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멜로적 감성으로 '독립영화계의 서정시인' 으로 불려최근 단편 컬렉션 '연인들' 개봉 이어 첫 장편영화에도 도전장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의 내러티브를 압축한 것도,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사전작업도 아니다. 단편영화는 그것만의 고유한 호흡과 독립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완결된 영화다.

단편영화들이 점점 장르화되고 정형화된 내러티브를 지녔음에도 한국에서 단편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어쩐지 비주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영화제를 통해서만 일회적으로 소개되는 국내 단편영화 배급의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내에서 단편만을 찍는 영화감독은 드문 편이다.

이미 유명해진 감독들의 첫 시작도 단편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아서, 마치 단편영화는 상업적 장편영화 감독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 단계인 것처럼 보인다.

국내의 대표적인 독립영화제인 ‘서울독립영화제’에 올해 출품된 신작 단편영화는 578편이나 된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감독들이 해마다 새롭게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단편영화들의 존재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잊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단편영화 작업만을 꾸준히 해온 김종관(34) 감독의 영화가 개봉되어 화제다. 그의 대표 단편 11편((2002), <폴라로이드 작동법>(2004), <영재를 기다리며>(2005), <낙원>(2005), <누구나 외로운 계절>(2006), <모놀로그#1>(2006), <드라이버>(2007), <길 잃은 시간>(2007), <메모리즈>(2008), <헤이 톰>(2008), <올 가을의 트렌드>(2008) )을 골라 옴니버스로 묶은 단편 컬렉션 <연인들>은 단편이기 때문에 가능한 순간의 미학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곳곳에서 빛나는 감독 특유의 ‘멜로적 감성’은 관객들로부터 이미 독립영화계의 ‘감성지기’, ‘서정시인’이란 기분 좋은 별명을 얻어냈다.

1- '연인들' 포스터
2- '누구나 외로운 계절' 스틸사진
3- '폴라로이드 작동법' 스틸사진

■ 가장 기대되는 신진 감독 평가받아

그가 상업영화로 데뷔하지 않은 감독 중 가장 기대되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그저 운 좋게 따낸 말이 아니다.

단편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종관’이라는 이름 석자나 그의 영화 제목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8년 동안 17편의 단편을 찍어온 그는 독립영화계에서 주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미 수많은 단편들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아온 데다 <소년>과 <바닷가에서>란 두 편의 장편영화는 ‘장편독립영화 개발비 지원펀드’에 선정될 만큼 김종관 감독은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성임에 틀림없다.

단편영화 마니아에게 단편 컬렉션 <연인들>은 김 감독이 매년 새로운 스토리텔링과 자기 호흡을 지켜가며 만들어온 작품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무엇보다 단편영화제가 아닌 영화관에서 기존 상업영화와는 다른 빛깔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어쩌면 ‘김종관’이라는 영화감독이 자신만의 호흡으로 나긋나긋 들려주는 연애 이야기는 그의 성장과정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일 수도 있지만, 사랑으로 설레고 이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혹은 어이없게 잊혀지고 어긋났던, 그리고 가증스럽게 또 다른 설레임을 기다리고 찾는 우리네 청춘의 단면을, 흘러간 어느 시간을 조우하게 되는 ‘가슴 떨리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제주도에서 첫 장편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가?

“<바닷가에서>라는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원을 받은 영화인데 제주도가 배경이어서 이곳에서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4명의 남녀가 바닷가 피서지에서 두어 계절 동안 연애와 상실, 희망들을 이야기하는 작은 이야기이다. 계절의 변화, 심경의 변화를 겪는 네 사람의 성장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가 되길 바란다.”

-지금까지 단편 작업만 하다 처음으로 장편영화에 도전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언가?

“우선 장편은 시나리오 분량이 많아서 작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웃음). 그리고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전(단편영화)과는 다른 신중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 것만은 틀림없다.”

-주중에는 제주도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주말에는 현재 개봉 중인 <연인들> 홍보 차원에서 GV(Guest Visitㆍ관객과의 만남 행사)도 부지런히 다닌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작업한 단편영화들을 개봉하게 되어 더없이 기쁘고 홍보하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일정상 이번 달 안에 해놓을 작업이 있어서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이렇게 무리수를 두고 있다. 단편작업은 이제껏 나의 모든 창작 작업이었기에 이렇게 단편들을 모아서 개봉하게 되었다는 것이 나에겐 각별한 의미가 있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개봉관에서 만나는 관객들은 나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관객이야말로 앞으로 영화작업을 하는 데 가장 많은 힘을 줄 분들이기 때문이다.”

-8년 동안 17편의 단편을 찍었다. 보통 단편을 찍다가 자연스럽게 중편, 장편영화를 찍게 되는데, 감독의 경우 오랫동안 단편만을 고집한 느낌이 든다.

“단편영화 감독 하면 자연스레 비주류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 단편영화는 유일한 창작 도구였고 때문에 단편작업을 즐긴 것이다. 나는 영화로 창작을 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단편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단편영화 상영관이나 단편영화를 보여주는 채널이 많아져서 사람들이 쉽게 접한다면 감독의 입장에서 좀 더 자유롭게 영화를 창작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장, 단편 구분 없이 양쪽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감독들도 많은데 말이다.”

단편영화는 소박하고 솔직한 창작

-그렇다면 김 감독이 생각하는 단편영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단편은 나름대로 수많은 미학과 장점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단편은 솔직하고 소박한 창작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스트 허진호’, ‘한국의 이와이 순지’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독립영화계에서 김종관 감독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런 말들이 낯뜨겁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두 분의 감독은 평소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다. 또한 그 분들의 영화 또한 내가 즐겨보았던 영화다. 세상에는 나를 반하게 하는 영화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은 나의 창작에 부분적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될 거라 생각한다.”

-단편 11편을 묶은 옴니버스 멜로 영화 <연인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거나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영화가 있는가?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어느날 이불 속에 누워서 어렸을 적 폴라로이드로 찍은 가족 사진을 보다가 느껴지는 감정들을 갑자기 시나리오로 써 내려간 작품이다. 다 쓴 시나리오를 보고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낙원>은 거리가 자꾸 벌어지며 걸어가는 남녀를 생각하며 무늬를 모를 슬픔으로 시나리오를 썼었다. 그렇게 순간적인 열정들로 이야기를 만들어 갔고, 또 그것들이 구체화될 때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영화를 찍다가, 편집하다가, 내 감정이 움직이는 진기한 경험 또한 가끔은 겪게 되는 것 같다.”

-멜로 단편영화는 누구보다 잘 찍을 수 있는 감독 아닌가 싶다. 그만큼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다. 그래서 <연인들>이란 타이틀로 묶어서 개봉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특별히 연애 이야기에 의도를 두지는 않았다. 사람 관계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확대시키고, 그 관계를 지켜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연애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한 작품들이 많이 나온 것이다. 첫 영화가 관계의 상실감에 관한 이야기였고 영화마다 그 다음 질문을 진행시켜 나갔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 스타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감독이 생각하는 첫 영화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어떤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영화를 찍고 싶었다. 한마디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에 반해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영화로 풀고 싶은 내 관심사가 생겨난 것 같다. 2002년에 찍은 (운디드)라는 영화가 첫 영화처럼 생각된다. 그때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배우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무대 인사도 같이 다니는데.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정유미의 경우 이 단편으로 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오르지 않았나? <헤이 톰>의 김가은, 홍종현 등 CF나 각종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들의 신인 시절을 감독의 단편영화를 통해 볼 수 있어서 신선해 보였다.

“단편이라는 것이 조금 순수한 작업이기 때문에 작업하는 사람들끼리의 만남이 조금 더 즐거울지 모르겠다. 때로는 좋은 배우와 시작점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 이기적인 구석이 있어 작업을 마친 다음에 인간관계를 열심히 유지해 나가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작업한 많은 배우들은 나에게 분명 큰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는 무수한 거짓말들을 직조해 만든 진실

-영화의 성장속도와 감독의 성장속도가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나리오도 직접 썼는데,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는 셈인가?

“기억과 경험은 내 작업 속에 어느 정도 스며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는 수많은 거짓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거기에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트릭, 마술 등의 거짓말도 있고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허구들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 또한 그 허구들 사이에서 왜곡되어 결국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는 무수한 거짓말들을 직조해서 진심을 말할 수가 있다.”

-결정적으로 영화감독이 된 계기가 있는가?

“그다지 재미없고 조금은 비관적인 아이였던 나에게 수많은 몽상들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러한 몽상들이 나를 영화 찍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다. 단 한번의 계기로 감독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씩 쌓이는 계기가 점점 커져 어느 순간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2009년이 어떤 해가 되길 원하는가? 자신의 영화로 세상을 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가?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이 동했던 수많은 영화들처럼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 마음이 동할 수 있는 영화 몇 편 정도는 만들어보고 싶다. 그것이 2009년 내가 바라는 목표이자, 꿈이다.”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