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라이트 한국지사 승수언 대표일본계 다국적기업서 19년간 CEO 맡아… 치밀한 준비와 뚝심이 핵심 비결

이소라이트는 1,800℃의 고온에서 견디는 세라믹 내화단열재를 생산하는 일본 회사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한 다국적 기업이기도 하다. 일본시장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이소라이트 코리아 승수언(50) 대표는 19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다. 보통 다국적 기업 경영자의 수명이 2~3년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노하우가 있기에 그는 이토록 오랫동안 CEO를 맡고 있는 것일까?

“사람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지요. 믿음을 쌓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본사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제가 성격이 급하고 고집이 있어 본사의 명령을 어긴 적도 있고 본사의 허가 없이 독자적으로 일을 저지른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한 것이란 믿음을 주었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승 대표가 직접 밝힌 장수 비결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성과도 중요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CEO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16년간 계속 흑자경영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이 뛰어나도 성과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허무하잖아요.”

그는 밝고 긍정적이다. 척 보기에도 안 되는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인다. 목소리도 크고 씩씩하다. “저는 아침마다 하루가 기대됩니다. 태양은 나를 위해 떠오른다고 생각하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 정도면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란 생각이 들 만도 하다. 이런 초(超)낙관주의는 타고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아마도 초년시절 고생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 탓에 고생도 많이 했다.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했는데, 대학 진학 전에는 일부러 밤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에 일하면 급여가 많은 데다 틈틈이 공부하기도 좋았기 때문이다.

주로 도넛가게에서 일했는데 그때 도넛을 질리도록 먹어 지금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덕에 영어를 많이 익힐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의 세월을 악착같이 준비한 끝에 그는 세계 20위권의 토론토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밥콕&윌콕스라는 캐나다 회사에 입사했다. 토종 캐나다인도 들어가기 쉽지 않을 만큼 최고의 회사였다. 사실 그는 입사를 위해 치밀하게 사전준비를 했다.

도서관에 파묻혀 그 회사에 관한 공부를 엄청나게 했다. 덕분에 회사 전반을 거의 파악한 상태로 면접에 임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뽑아주면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며 프리젠테이션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동양인 최초로 132: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입사할 수 있었다.

이 회사에서 그는 자동화, 설비, 플랜트 분야 등의 프로젝트 엔지니어로 4년간 열심히 일했지만 동료들과의 마찰 때문에 고민도 많았다. 동양인이라는 점과 워낙 지기 싫어하는 성격 등이 갈등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회사가 제공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공부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성공한 CEO들의 특징 중 하나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며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도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 이소라이트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런 연유다.

그는 캐나다 회사에 다닐 때 일본 출장을 갔다가 이소라이트 관계자들과 친분을 갖게 됐다. 후일 그에게 이소라이트 한국지사장을 맡아 달라고 제안한 사람은 그때 처음 만났던 다나카 전무(당시 계장)였다.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다나카 전무는 그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승 대표는 처음 제안을 받고 망설였지만 엔지니어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터라 결국 수락했다.

이소라이트 한국지사가 설립된 후 처음 3년간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투자 단계였기 때문에 적자가 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문화의 차이도 고민거리였다. 보수적인 본사와 적극적이고 개혁적인 승 대표의 성향이 여기저기서 마찰을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성과를 내면서 문화적 차이를 서서히 극복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언어의 문제였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그가 본사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작심한 뒤 새벽마다 학원에 다녔다. 이런 노력 덕에 회사는 점차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설립 4년째부터는 흑자경영으로 접어들었다.

그의 경영철학은 시종여시(始終如是)와 다반향초(茶半香初)다. 전자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차를 반쯤 마셨지만 향은 처음과 같다라는 뜻이다. 늘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중시하는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소라이트는 업종 자체가 수주산업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그런 업종은 대체로 수주 전에는 고객을 열심히 만나고 설득을 하다가 일단 계약을 하고 나면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 승 대표는 이를 조심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일이 없을 때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을 만난다. 그러니 일이 잘 될 리 없다.

그는 끊임없이 뭔가에 도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회사 일도 미친 듯이 한다. 하면 화끈하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접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뜨뜻미지근한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런 승부근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도 적지 않다. 회사경영으로 바쁜 와중에 미국 골프 프로지도자 자격증을 따는가 하면, 주경야독으로 경영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요즘에는 오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경희대에서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승 대표는 야망이 크다. 가슴도 뜨겁다. 제일의 야망은 한국인으로서 이소라이트 그룹 전체의 CEO가 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는 전초작업으로 올해 이소라이트 한국지사의 독립법인 전환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사업에도 도전할 작정이다. 그의 화수분 같은 열정이 앞으로도 좋은 성과를 내기를 기대해본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