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연극의 대표주자신작 '너무 놀라지 마라'도 대중성과 작품성 두마리 토끼 잡을지 관심

감성(Feeling), 유명(Famous), 그리고 가족(Family), 3F라 불리는 이들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최근 발표한 ‘2008 문화계 10대 히트상품’의 키워드다. 이런 트렌드는 지난해 불어 닥친 경제 한파의 영향으로, 불황이 지속되는 올해도 여전히 유효할 듯하다.

새해 벽두, 이들 테마 중 하나인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 한 편이 눈에 띈다. 한국 연극의 대표주자, 박근형 연출가의 신작 <놀라지 마라>이다. 따뜻한 가족애를 기대하기 전에, 일단 심호흡부터.

‘놀라지 않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데,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첫째 아들은 영화를 만든다며 집안일은 뒷전인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며느리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노래방 도우미, 둘째 아들은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은둔형 외톨이다.

도박에 빠져 집안 살림을 거덜 낸 부인만 기다리던 아버지는 다른 남자의 장례식장에서 소복차림으로 울고 있는 부인을 보고는 망연자실해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며느리와 둘째 아들을 앞에 두고 남긴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놀라지 마라.’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논외로 둔 채, 남은 자들의 개인적인 불편과 불만에서 촉발된 다툼과 책임회피가 상상 이상이다.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1월 7일부터 2월 1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놀라지 마라>, 신년부터 너무 ‘쎈’ 작품이 아닌가 싶었다.

“살면서 옆을 보기도 하고, 정신 못 차릴 때는 회초리 같은 자극도 있어야 하지 않나. 아닌 게 분명한데도 눈감고 모른 척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공연 개막 하루 전날 찾은 산울림 극장에서 박근형 연출가는 말했다.

검은 테 안경과 검정색 점퍼를 입고 나타난 그는 특히 웃는 모습이 선했다. 순박한 웃음을 짓다가는 자분자분 연극의 줄거리, 자신의 연출 스타일, 그의 연극의 주소재인 가족에 대해 이야기 하며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은 때때로 사색에 잠겨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내용의 <쥐>로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 아버지>, <대대손손> 등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매번 대중성과 작품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가족’이란 테마가 희곡의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흔한 소재라지만 박 연출가의 작품 속 가족은 늘상 떠올리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더 가깝게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 안에 담을 것이 많아요. 시대의 함축적 의미와 사회윤리... 역사청산만 예를 들어도 넓은 범주에서는 쉬운 일일 수 있지만 한 가족으로 들어오면 극복해야 할 것이 많지요. 나의 할아버지의 일이라면 단칼에 자를 수 없는 끈으로 이어져 있거든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족이란 존재에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 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워도 벗어날 수 없는 애증의 형태죠.”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 무대의 형태를 잡기도 수월해서 좋다며 그는 웃었다.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의 리허설을 지도하는 박근형 연출가.

박해일, 고수희 같은 스타를 탄생시킨 연출가이지만 그가 연극계에 발을 들일 때만해도 그는 철두철미한 플랜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어린시절 그의 장래희망은 시인,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 혹은 막연하게 연극인이었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사회부 기자가 되고자 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 이유가 다소 엉뚱하다.

술 마신 후, 냅킨에 시 한수 써주면 술값을 면제 받을 수 있을 것 같던 시인의 낭만을 동경했고, 지방공연에 갔다가 밥값이 없어 도망쳤다는 기사 속에서 ‘유랑하는’ 연극인들의 자유를 포착했다.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고3시절엔 연출가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연극을 많이 본 것도 아니면서 막연히 연극인이라면 좋겠다 생각한 거죠. 외아들이고 막내로 자라서인지, 외부로 돌아다니는 삶이 내겐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한 극단에 들어간 그는 처음 대본을 읽어본 후 배우가 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포스터를 붙이고 소품을 찾는 것이 더 재밌어 스텝이 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처음 연출을 해본 건, 스무 살 때다. 군대 가기 전 연극 한번 해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극단 친구의 말에 어머니 돈으로 제작을 하고 연출까지 맡았다. 영국작가 해럴드 핀터(1930년~2008년, 부조리극의 대가이자 2005년 노벨상 수상자)의 <생일파티>.

“막상 연출을 해보니 어렵더라고요. 그 이후엔 다시 스텝으로 일했지만 일 년에 100편 이상 봤던 연극은 큰 자산이죠. 희곡을 쓴 것도 연극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어요.”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의 경험은 그의 머리와 가슴을 채웠다.

그의 나이 스물 셋, 극단 76의 기국서 대표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연극인생이 시작되었다.

당시를 그는 ‘사춘기’라 표현했다. “문자중독이 있어서 신문이든 책이든 많이 봤지만 정작 세상의 이치와 사회 속에서 연극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배웠어요.” 사는 것이 연극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우리가 하는 일상의 언어가 곧 희곡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자라났다. 연극은 점점 그의 존재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제가 까뮈(1913년~1960년, 노벨상 수상한 실존주의 작가)를 좋아하는데, 결국 그때 선배들이 한 이야기가 실존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들에게 내가 항상 하는 말도 결국 같은 의미죠. ‘무대 위에서 스스로 존재하라’고.” 그래서 그는 연출가라는 이유로 배우의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지 않는다.

대본이 아닌 시놉시스만 가지고 연습을 시작하는 스타일이라던가, 대본을 연습하면서 쓰다 보니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배우들(대표적인 인물이 <놀라지 마라>에서 여자주인공을 맡은 ‘장영남’이다.)과의 작업을 즐기는 것도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다.

그런 유연성을 즐기는 덕에 연극 속 대사는 허공에 있지 않고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하다. “배우들과 읽어가면서 대사를 더해가고 바꾸고 빼는 작업을 하죠. 대사는 가능하면 살면서 쓰는 말들, 구어체를 쓰려고 해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학적 말투는 버립니다. 희곡이 문학적 태도 가져야 하지만 무대 위에서 그런 말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고 굳이 말이 정확한 것보다 일상적이고 배우에게 편한 말이어야 입에 잘 붙거든요.”

연극 연출을 한지, 20여년이 흘렀다. 일년에 세 네 편씩의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일년에 한 차례씩 ‘뭐든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연극이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으로 인한 무력감이 교차하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꿈꾸지 않는다. 심각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유머감각과 가족을 비롯한 어떤 ‘존재’에 자신만의 현미경을 올려놓는 그는 현재의 모습에 만족한다고 했다.

“딱히 목표나 지향점은 없지만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 살고 있습니다. 연극도 하고 싶을 때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아서죠.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좋겠어요. 가족이란 익숙한 테마를 쓰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사회적 이슈 같은 넓은 이야기도 하게 되지 않을까.” 연극 <놀라지 마라>에 이어 그는 올해 서울연극제에서의 연출, 체홉의 <갈매기> 연출, 시립극단에서의 공연도 올해 준비하고 있다.

현재 연극계를 이끌어 가는 박근형 연출가, 2009년에도 그의 발걸음은 무척 분주하다.

◇ 연극 연출가 박근형은…

1963년생. 극단 골목길 대표이자 연극 연출가 겸 극작가. <침묵의 감시>(1986)로 데뷔. <쥐> <청춘예찬> <대대손손> <물 속에서 숨쉬는 자 하나도 없다> <경숙이 경숙아버지> <돌아온 엄사장> 등 수십 편의 연극을 작,연출했으며, <나부상화> <위대한 캣츠비> 등의 뮤지컬 연출도 맡았다.

1999년 청년예술대상 희곡상, 연극협회 신인 연출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의 문광부 장관상, 평론가협회 작품상 등을 휩쓸었으며 2000년 평론가 협회 올해의 연극, 2006년 대산문학상과 올해의 예술상, 연극평론가협회 선정 베스트3까지 3관 왕을 차지했다.

현재 2008년 한국 신연극 100년 주년을 맞아, 한국 대표 연출가들의 연극 시리즈 프로젝트 <연극연출가 대행진>의 일환으로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를,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