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열·박기영·배영길 '널 사랑하겠어'등 히트곡 비하인드 스토리 선사

요즘 KBS 2에서 방송 중인 <연예가 중계>의 ‘타임머신’은 수년 전 이 프로그램에서 방송됐던 연예 뉴스를 재편집해 보여주는 코너다. 지금은 톱스타가 된 선남선녀들의 풋풋한 모습과 당시 인기 있던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해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비슷한 취지로,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88년 ‘연예계’에는 다양한 사건(?)이 있었다.

신해철이 이끄는 무한궤도가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대학축제의 판도를 바꾸었고, 강변가요제에서 이상은이 ‘담다디’로 대상을, 이상우가 금상을 수상했다. 박남정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도, 변진섭의 첫 앨범이 나온 것도 88년의 일이다.

최근 주말 버라이어티쇼에 부인 이승신씨와 함께 출연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가수 김종진의 봄여름가을겨울 1집도 이 때 나왔다. 후끈 달아오른 88년 가요계 한 켠에서 조용히 ‘착한 음악’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 거창한 사회이념이나 의식을 전하기보다 놀이처럼 음악을 즐겼던 이들은 가수 김창완의 눈에 띠여 음반을 발매하고 ‘프로 가수’가 된 그룹 동물원이다. 향수에 젖어있던 찰라, <개그 콘서트>의 윤형빈이 나와 이렇게 외친다.

“그룹 동물원? 누~구?”

■ 추억을 전하는 노래

386세대에게 안식처 같은 가수이지만, 10~20대에게 그룹 동물원은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김광석, 유준열, 김창기, 박기영, 박경찬, 이서웅, 최형규 7명의 멤버가 낸 동물원 1집은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입지를 잡게 했다.

이들은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와 ‘혜화동’, ‘널 사랑하겠어’ 등 주옥같은 노래를 발표하며 20년간 꾸준히 사랑받았다. 1988년 결성 당시 7명의 멤버였던 동물원은 현재 유준열(기타·보컬), 박기영(건반·보컬), 배영길(기타·보컬) 3명으로 축소됐다.

멤버들 각자가 다른 직업을 가진 채 음악을 한다는 점도 90년대 초반 눈에 띄는 시도였다.

“그룹 멤버들의 공통점이라면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말자는 거였어요. 1집이 100만장을 넘고 2,3집 반응도 좋았지만, 이것이 행운이지 인기가 계속 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당시 걱정은 ‘직업을 가지면서 음악을 계속 할 수 있는가’였지요.”

그룹의 맏형 격인 유준열 씨가 인터뷰를 하며 명함을 꺼낸다. 명함 속 직함은 ‘정밀광학기기’ 무역회사의 상무다. 그의 고민은 해결 된 듯 보였다. 박기영 씨는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배영길 씨 역시 음악관련 일을 하고 있다.

“각자 직장 생활을 하느라 연습, 녹음을 따로 할 때가 많아요. 작사 작곡한 음악을 각자 녹음하고 취합해서 앨범을 낸 적도 있죠. 그게 2003년에 냈던 9집이에요.”(박기영)

수년 간 맞춰온 터라 연습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수준이 됐다.

그룹 동물원이라고 하면 팬들은 간결하고 편안한 멜로디의 노래를 연상하지만, 멤버 개개인의 음악적 성향은 모두 다르다. 유준열은 포크, 박기영은 발라드, 배영길은 록 음악을 선호한다. 취향 다른 이들이 20년간 활동한 비결에 대해 ‘멤버들 성격이 좋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멤버 모두가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요. 각자 작사 작곡한 노래를 자기가 불러요. 다른 멤버가 작곡한 음악에 대해서 조언을 하지만, 간섭하지는 않아요. 영화 작업할 때 배우가 감독 지시에 따라서 연기하는 것처럼, 연주할 때 작곡자 의도를 먼저 생각하죠.”(유준열)

“자랑인 듯하지만, 멤버 각자가 다른 그룹으로 갔으면 리더가 됐을 사람들이에요. 동물원을 거쳐 간 한명 한명의 기량이 다 출중해요. 그래도 다른 멤버가 작곡한 곡에 간섭하지 않아요. 한 명의 카리스마로 이끄는 그룹은 오래가지 못하는 듯해요.”(배영길)

때문에 동물원의 앨범을 찬찬히 살펴보면 포크와 발라드부터 록까지 다양한 음악이 녹아 있다. 특히 8,9집은 이전 1,2,3집과는 확연히 다른 음악적 흐름을 보여준다.

■ 콘서트 '기억을 달리다'.

“20년간 우리 음악은 많이 변했어요. 초기 포크, 발라드 위주 곡에서 8,9집에는 다양한 실험곡도 선보였고. 하지만 팬들은 ‘동물원’이라는 틀 안에서 음악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널 사랑하겠어’ 같은 히트곡을 주로 기억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죠.”(박기영)

멤버 박기영 씨의 이 말은 행복한 고민으로 들렸다.

가수 이승철은 예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부른 곡 중 최고의 곡으로 ‘희야’를 꼽은 적이 있는데, 음악적 완성도와 기량을 떠나서 팬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나간 노래 한 구절로 청춘의 기억을 회상하도록 만드는 게 대중음악의 힘이 아닐까. 대중음악의 경쟁력을 이 기준에서 본다면, 동물원의 음악은 분명 경쟁력이 있는 음악이다.

대화는 이달 말에 있을 콘서트로 이어졌다. 이번 콘서트의 제목은 <기억을 달리다>. 동물원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물씬 나는 듯하다. ‘거리에서’‘널 사랑하겠어’‘변해가네’등 히트곡을 위주로 선보이데 이 노래들을 녹음하던 시절, 멤버들 사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줄 계획이란다.

“동물원 홈페이지에 가면 팬들이 우리 곡에 얽힌 사연을 적은 코너가 있어요. 이 코너를 읽다 보면 ‘우리가 만든 음악이 단순이 우리 것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죠. 이번 콘서트는 그런 점에서 기획했어요.” (유준열)

또 하나의 기획은 동물원 음악에 맞춰 ‘비주얼’을 보여주겠다는 것. 4집 ‘명화극장을 본 후’를 부르면서 가사에 나오는 겨울나그네, 뽕, 인디아나존스(Indiana Jones),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 등 영화의 한 장면과 동시 개봉관 흑백사진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줄 예정이다.

“요즘 이벤트 형식으로 관객이 참여하는 콘서트가 많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렇다고 춤을 출 수는 없고. 예전 사진, 그림들을 보면서 관객들과 예전 시간을 함께 추억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해요.”(박기영)

데뷔 20년차, 1,500회 이상의 콘서트로 팬들을 만났던 그룹 동물원. 이들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 ‘시청앞 지하철역’의 ‘거리에서’ ‘혜화동’으로 걸어오며 ‘흐린 가을하늘’을 바라보고 ‘널 사랑하겠어’란 편지를 쓸까 고민하던 젊은 날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