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인형 '산타베어' 빅히트 시킨 양지 실업 정석주 회장

22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약 400만개의 판매율을 기록하며, 수출효자 상품 역할을 톡톡히 해온 ‘산타베어’. 미국 ABC TV를 비롯해 각주의 로컬 TV 뉴스에서 앵커들이 산타베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직접 소개하기도 했고, 백악관 연말 송년파티 때 레이건 대통령 부부는 산타베어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입장을 해 화제가 됐었다. 이는 다름아닌 한국의 한 중소기업에서 초기자본금 700만원으로 시작해 일궈놓은 성과다.

양지실업 정석주 회장이 바로 산타베어의 창시자이자 30년 흑자경영을 이룬 장본인이다. 세계 15개국에 봉제완구를 수출하며 국내보다는 오히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양지실업. 그러나 정석주 회장은 최근 자신만의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 과감하게 종업을 결정하고, 회사를 정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는 지금까지 ‘중소기업은 창업자와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운영했어요. 평소에도 70세가 넘으면 종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이 같은 결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정 회장은 계속해서 사업 흑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돌연 ‘종업’을 결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창업’ 아니면 ‘파산’이 대세인 요즘 같은 시기에 가야 할 때를 알고 아름답게 떠나는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다.

한편 정 회장은 마지막 정리를 하면서도 대한민국 중소제조업의 희망과 비전에 대해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국내에는 아직도 기업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조성이 안 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업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구분이 쉽진 않죠. 결국 중소제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꾸준히 R&D투자에 집중해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정 회장의 조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적대적인 노사문화’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대외 경쟁력을 잃고 도산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경쟁력 제고에 역행하는 암적인 요소들은 정부가 나서서 과감히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짧은 인생 종업 후 남은 시간 동안은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는 정석주 회장은 “우리나라 6,7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출품목의 변천과정과 그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수출박물관’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가슴 속의 포부를 드러냈다.

“우리나라의 수출역사는 경제성장의 흐름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특히 가발, 섬유, 신발 등과 같은 경제부흥 초창기의 효자수출상품들이 점점 잊혀져 가는 게 안타깝기만 해요. 더 늦기 전에 수출역사를 보존하는 ‘수출박물관’을 설립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정석주 회장은 “그 동안 사업에만 전념하느라 가족들에게 소홀했다”며 “가족들과 함께 속초, 제주도, 동해안 등지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장학금을 지원받아 대학진학을 해야 했던 정 회장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대학생들을 위해 장학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하고 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