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신속 정확한 증거 확보가 관건… 의사에게 폭력 행사는 금물의료계·정부, 의료사고 발생 인정하고 예방·대책 마련 나서야

서울 서초동 의료소비자 시민연대에서 갖은 강태언 사무총장이‘의료사고 예방 및 대처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모씨(42ㆍ여)는 뒤바뀐 조직검사 슬라이드 때문에 유방암이 아닌데도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 팔에 입은 작은 골절상 때문에 병원을 찾았던 임 모양(14·여)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부산의 모 산부인과 의원 신생아실에서 병원측 관리부주의로 2명의 신상아가 같은 날 밤 사망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 병원 간호사 박 씨가 신생아 2명에게 분유를 먹인 뒤 트림을 시키지 않은 채 눕혀 신생아의 기도가 막혔고,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들 사례는 최근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대형 의료사고들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이 같은 의료사고를 어쩌다 운 없는 사람들만 당하는 '남의 얘기'로 여기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이하 의시연)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상담했던 의료사고 건수는 무려 8,000여 건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의료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강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대한감염관리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감염 사고는 연간 30만 건이 발생하고, 이중 사망에 이르는 환자는 한해 1만5,000명 정도다. 그러나 이는 300병상 이상 대형병원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중소병원이나 개인의원의 경우, 위생상태가 대형병원보다 더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병원감염 사망자수는 엄청날 것으로 추정된다.

또, 대한재난응급의료협회는 응급실 내원 환자 100명 중 12명 꼴로 사망하고 있으며, 이 중 50.4%는 예방 가능한 사망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강 사무총장은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 볼 때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연간 약 1만~2만 7,000 명으로 추정돼, 산재(2,500명)나 교통사고(6,500명~8,000명)로 인한 사망자 수 보다 훨씬 많다고 말했다.

더욱이 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병원의 몸집만 불리고, 수익을 고려해 환자들에게 무리한 수술이나 조기 퇴원을 강요하는 등 병원이 고도로 상업화 되는 상황에서 의료사고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쯤 되면 병원에 가지 않는 편이 건강을 위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다고 어떻게 병원에 안 가겠습니까. 사고를 예방하고, 뜻하지 않은 의료사고를 당했을 때 잘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죠."

그는 소비자가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몇 가지 사고 예방 지침을 제시했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경각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해요. 그리고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만약 병원이 환자관리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시정을 요구하고, 검사를 할 때 무엇을 알기 위한 검사이며, 부작용은 없는지 철저히 물어보세요."

그는 또, 수술을 할 때는 되도록 주말이나 연휴를 앞둔 시점을 피하라고 지적했다. 연휴가 임박하면 환자들이 많이 몰릴뿐 아니라 의료진도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주말이나 연휴 기간 중 수술 후유증이나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처가 늦어질 수 있다.

얼마 전 자기공명영상(MRI)검사를 받으러 간 환자가 밤새 검사실에 갇혀 있는 사고가 있었다. 기사가 환자를 확인하지 않고 퇴근해 버리자 검사 받던 환자가 꼼짝 없이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의료사고가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MRI 검사실과 같은 밀실에서 일어납니다. 밀실에서 환자는 대부분 마취상태에 있거나 의사표시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검사실이나 수술실 등에는 반드시 보호자가 동행해야 하고, 보호자가 밖에서 환자의 표정이나 몸동작 등을 면밀히 체크해야 합니다."

경실련 등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이 13일 서울 종로 YMCA앞에서 국회에서 방치되고 있는 의료사고 피해 해결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는 퍼퍼먼스를 하고 잇다./ 손용석기자

이밖에 강 사무총장은 임신 초 불의의 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옮겨질 경우, 태아에 해로운 방사선을 쪼일 가능성이 있다며 산모는 목걸이나 인식표를 항상 휴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유사 시 상담할 수 있는 가족주치의를 두는 것도 의료사고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가족주치의는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의료활동해 왔고, 지역주민들에게 평판이 좋은 의사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면 당황하지 말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의무기록을 확보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병원에서는 사건의 단서가 되는 중요한 날짜나 시간대 등의 기록을 누락시키거나 변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고라고 판단되는 순간, 기억력을 초대한 동원해 사고 경위서를 작성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환자나 환자가족은 신속하게 의무기록을 입수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정말 힘들지요. 의료법상, 환자나 그 가족은 의무기록에 대한 열람교부권이 있습니다만, 보건복지부는 의무기록을 열람하려면 환자 본인의 자필서명과 인감증명, 주치의의 동의를 구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환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거나 식물인간이 되었을 경우 환자 본인의 자필서명과 인감증명을 어떻게 제출할 수 있으며, 주치의의 동의를 구하라는 것도 말이 됩니까. 하지만 그래도 입증해야할 책임은 환자에게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확보해야만 합니다."

기록이 확보되면, 기록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한다. 강 사무총장은 의무기록 사본 교부시에는 반드시 원본대조필 도장과 교부된 기록이 전부임을 확인받으라고 강조한다. 또한, 녹취나 증거사진, 증인 등 현장 물증을 최대한 확보하는데도 총력을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사고가 나면 환자나 가족들은 억울한 마음에 담당의사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이런 경우 병원이나 의사 측은 명예훼손, 업무방해죄, 폭력 등으로 고소를 하기도 하고, 이것을 빌미로 억울한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거든요. 또, 민형사 상의 소송을 제기할 때는 사고의 내용과 가정여건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반 소송의 경우 통상 6개월 정도 소요되지만. 의료소송은 평균 26.3개월이 걸립니다. 소송이 장기전으로 갈수록 환자나 가족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까요."

강 사무총장은 지난 2000년 의료사고 당사자 및 가족들과 뜻을 모아 최초의 의료사고시민연합을 세웠다. 그 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로 명칭을 바꿔 의료사고 예방과 피해자 지원 외에 진료비 예납금제도 반대운동을 포함해 다양한 의료소비자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의료사고는 빈번히 발생하고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데,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은 전무하다며 탄식한다. 현행법 상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사고를 당한 환자와 그 가족들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기관에서 기록한 의무기록 자료에 의존해야 하고, 의료관련 전문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환자나 그 가족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과실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민연대는 사고가 발생하면 입증의 책임을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지도록 입증책임을 전환한 소비자 중심의 법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소비자 중심 법안을 제정하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의사들과 만나 얘기해 보면, 하나 같이 '의료사고'라는 말을 하는 것 만으로도 의사사회의 담합을 깨뜨리는 매국행위라고 말합니다. 정부 역시 의료사고 실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의료사고가 드러나는 것 자체를 꺼립니다. 의료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의료계나 정부가 인정하고, 그에 대한 예방의 중요성과 대책마련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 의료소비자시민연대는…

의시연은 의료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법률, 의학,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주 월요일에는 자문 변호사가 방문해 무료법률상담을 제공하고 있으며,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의료사고 당사자 및 가족들에게 의료법과 건강에 대한 상담 및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단체는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만 운영되고 있다. 강 사무총장은 의료소비자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의시연 회원으로 가입해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