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진 회장맛ㆍ서비스에 대한 집념으로 '손바닥' 가게를 500여 개 가맹점 기업으로 키워낸 여장부

필자는 외식기업 놀부의 단골 중 한 사람이다. 수 년 전 터미널 근처에 있는 한식집에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냥 한식집이 아니었다. 수많은 지식이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간 일행이 몇 가지 설명을 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많은 노하우가 숨어 있습니다. 반찬은 대칭으로 놓여 있습니다. 먼 곳에는 손이 가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상을 차릴 때도 미리 놓을 것은 다 준비를 해 놓고 계란찜, 된장국 같이 그때 그때 준비할 것만 준비해 시간을 줄입니다. 상이 들어오고 나가다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구와 출구가 따로 있습니다. 등받이가 없는 것은 너무 오랜 시간 머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죠.”

인테리어도 범상치 않았다. 화장실에는 놋대야로 만든 세면대가 있었다. 그래서 한식집의 느낌을 물씬 주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그 날 방문에서 ‘이 집은 다르다. 뭔가 큰 일을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 그 예상이 맞았다. 이제는 단순한 보쌈집이 아니다. 유황오리, 항아리갈비 등으로 영역을 넓히더니 급기야는 커리 및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아시향까지 만들었다. 한식을 벗어난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 동남아시아에도 진출하고 있다.

신림동 5평짜리 가게에서 시작해 500여 개의 가맹점에 직영점 매출만으로 8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된 놀부의 최고경영자는 김순진(56) 회장이다.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성공을 거두었을까.

김 회장은 타고난 사업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업가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장사를 했다. 집안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제게 늘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장사를 잘했고 셈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집에서 키우거나 산에서 캔 야채와 나물을 장터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비슷한 물건을 비슷한 가격에 파는 겁니다. 자칫하면 갖고 간 물건을 그대로 갖고 오는 경우도 생깁니다. 저는 차별화 전략을 썼습니다. 열무 네 단에 200원이 시세면 한 단을 덤으로 얹어주는 겁니다. 가격의 차별화지요. 어차피 남아봐야 소용없거든요. 당연히 장사가 잘됐지요.”

김 회장은 ‘매사(梅史)’라는 아호를 갖고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후 꽃을 피우는 매화의 삶과 같다고 해서 지인이 붙여준 것이다. 참 잘 지은 호라는 생각이다. 쉽게 이룬 성공이 아니고 모진 비바람을 이겨낸 후 핀 꽃이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 있고 아름답다.

김 회장의 핵심역량은 학습 능력이다. 놀부의 핵심역량 역시 조직의 학습 능력이다. 본사에서 획득한 지식과 노하우를 가맹점에 전달해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먹는 보쌈의 맛과 서비스의 질을 부산에서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대단한 역량이다.

그녀는 수많은 실패를 했다. 백반집, 돼지갈비집, 곰장어집 등 하는 장사마다 족족 망했다. 하지만 그냥 망한 것이 아니다. 철저히 분석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신림동에 골목집이란 보쌈식당을 열었을 때도 어떻게 해야 맛있는 보쌈을 만들 수 있는지 열심히 궁리했다. 보쌈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 마늘, 참기름 등 속을 다르게 버무려 넣은 1번, 2번, 3번, 4번 바가지를 죽 늘어 놓고 맛보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이런 CEO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직원들에게 자극제가 됐다. 직원 스스로 자기개발을 열심히 했고 놀부는 자연스레 지식경영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김 회장이 말하는 놀부 지식경영의 요체는 “본사가 가맹점 경험을 미리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맹점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내부의 시행착오를 줄인다는 것이다.

이런 학습에 대한 열정은 평생학습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김 회장은 마흔 넘어 공부를 시작해 중학교ㆍ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통과한 데 이어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따기에 이르렀다. 그 정도로 잘 살고 편안한 사람이 계속 공부를 한다는 것은 보통 결심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주는 평생교육대상 개인학습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솔직히 책을 보는 게 쉽지 않아요. 공부도 때가 있거든요. 그래도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공부를 합니다. 첫째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업을 더 체계화하기 위해서죠. 대학 공부를 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한식 음식을 더욱 체계적으로 과학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학과도 전통요리학과를 택했죠.”

그녀의 열정은 딸에게까지 옮겨졌다. 딸과 사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요리 전문학교 CIA(Cul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하고 놀부의 핵심인력으로 기여를 하고 있다.

언제가 가장 큰 위기였느냐는 질문에 김 회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습니다. 늘 위기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CEO가 스스로를 못 볼 때인 것 같습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려 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저도 그것이 두렵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멘토가 필요하고 그래서 계속해서 배우려 합니다.”

그녀는 여장부 스타일이다. 소꿉장난을 할 때도 꼭 선생님 역할을 했단다. 어릴 적부터 “옛날에 태어났으면 넌 유관순 같은 사람이 됐을 거야”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의협심이 강한 의성 김씨의 피를 받은 것도 이유일 것이다. 의성 김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의병을 배출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 중에 의성 김씨가 많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많다. 지금 당장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 것이냐,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다 할 것이냐를 늘 생각한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익을 내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특히 저희 회사는 생명과 직결된 먹을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책임이 뭔가를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납품업체로부터 상품권 한 장 받지 말자는 윤리경영을 실시한 것도 그 때문이고 매출감소를 각오하고 도입한 전 체인점의 금연도 그런 책임의식의 하나입니다.”

김 회장은 유명 강사이기도 하다. 이제는 가급적 최소화하려고 하지만 이런 강연 활동으로 받은 강사료는 ‘놀부 장학회’란 이름으로 적립해 직원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1999년부터는 매년 ‘놀부 외식논문 현상공모’를 통해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1년에는 ‘사랑의 봉사단’을 설립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이웃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흔히 미래의 키워드 중 여성과 문화를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놀부는 두 가지를 다 갖춘 기업이다. 외식업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한근태 약력

한스컨설팅 대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환경재단 운영위원

환경경영연구소 소장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