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제품관리 IMF때도 호황… 최고 와인 상인 되고파

‘꼬망드리(메독, 그라브) 기사단, 쥐라드(?융섰龜?? 기사단, 슈발리에 뒤 따스트뱅(부르고뉴) 기사단. 프랑스 와인의 3대 명예 훈장으로 불리는 작위들이다.

하나도 받기 힘든 이들 기사 작위를 모두 휩쓴 한국인이 최근 탄생했다. 유안근 ㈜까브드뱅 대표이사. 그는 최근 프랑스 부르고뉴의 끌로 드 부조(Clos de Veugeot)에서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와인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기사 작위를 수여 받으면서 ‘와인 기사 3관왕’을 달성했다.

유 대표가 이번에 받은 꽁프레리 데 슈발리에 뒤 따스뜨뱅(La Confrerie des Chevaliers du Tastevin)'은 전 세계에서 부르고뉴 와인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추천받아 심사한 후 그 공로를 치하하고자 수여하는 작위다. “최고의 와인 문화를 창달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콩프레리’란 한 지역에서 같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자 및 산업계 관련 인사들의 모임을 말하는 단어. 보르도 지역의 공프레리는 ‘꼬망드리’, 부르고뉴에서는 ‘따스드뱅 기사단’이라 부른다. 슈발리에(Chevalier)는 중세 유럽에 등장했던 이른바 ‘기사’ 작위로 현대에 와서는 프랑스 정부에서 수여하는 공훈장(뢰종 도뇌르)의 5등급 지위를 일컫는다.

유 대표가 처음 프랑스에서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은 2001년. 프랑스 꼬망드리(메독과 그라브)의 기사단 자격 수여가 첫번째고, 이후 2003년 프랑스 쥐라드 생테밀리옹 기사단으로 선임됐다.

국내에서 보르도 꼬망드리 기사단으로 선임된 인사는 10여명. 종종 주한 프랑스대사관이나 일본에서 작위를 수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유 대표는 보르도 빈엑스포의 마지막 메인 이벤트에서 작위를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인 중 슈발리에 뒤 따스트뱅을 포함, 꼬망드리 메인 이벤트에서 작위를 받은 와인 기사 3관왕은 현재 나라식품의 이희상 회장과 유안근대표 단 2명에 불과하다.

실제 국내 와인 문화 1세대로 꼽히는 유 대표이사가 이끄는 ㈜까브드뱅은 와인 거래 물량 만으로 국내 최정상은 아니다. 매출 규모로만 보면 7~8위 정도. 하지만 와인의 품질(Quality)에서 만은 국내 최정상급임을 자부한다.

“국내 와인 산업에서 최대의 상인(biggest merchant)이 되려고 꿈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와인 상인(best merchant)이 되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그의 말에서처럼 ‘와인의 품질’에 대한 유 대표의 신념은 남다르다. 단순히 품질 좋은 와인을 선별해 취급하는 것 말고도 와인의 상태를 최고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크게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까브드뱅 제공

와인의 품질 유지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은 10년전 IMF 시절 경험한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IMF 사태가 터질 줄 모르고 프랑스의 고급 와인들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워낙에 유명하고 고가 와인이라 물량을 확보하는 것 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는데 경제난 속에 위기를 맞게 된 거죠. 그래서 프랑스 본사에 전화를 걸어 ‘수입한 와인들을 반품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잠깐 기다려달라. 와인을 팔 곳을 소개해 주겠다’는 것이었죠. 사실 세계 시장에서 ‘물량이 딸려 없어서 못파는 물건’들이니 조금은 이해가 되죠.”

그리고 소개 받은 이는 일본의 와인 수입상. 그는 소믈리에 한 명을 데리고 유 대표를 만나러 한국까지 날아 왔다. 그리고 창고에 비치된 와인을 직접 따서 맛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주문을 내렸다. “여기 있는 와인 제가 다 사가겠습니다.” 일본 수입상은 그것도 모자라 레스토랑과 호텔 등에 이미 깔려 있는 물량까지 죄다 수거해 구입해 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저희 회사가 보관하고 있던 와인의 품질 상태를 보고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지요.”

사례에서처럼 유 대표의 ㈜까브드뱅은 와인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서 최고를 자신한다. 생산국 현지에서 운송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비행기나 배를 타고 오는 과정, 그리고 국내 세관과 창고 보관, 유통 과정에서 한 순간이라도 결코 틈새를 허용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

“와인에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항상 유지해 줍니다. 와인 병이 냉장 컨테이너에 있든 단열재 처리된 방에 있든 조건에 관계 없습니다. 와인은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사실 말이 그렇지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대표가 철저한 관리 보관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 ‘조그만 신뢰 하나라도 나머지 99개의 신뢰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에서다.

“와인의 상태를 최고로 유지한다는 것이 결코 소비자 눈에 금방 쉽게 띄는 부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작은 부분에서도 소비자들이 저희의 노력을 알아주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회사와 상품도 건재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대부분 힘들어 하던 IMF 시절 오히려 호황(?)을 누렸다. 이 때 회사도 커졌고 더불어 새로운 명성도 얻었다. ‘와인 수출상’이란 타이틀. “아마 국내에서 와인을 사다가 수출해 돈을 번(?) 사람은 저 말고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와인 품질만 제대로 유지해도 해외에 팔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는 프랑스 고급 와인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진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국내 와인 업계는 급등한 환율로 위기를 겪고 있다. 벌써 도산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난국을 둘러싼 소문도 무성하다. “국내 와인 수입상이 대략 400~500개는 될 겁니다. 사실 난립한 감도 없지 않은데 한동안 문을 닫는 회사가 더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가 와인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의 자신감은 업계에서 쌓은 오랜 경험과 확고한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와인 산업은 롱텀 비즈니스입니다. 위기가 끝나면 도 다시 도약의 단계가 돌아 옵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 우리 나라 와인 업계가 공멸한다고 가정하면 아마 저희 회사가 맨 마지막 차례 아닐까 싶습니다.”

유 대표는 이 번 기사 작위 수여식을 위해 프랑스를 다녀 오면서 ‘아주 오래된’ 와인 2병을 가져왔다. 1915년에 생산된 ‘본 프리미에 크뤼 루이자도’와 1971년 빈티지의 ‘뫼르소 프리미에 크뤼 루이자도’. 지하 보관창고에서 바로 꺼낸 것들이라 병 바깥에 먼지범벅이 붙어 있고 볼품이 없지만 그는 일부러 이 와인들을 직접 따서 직원들에게 맛보게 했다. 그리고 그가 들은 말은 ‘싱싱해요!’.

“일부러 맛보게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와인은 시간이 오래돼도 보관 관리만 잘 해주면 얼마든지 좋은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그는 와인에 대해 소명의식이 없다면 아마 지금까지 그렇게까지 해오지 못해 왔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hope the best, but prepare the worst. 최고를 지향하라. 하지만 최악을 대비하라고 항상 말합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잘 쓰는 표현이다.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