인들의 호응도 아주 대단했죠. 행사기간도 방학때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가족단위로 휴가기념행사처럼 잔뜩 몰려와 보고가곤 했어요. 쟁쟁한 만화가들도 그때 많았죠. 바로 그 옛날처럼 만화가 다시 사랑받는 시대가 올 수 있도록 굳은 각오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특히 참가국이나 출품수로도 여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세계대회다. 경쟁 부문 중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와 디지털 만화 공모전은 특히 권위와 경합이 치열한 만화계의 ‘국제 신춘문예’로 통한다.

애니메이션 부문만 해도 장편, 단편, 광고 등에 걸쳐 약 1,300편이 응모된 가운데 약 300편이 1차 선정돼 다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 만화 공모전 응모작 수는 더 많다. 약 2,200점이 출품돼 심사를 받았다. 추려진 작품들은 축제 기간동안 심사위원들이 최종 심사, 행사 마지막 날 채점결과 발표와 함께 시상식을 갖는다.

“ 특히 디지털 만화는 우리나라 수준이 아주 뛰어납니다. 세계 수준에 전혀 뒤지지 않아요. 심사위원들의 이야기를 빌면 기술적인 면에서도, 작품성에 있어서도 올해 응모작들이 작년것보다 전반적으로도 훨씬 좋아졌다고 합니다. ”

평소 ‘만화란 쉽고 재미있고 편안해야 한다’고 생각해 온 만화가 손 교수. 직접 현장을 총지휘한 이번 대회에서도 그같은 본인의 철학을 그대로 만나볼 수 있을까?

“ 네. 분명히 그렇게 느끼실거예요. 편하고 재미있고, 어쩐지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 같은 것들이요. 이번 행사 생각을 하면 솔직히 제 자신이 가장 기대되고 설렙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너무 궁금합니다.”

SICAF는 5월21일부터 25일까지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등지에서 열린다. 집행위원장 손 교수에겐 대입시절 합격 결과 발표날과 꼭 같은 심정으로 두근거릴 자리다.

■ 손기환 교수는?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1983). 동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1985). 청강문화산업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역임(1997~2000). 현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 개인 및 단체전시회 약 15회. 단편 애니메이션 <신 몽유도원도>,<문신, 그 남자의 가방>등 4개 작품 제작. 저서 <실험애니메이션에 끼친 현대 미술의 영향>,<애니메이션 이해와 감상> 등 다수.


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