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독일로 떠난 '연습벌레' 세계 오페라 무대 우뚝… 한국서 첫 리사이틀

최근 2년 사이, 테너 김우경은 클래식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인물이 되었다.

127년 역사를 헤아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하 메트)에서 소프라노 홍혜경과 함께 <라 트라비아타>의 남녀 주역(각각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은 2007년 새해를 떠들썩하게 장식했고 세계 무대로의 행보는 같은 해 7월 런던 코벤트 가든 로얄 오페라 하우스로 이어졌다.

비엔나의 슈타츠오퍼와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등 유서 깊은 무대에도 연달아 서는 그의 스케줄은 2012년까지 이미 확정된 상태다.

이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게다가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전히 전 세계 성악인들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극장을 화폭 삼아 서정성 짙은 음색으로 크기를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려가는 김우경.

지난 9일까지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공연을 마친 그가 한국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을 위해 며칠 전 귀국했다. 공연과 여행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음에도 유쾌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를, 가을 볕이 좋은 12일 오후에 만났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인기가 좋아 항상 매진이 되는데다, 오페라 가수를 시작한 고향 집 같은 공간이어서 마음 편하게 하고 왔어요.” 5년 전,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전속가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지난해 홀로서기를 했지만 여전히 일년에 20번쯤은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 극장에 선다. 전체 일정 중 1/4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프리랜서 선언 후 전세계로 연주여행을 다니는 그에게 아내와 딸이 함께 지내는 드레스덴은 마음의 안식처나 다름없는 곳.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 8월과 11월에 열리는 한국공연 사이에 끼어있어 가족을 한국에 두고 홀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3개월 만에 만난 두 살 배기 딸은 그의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제가 노래 부르는 사람이란 걸 알아요.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워낙 적다 보니, 아빠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화상채팅을 하는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거나 잠잔다고 대답할 정도죠. 이런 얘길 들을 때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 하는 회의가 몰려들곤 해요.”

땅이 꺼질 듯 마음이 무거워졌다가도 노래를 부르면 딸이 힘껏 박수를 쳐주거나, 아기 때부터 들려줬던 ‘La donna e mobile’(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아리아로, ‘여자의 마음’으로 번역됐다.)를 여러 테너 중에서도 ‘아빠가 가장 잘 부른다’고 대답해줄 때면 다시금 천군만마를 얻은 듯 큰 힘을 얻곤 한다.

8년 전 뮌헨으로 떠난 그가 국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콩쿠르 우승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국제음악콩쿠르(2001년)를 시작으로 스페인 비냐스 국제성악 콩쿠르(2002년), 미르암 헬린 성악콩쿠르, 이탈리아 베르디 콩쿠르,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콩쿠르(이상 2004년)에 이르기까지 유수의 콩쿠르에서 우승을 휩쓴 그의 이력은 참으로 화려하다.

2004년 콩쿠르에서 그의 노래를 들은 플라시도 도밍고는 ‘테크닉은 완벽했고 <파우스트> 해석은 더 이상 따를 사람이 없을 만한 것이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보통 콩쿠르에 나간 참가자들은 그곳을 찾는 에이전시나 극장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오페라단 소속가수가 되곤 하는데, 그는 달랐다. 오히려 크고 작은 역으로 무대에 서면서 만난 동료나 지휘자, 혹은 공연을 본 극장 관계자들이 그에게 출연 제의를 하곤 했다.

지난해의 메트 공연 역시 드레스덴 공연을 봤던 메트의 캐스팅 담당자가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콩쿠르 우승 소식을 듣고 그에게 연락해온 것이었다.

신진가수에게 오디션은 필수였지만 이미 무대 위에서 실력을 검증 받은 그에게 절차는 의미가 없었다. 이에 대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렸다.

한양대 재학시절 스승이었던 신영조 교수는 ‘4년간 레슨을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학생’이자, ‘정해진 분량보다 항상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어하던 학생’으로 회고했고 연습실에 들어가면 여러 벌의 티셔츠가 젖도록 몇 시간동안 연습에 매진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 같은 열정을 ‘성실함’이라고만 표현할 수 있을가? “전 막연히 좋은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 권유로 성악을 시작했는데 막상 오디션에 가보면 목소리가 좋지 않으니 성악을 하지 말라는 얘길 들었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거죠.”

그렇게 차곡차곡 빈틈없이 쌓여진 시간은 지금의 테너 김우경을 만들었다. 그가 독일에서 공연한 다음날이면 리뷰가 나오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김우경’이란 이름을 치면 수많은 기사와 게시물을 찾을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실감하지 못한다. 아니, 그런 반응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처음엔 신기한 마음에 스크랩을 해보려고도 했지만 어느 순간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들이 가끔 전화해서 ‘출세했다’, ‘기사 봤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제 자신을 보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죠. 음악이란 거, 세상에 몇 안 남은 순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래에 삶을 녹여내고 그 안에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는 이 달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에서의 첫 독창회를 연다. 이전부터 그를 향한 러브콜은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다면 좀 더 자신의 음악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이기를 바랐다. 리사이틀의 성사는 한국 관객들에 대한 태도의 변화도 한 몫 했다.

“제가 어려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객석에 앉은 분들이 저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비평을 하고자 찾아온 사람의 표정이랄까. 그래서 다소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데, LA와 뉴욕에서 홍혜경 선생님과 공연할 때 보내준 한국인들의 성원으로 생각이 바뀌었죠. 나를 궁금해 하고 내 노래가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던 분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레퍼토리도 오페라 아리아만이 아닌 가곡을 함께 넣었다.

1부에서는 독일에서 공부한 경험을 살려 독일 가곡인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2부에서는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이기로 한 것. “<시인의 사랑>은 삼촌의 딸을 사랑했던 하이네가 쓴 ‘서정적 간주곡’에서 16편의 시를 슈만이 발췌해서 작곡한 가곡이죠. 사랑의 기쁨, 실연의 아픔, 그리움과 쓰라린 감정이 노래로 연결되어 있어요.”

오페라 아리아로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이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라’, 푸치니의 <라보엠> 중 ‘그대의 찬 손’, 비제의 <카르멘> 중 ‘그대가 던져준 이 꽃을’을 선곡했다.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에 한걸음 나아가는 그는 “제 노래가 듣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클래식이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라는 마음 속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오페라 데뷔 5년. 그 시간동안 높이 올라왔다. 한 달에 다섯 번에서 열 번쯤 세계 무대에 서는 그는 그러나, ‘이제 겨우 5년’이라고 고쳐 말한다. 그만큼 해야 할 일도, 키워갈 꿈도 크다. 깊이 있는 표현을 위한 오페라 전곡 공부는 그에게 여전히 풀어가야 할 숙제 중 하나.

“세상에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잘하기도 힘들고 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정답이 없고 추상적이죠.” 하지만 그렇기에 끝이 없다고 말하는 그다.

‘한국인 최초 혹은 최고’라는 수식은 최근 그의 이름 앞에 자동적으로 붙는 수식어가 되곤 했지만 어쩌면 이런 표현이 그에게 그만큼의 고정된 기대와 틀을 씌우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가둬두기에 그의 꿈과 그의 무대는 너무나 넓다.

◇ 테너 김우경은..

1976년 생. 젊은 나이에 세계적 반열에 오른 테너 김우경은 한양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뮌헨 국립음악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다. 2003년부터 유서 깊은 독일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단의 전속 솔리스트를 역임. 프리랜서 선언 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 무대에 주역으로 데뷔, 호평을 받고 있다.



글=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