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최정화 교수align=center논리적이고 탁월한 언변… 통역사들 높은 평점align=center프랑스 유학시절 첫 시험서 꼴찌 수모… 공부하다 2번 쓰러지기도align=center국내 1호 국제 회의 전문통역사에 아시아 첫 통번역 박사 학위까지

지난 15일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의 첫 미국, 일본 순방이 21일로 끝났다. 1주일간 공식 행사만 40여개에 양국 간 주요 이슈는 촘촘히 나열되었다.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양국 정상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그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한국외대 통번역 대학원 최정화 교수가 최적임이다. 최정화 교수는 국내 1호 국제회의 전문통역사로 영어와 불어,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뿐 아니라 국내 가장 많은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한 장본인이다.

최 교수는 파리 제 3대학 통번역대학원(ESIT)에 유학, 1981년 한국인 최초의 국제회의 통역사가 됐고 86년 아시아 최초 통번역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고의 국제회의 전문가다. 그렇게 되기까지 최 교수는 결코 쉽지 않은 외길을 묵묵히, 당당하게 헤쳐왔다.

경기여중과 경기여고를 다니며 수석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최 교수는 처음 실시된 74년 서울대 계열별 모집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그는 “이 좌절이 또 하나의 기회였다”고 말한다. 이때 한국외대로 진로를 바꿔 불어과에 지원한 그는 평생 프랑스어와 인연을 맺게 됐다. 대학 4학년 때 불어과 학과장실 조교를 맡아 교직원에 한해 자격이 부여된 프랑스 정부 장학생 선발시험에 응시했고 수석으로 붙었으나 ‘어린’ ‘여성’이란 이유로 대학 교수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험도 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파리 제 3대학 통번역 대학원 원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 결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언어의 달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의기양양하게 떠난 유학에서 그는 현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통역이 아닌 번역학부에 입학했고, 첫 시험은 20점 만점에 2점이란 수모를 겪기도 했다. 꼴지 중에서도 2등하고 엄청난 차이가 있는 ‘확실한 꼴지’였단다. 이때부터 르몽드지 사설을 읽고 분석, 요약해 교수에게 첨삭을 받는 과외가 시작됐다. 딸기밭 교정 노트를 받은 지 12개월,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통역학부에 입학했다.

이 후 더 혹독한 훈련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 13~15시간 공부에 매달리느라 당시 8kg이나 몸무게가 늘어났다. 두 번은 공부하다 ‘쓰러진’ 경험도 했다. 대학원 진급시험을 신청하러 갔다 기절해 병원에 실려 간 후에도 혈압, 맥박, 심전도 등 의학용어를 프랑스 어로 물어보는 악바리 근성을 보였다고. 그렇게 프랑스에서 3년을 공부한 후 그는 국제회의 통역사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국제회의 통역사 자격을 딴 후 최 교수가 맡은 첫 통역은 1981년 당시 윤석헌 주불대사와 프랑스 미셸 조베르 대외통상부 장관과의 면담이었다. 성공적으로 데뷔전을 치른 후 그는 국제회의에서는 빠지지 않는 단골이 되었다. UPU(만국우편연합), IPU(세계의원연맹),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서울 총회, ASEM 런던 정상회의, APEC 마닐라 정상회의 등 대규모 국제회의를 1800여회 이상 통역했다.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까지 모두 5명의 대통령의 한불 정상회담 통역을 진행했다. “첫 정상회담 통역이 전두환-미테랑 대통령 통역이었는데 처음이라 무척 떨렸죠. 본격적으로 통역사 활동한 게 81년부터니까 5,6년차에 의뢰를 받은 거죠. 어린 나이에 국가 원수를 만난다는 생각에 처음 1,2초는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 챘지만, 저한테는 2, 3년보다 더 긴 시간 같았습니다.”

최 교수에게 통역을 의뢰하는 쪽은 90%가 프랑스다. 한국의 경우 정상회담 통역은 대부분 외교관이 담당한다고. 5명의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과 알제리 부트플리카 대통령 간 정상회담도 통역은 한국정부에서 의뢰해 진행된 경우다. 통역으로 확정되어도 담당 통역사에게 특별히 주어진 ‘팁’은 없다. 양국 현안과 국제 문제 등을 통역사가 스스로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

“양국 정상이 만날 때 쌍무회의만 하는 건 아니에요. 국제현안, 그러니까 테러나 기후변화문제 등 국제 공조가 필요한 전 세계 현안과 양국 현안을 함께 의논 합니다. 한국과 프랑스 모두 아셈회원국이니까 지역별 현안도 얘기하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당시 떼제베와 핵 발전 등을 논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어 최 교수는 “통역사는 보안이 중요한 직업이에요. 통역의 구체적인 내용은 절대 통역사의 입에서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고 했다.

■ '통역 프렌들리' 대통령은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정상회담에서 보았던 ‘말 짱’ 대통령은 누구일까? 최 교수는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통역사들 사이에서 이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은 ‘통역 프렌들리’ 인사로 꼽힌다고. 최 교수는 “통역을 할 때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준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세 분의 정치색에 대해 판단할 권리는 없고, 통역사이니까 통역사의 시각에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통역사가 가장 좋아하는 건 논리성이에요. 말을 횡설수설하면 통역하기 참 힘들죠. 모든 통역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논리적으로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꼽는데 그 세 분이 그랬습니다.”

정상회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직선적이면서도 간단하게 말했다. 최 교수는 “회담 분위기를 리드하는 면에 있어서도 미테랑 대통령과 비교해 밀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항상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논리적으로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최 교수는 “추측에는 야당 생활을 오래하고 고비를 많이 겪으셔서 인지 항상 상대방에게 논리적으로 주장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탁월한 언변 능력을 보였다고. 최 교수는 “변호사 출신이라 그런지 정상회담에서 사용하는 말이 굉장히 논리적이었다”고 기억했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렇다 할 특징이 거의 없었어요. 정상회담에서 어떤 말을 하셨는지 제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특징이 없던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투리 억양이 강해서 저 뿐 아니라 모든 통역사들이 조금 어려워했습니다. 사투리도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지만, 김 전 대통령의 경우는 사투리가 강하신 편이었죠. 하지만 억양 때문이지, 모든 대통령들이 다들 말씀을 잘하셨습니다.”

첫 순방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최정화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프랑스 환경장관과의 회담에서 통역을 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화법에 대해 그는 “소탈하고 편안한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당시 프랑스 환경부 장관과의 대화가 정상회담 형태가 아니었지만, 통역하기 아주 편했던 분입니다. 주제를 돌려 이야기 하지 않고 그대로 꺼내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자신의 논리를 갖고 이야기 하셨죠. 소탈하면서도 논리가 있는 대화였습니다.”

최 교수가 두 번째로 이 대통령을 만난 것은 그가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CICI(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 연구원)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수상자로 왔을 때다. 당시 프랑스, 영국, 일본, 러시아 대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완벽하지 않지만, 영어로 대화를 했다고. 최 교수는 “그때 모습을 떠올리며 이 대통령이 당선 후 영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소통을 다 하시거든요.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아시는 거죠. 이 대통령은 문법적으로 100%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다.”

■ 위트 있는 블레어 매너 짱은 시라크

최정화 교수가 만났던 각국 정상 중에 최고의 재담가를 물었다. 최 교수는 우선 유머감각이 풍부한 인사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꼽았다. 모든 사안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지만 상황에 대한 기지와 위트가 아주 돋보였던 정상이라고. 블레어 총리는 긴장 된 순간, 농담으로 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아셈회의에 참석할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최 교수는 당시 상황을 예로 들었다.

“독일의 전 총리 헬무트 콜이 풍채가 아주 좋은 분인데 당시 함께 아셈회의에 참석했었죠. 모든 정상의 의자가 다 똑같잖아요. 그때 블레어 총리가 각국 정상들의 넓은 의자를 보고 ‘헬무트 콜을 위해서 의자까지 신경썼다’고 말해서 웃음바다를 만들었던 적이 있죠. 영국 주최로 런던에서 회의가 시작됐을 때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회의에 늦은 적이 있어요. 그때도 ‘시라크 대통령이 조금 전 영국 여왕을 만났다는 데 왜 늦었을까요?’라고 위트있는 말을 해서 모든 정상들을 웃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매너 부분에서는 프랑스의 시라크 전 대통령을 최고로 꼽았다. 2000년 한국에서 아셈회의가 열리던 날, 동시에 김대중 대통령과 한-불정상회담도 있었다. 시라크 대통령은 항상 여자 통역사인 최 교수를 배려해 회의장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앞서 가라고 했고 카메라 플래시가 최 교수에게 터졌다고.

“정상회담 중 통역을 하다가 볼펜을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회담 중에 대통령이 볼펜을 주워주셨죠. 왜냐하면 서양에서는 여자가 몸을 굽혀서 물건을 줍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순간에는 대통령과 통역사의 관계가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예의를 갖춰야 하는 순간이라 생각하는 거죠. 서양 사람들의 여성에 대한 존중, 매너입니다. 유명한 일화로 드골 대통령은 여자 통역사를 쓰지 않았어요. 만의 하나 여자통역사가 펜을 떨어뜨리면 주워줘야 하는데 드골 대통령은 고령이니까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거든요.”

각국 정상 이외에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을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박식하면서도 말을 잘하는 인사로 소개했다. 특히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공식석상에서의 연설을 즉석에서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비유와 반전을 쓰는 특유의 화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마지막으로 말 잘하는 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쉽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이어 그는 말 잘하는 것만큼이나 잘 듣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성격이 급해 상대방의 말을 듣기 보다는 말을 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경청을 잘하는 스타일로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꼽았다. 최 교수는 “한 총리는 늘 상대방의 말에 경청할 뿐 아니라 메모하고 바로 피드백을 준다”고 말했다.

“협상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허를 찔러가면서 해야 우위를 가질 수 있는데 할 말만 하고 얘기는 별로 안 들으니까 금방 허를 놓쳐 협상의 주도권을 뺏기는 걸 많이 봅니다. 동서양 대화 스타일이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협상에 있어서는 노하우를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