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법 제정 위해서는 공연예술계 공조·연구 수반되어야

지난 11월 26일은 ‘예술인 복지법 제정’이라는 생소한 주제로 예술인들이 모여 토론을 벌인 날이었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사장 박정자)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국회 문화관광체육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정병국 의원이 후원한 이날 토론회는 연극계와 무용계 등 현장예술인들과 각 대학의 문화예술 관련학과 교수들, 문화관광연구원 및 문화전문 매체 등 많은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안의 중요함을 일깨워줬다.

‘예술인’과 ‘복지법’이라는 단어의 병기(倂記)가 왠지 낯설어보이는 것은, 예술인을 일반인과 분리시켜 생각하는 오래된 고정관념의 결과다.

예술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예술의 위기가 곧 예술인의 위기와 연결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을 초래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날 무용계를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윤성주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도 이 같은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직업인으로서 예술인의 복지 논의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예술인들은 이런 문제를 잘 몰라요. 이번 토론회와 같이 관심있는 몇몇 사람만 주축이 되어서 일부에서만 이루어지는 거죠. 당장의 생계 문제는 일자리 창출과 교육의 문제가 병행되어야 하는 문제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게 급한 현실에 ‘법 제정’이라는 거창한 문제는 나와 관계없다는 의식이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술인 스스로의 인식 전환과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 후속 조치 없이 행사 위주로 끝나는 현실도 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가 ‘예술인들만의 이야기’라는 사회적 인식도 법 제정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현장예술인들의 무관심도 법 제정의 추진이 힘을 내지 못하는 큰 원인이다. 그동안 몇 번 문을 두드려봤지만 대답도 없고 생계는 어려우니 이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까닭이다.

“원래 자존심이 강한데다 마음도 급해진 예술인들은 이제 두 번 세 번 노크하지 않아요. 이 문제로 울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우는 것도 생계가 유지될 때 이야기거든요. 당연히 시간과 노력, 연구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여유가 없는 현장예술인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죠. 이들에게 제도, 정책, 경영 같은 것들은 마치 먼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될 겁니다. 이 점에서 복지 관련 법안 등 제도의 정착은 국가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고, 문화예술 인프라의 확충도 역시 국가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에요.”

하지만 뒤늦게나마 이런 논의가 범 문화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특히 문화입법에 접근해 있는 국회위원들의 적극적인 관심은 이전과는 달라진 상황을 보여준다.

윤성주 이사장은 지난해 1월에 무용수들의 현실적인 생계를 포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수행하며 이 같은 문제를 앞서 고민한 바 있다. 그 때문인지 윤 이사장은 이번 토론회에 대해 지난해 12월 ‘예술인 복지증진을 위한 정책 포럼’ 이후 오랜만에 열린 행사라는 점에 점수를 주면서도 눈에 띄었던 문제점도 함께 지적했다.

“사업의 연계성이 여전히 부족한 듯합니다. 일단은 어떤 형태든 각계에서 제안들이 쏟아져 나와 축적된 담론들이 쌓여 충분한 고민을 거치는 행위가 선행된 후에 법이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접근하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술인 복지법 제정’이라고 해놓고 연극인들만 모여 있었던 것도 약간은 속상하더군요. 타 장르, 특히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공연예술계만이라도 공조체제를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또 근거자료의 축적이 부족한 예술인들이 메아리처럼 말로만 하지 말고, 다양한 연구자료들을 충분히 수행해서 남기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7 전문무용수 실태조사’와 ‘2008 연극인실태조사’ 자료는 대단히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지요.”

2007년 1월에 출범한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윤 이사장의 지적처럼 출범 당시 자료의 축적을 급선무로 여겨 내부적으로 연구사업 ‘2007 전문무용수 실태조사’와 개발연구 ‘배우를 위한 신체훈련’에 주력했다. 외부사업으로는 당장의 생계문제가 시급한 프리랜서 무용수의 일자리창출을 위한 ‘국내외 댄서스 잡마켓(Dancer’s Job Market)’을 시행해왔다.

실태조사자료를 근거로 올해에는 3~40대에 조기은퇴를 하는 무용수를 대상으로 직업전환재교육 지원사업과 상해를 입은 무용수를 위한 상해지원사업 시행하고 있다.

연구사업으로는 무용수 해외진출을 위한 ‘해외무용단 정보조사’와 ‘해외 직업전환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개발연구로 ‘배우를 위한 신체훈련 중급과정’을 완성시켜 2년차 단체로서는 비교적 풍부한 성과들을 거두고 있다.

윤 이사장은 처음에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 대한 무용계 특히 학계의 반응이 냉담했었지만 이런 성과들을 내기 시작하면서 위상이 변화화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는 무용계 전반이 우리 사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프리랜서 무용수가 기댈 수 있는 기반으로의 역할로 전환되고 있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빈부의 격차에 따른 어려움이 무용계 내부에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가령 국공립단체에 속한 무용인들과 달리 소규모 무용단이나 프리랜서 무용인들의 처우는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윤 이사장은 이들을 포함해 모든 전문무용수들의 은퇴나 부상으로 인한 직업 전환을 위해 여러 가지 복안들을 계속 고민하는 중이다.

“국공립단체 무용수들에 대해서는 은퇴 후 직업전환 재교육에 대한 교육비 지원사업과 연습 중 부상당한 무용수를 위한 상해 지원 등을 주력사업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민간단체에 대해서는 일자리 창출 사업 중 현재 연 3회 실시하는 ‘국내외 댄서스 잡마켓’을 통한 무용수 선발사업으로 무용수 출연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공간지원사업을 검토 중이기도 합니다. 직업전환 재교육 시 생기는 일자리 공백에 대한 지원도 함께 연구 중입니다.”

그 자신도 무용수 출신으로 전문무용수지원센터를 맡으며 후배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고 놀랐다는 윤성주 이사장. 그래서인지 지난 3년간 열심히 뛰면서 초기의 주변의 의구심들을 대부분 떨쳐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사장’이라는 거대한 직함에도 불구하고 무용인들의 복지를 위해 정신없이 뛰어온 그는 이날도 현장의 호출을 받고 바삐 문을 나선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