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부탁해' 저자이 소설 읽고 엄마에 전화하고픈 마음 울컥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

그녀를 만난 게 두 번째다.

단편 소설집을 발간하고 어느 대학이 주최한 작가 강연회 자리에서 그녀를 만난 후 5년만이다. 당시 그녀는 중견작가로 자리를 굳혔지만, 강연은 낯선 것 같았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무슨 말을 하나’ 생각해서 거절했는데, 주최 학생이 너무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오게 됐어요. 근데 정말 무슨 말을 하죠?”

조용하고 어눌한 말투와 이어 나오는 강연은 그녀의 작품 한 대목을 읽는 듯했다.

“가끔 소설을 쓸 때면 제가 인물을 만들었지만, 인물이 작품을 끌고 나갈 때가 있어요. ‘이렇게 큰 비중이 아니었는데’ 싶으면서도 계속 쓰게 될 때도 있고, 더 극한으로 나갈 때도 있고. 인물이 작가보다 힘이 셀 때가 있죠.”

그녀는 차분하게 자신이 등단한 당시 상황과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문학에 관한 견해도 밝혔다. 학창시절부터 세계 문학전집을 비롯해 각종 책을 끼고 살았고, 등단 전과 등단 당시에도 계속 가작만 수상해서 아쉬워했다는 이 사람은 신경숙 작가다.

■ 사진을 부탁해

신 작가는 1985년 문예중앙에 ‘겨울우화’로 22살의 이른 나이에 등단했지만, 오랜 무명 기간을 거쳐 서른 살 되던 해 <풍금이 있던 자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약국을 하는 여동생에게 1년간 생활비를 ‘스폰서’받아 썼던 이 작품은 아버지 환갑에 맞춰 발간됐고 그녀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녀는 “<풍금이 있던 자리>를 내고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있다 만부 찍고 또 일주일 있다 이만부 찍었다”고 말했다.

신 작가를 처음 만난 강연은 2003년 봄 <종소리>를 발간하고 두 계절이 지나 열렸는데, 작품만큼이나 진지했던 그녀의 모습은 ‘작가는 이런 사람’이란 생각을 갖게 했다. 어느덧 40대 중반을 넘은 그녀는 중견 작가로서 손색없는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5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녀는 생기발랄한 소녀를 연상케 했다. 아침에 눈이 충혈돼 약속시간을 늦췄다며 연신 미안해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는 여전했지만, 통통했던 얼굴은 한층 갸름해졌고, 눈은 더 커진 듯하다. 충혈된 눈 때문에 사진을 걱정하다가, 거울을 보여주자 안심하는 눈치다. 그녀는 최근 여섯번째 장편 <엄마를 부탁해>를 펴냈다.

“신간 나오고 나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기자회견도 하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며칠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하는 ‘독자와의 대화’에 갈 거예요.”

“강연회일텐데, 준비 하셨나요?”

“글쎄, 준비 안했는데. 제 작품 이야기랑 문학이야기 하면 되지 않을까요? 문학 이외에 다른 걸 기대하진 않으시겠죠?”

방긋 웃는 모습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사진 촬영 때문에 카페 밖 통유리 벽에 기대 포즈를 취하면서, 그녀가 말도 들리지 않을 카페 안 사람들을 향해 작게 말한다.

“어머,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엉뚱한 매력에 촬영장은 한바탕 웃음바다로 변한다. 사진 기자가 인사를 하면서 퇴장한다. 신 작가가 말했다.

“사진을 부탁해요.”

이번 신간 제목에 빗댄 신 작가의 패러디다. 대화는 신간으로 이어졌다.

■ 장편,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지난 해부터 1년간 계간지 <창비>에 연재한 장편소설 제목이다. 4장으로 구성했고 이달 초 단행본으로 발간하며 에필로그 ‘장미묵주’편을 더했다.

“자료를 정말 많이 수집했어요. 그런데 뭔 일인지 안 풀려요. <창비>에 연재하기로 했는데 3번쯤 계속 펑크를 냈어요. 잘 안 나와요. 어느 날 어머니를 엄마로 바꿔봤더니 마음속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들이 서로 밀고 올라왔죠.”

작품은 ‘엄마 실종 일주일 째’에서 시작된다. 나이 일흔의 엄마는 남편과 공동생일상을 받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지하철역에서 남편 손을 놓쳐 길을 잃는다.

엄마의 존재를 잊었던 자식들은 이를 계기로 엄마의 흔적을 추적하며 기억을 복원해간다. 진뫼라는 시골동네에서 태어나 열일곱에 시집온 엄마는 당신의 품에서 모든 생명을 길러낸다.

옆집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다섯 배, 여섯 배 새끼를 낳을 때까지 길러내고, 봄이면 암탉이 알을 품어 깨어낸 병아리를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살려냈다. 텃밭에 씨를 뿌려 감자를 거두면 당근을, 당근을 거두면 고구마를 쉴새없이 심어 수확했다. 글자 한 자 제대로 읽을 줄 모르지만 오남매를 작가, 약사, 대기업 사원으로 보란 듯이 키워냈다. 그런 엄마의 존재가 없어지면서 역설적으로 엄마의 존재가 각인되기 시작한다.

신 작가는 “한 인간이 엄마라고 부를 때 섞여있는 온갖 것에 의지해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문맹 엄마와 작가 딸의 설정이 자신과 닮은꼴로 비춰지지만, 자전적 이야기와 함께 다른 어머니들의 이야기, 미학적 상상력을 함께 버무려진 작품이라고.

“전 이제까지 엄마를 엄마로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도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잖아요.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상징으로서 엄마는 모든 걸 태어나게 하고 시작하게 하는 존재니까, 가장 건강하고 상처받지 않고 존재하도록 해야죠.”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내용은 어찌 보면 진부한 내용일 수도 있다. 때문에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이 작품을 두고 “신경숙의 작품 중에서 확실한 성공작이지만 요즘 세상에선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 소설”이라고 평했다. 평범한 이야기가 ‘확실한 성공작’이 된 데에는 소설의 흐름과 시점이 기여한 측면이 크다.

작품 속 자식들은 전단지를 붙이고 광고를 내면서 엄마를 찾아 헤매며 엄마를 복원해 낸다. 자식과 남편의 기억은 딸(1장), 큰아들(2장), 아버지(3장), 엄마(4장), 딸(에필로그)의 시점으로 전환되면서 진행된다.

1장과 에필로그 딸의 시점에서는 ‘너’, 2장 큰 아들은 ‘그’라는 명칭을 사용해 각 인물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유일하게 1인칭 시점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엄마가 서술하는 4장인데, 작가는 “자신의 본능이나 꿈을 위해 살았던 시간이 별로 없었던 엄마를 위한 내 나름의 배려”라고 말했다.

“작가인 딸의 시점에서 ‘너는’이라고 서술하는 부분이 있는데, ‘너’라고 쓴 건 작가인 딸 뿐만 아니라 읽고 있는 독자를 너로 지칭하는 말이었어요. 너의 부모, 너의 엄마로 읽히라고.”

신경숙 작가는 집필 초기 실제 엄마와 보름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30년을 떨어져 지내다 함께 생활한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부담이 됐지만, 같이 잠을 자고 천장을 보며 지나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벅찬 행복이 됐다고. 작품을 쓰는 내내 독자에게 “너무 늦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단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엄마에게 전화 한통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울컥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다”고도 말했다.

신 작가의 바람은 어렵게 않게 이루어 질 것이다. 신 작가에게 작품을 읽고 기자 또한 ‘울컥’했으며, 인터뷰 전날 “엄마는 서울에서 길 잃으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전화를 했다고 말해주었다.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는 건 딸들의 공통된 성질인가 보다. 신경숙 작가는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고 말했다. “엄마가 너무 이야기를 잘해서 받아 적을 때도 많다”고 덧붙였다.

■ 다음 장편은 밝은 사람 이야기

그녀를 만난 지 두 시간 째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던 손님들은 자리를 떠났고, 사발만한 머그잔에 든 커피도 반쯤 비워졌다.

그녀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예전 일반에 공개돼 화제가 됐던 서재부터 말을 꺼냈다. 신경숙-남진우 작가의 서재는 1,2층에 꾸며진 2개의 작업실 이외에도 계단을 올라가는 길목에도 빼곡하게 책이 꽂힌 책장이 둘러져 있어 장서가들 사이에서는 ‘꿈의 서재’로 알려져 있다.

“원래 사진이 멋있게 나오는 거잖아요. 그리고 작업실 겸 집이니까, 넓게 만든 거죠. 1층은 부엌이랑 내 작업실, 2층은 침실이랑 남편 작업실. 그게 다 예요. 전 글은 꼭 집에 있는 작업실에서 써야 해요. 글을 쓸 때 몸에 맞게 짜여진 책상에서 하는 게 잘돼요.”

그 많은 책을 다 읽은 것일까? 어린 시절 신 작가에게 책은 ‘다른 세상을 열어 주었’고, 시골에서 16살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했다.

그녀는 “그때는 자존심을 지킬 게 필요했고, 나를 지켜주는 것으로 문학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30살 이후로 넓은 책상과 작업실을 갖게 됐지만, 그런 순간이 없었더라고 글을 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과 글에 대한 애정으로 보건 데 신 작가는 그 책의 대부분을 읽을 듯했다.

다독가로 알려진 신 작가에게 책도 한 권 추천받았다. 그녀는 최근에 로렌 아이슬리의 <그 모든 낯선 시간들>을 읽었고 스콧 니어링 자서전과 전태일 평전을 추천했다.

“항상 책에서 영향을 받아요. 남들이 어떻게 쓰는지 알아야 하니까. 책을 읽을 때는 흐름을 봐요. 모든 게 상호 연결됐다고 생각해요.”

책에 대한 대화에서 눈이 빛난다. 음성은 여전히 명랑하다. 모든 자식들의 원죄를 그려낸 작품을 발표하고, 이 작가는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 인터뷰 내내 들었던 궁금증은 “데뷔 이전부터 구상해 두었던 작품”이란 작가의 말에서 해답을 얻었다.

“작가가 되면 엄마 얘기를 한번 써보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는데,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서 지키게 됐네요.”

장편소설은 작가가 한 세계를 열어가는 지난한 싸움이다. 이 큰 숙제를 끝낸 이후라 그녀의 표정이 더 밝고 명랑했던 게 아닐까. 작가는 “내가 발 빠르게 앞서가는 작가는 못 된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새롭게 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엄마 얘기를 내 방식으로 가장 세련되게 말했다”는 작가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내 이야기를 쓴 것 같은’ 공감대는 신 작가의 강점이자, 서점 재테크 코너에 모여 있는 30~40대 독자를 한국문학 코너로 불러 모으는 강력한 기제가 된다. ‘문학의 위기’란 말이 들려 올 때면 구원투수처럼 나타났던 그녀 아니던가.

작가는 다음 장편은 밝은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단편집 하나가 더 나오면 또 긴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깊은 슬픔> 이후 15년이 지났는데, 그렇게 써졌으면 좋겠어요.”

먼 여정을 떠나는 작가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한국문학을, 부탁해.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