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거 100주기 기념 창작뮤지컬 역사적 뼈대에 상상력 살 붙여제작비 50억 스펙터클한 무대에 '동양평화'까지 녹여낼 터

1997년 뮤지컬 <명성황후>가 처음 뉴욕공연을 하러 가던 해. 협찬사가 없어 ‘돈이 없으면 뗏목이라도 타고 가겠다’고 외치던 ‘뚝심의 사나이’ 윤호진 에이콤 대표는 최근 ‘100주기 전문 연출가’라는 별명을 추가로 얻었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기를 맞던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를 무대에 올렸던 그는, 2009년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거 100주기에 맞춰 뮤지컬 <영웅>을 공연한다.

“제2의 <명성황후>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97년에 뉴욕에 갔으니 내년 8월쯤 <영웅>을 가지고 뉴욕에 가면 13년 만이네요. <영웅>이라면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공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당동 에이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들떠 있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도 <영웅>을 이야기할 때면 화사한 생기가 돌았다. <명성황후>가 10여년 이상, 100만 관객을 훌쩍 넘기는 저력을 과시하자 많은 이들이 그 후속작으로 또 다른 역사인물을 거론하곤 했다. <영웅>도 4-5년 전 안중근 기념사업회 관계자와의 만남이 단초가 됐다.

“2009년이면 안중근 의거 100주기인데, 뮤지컬로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구요. 처음엔 이제 무거운 이야기는 싫다며 거절했었어요. 그런데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15가지 이유 중 첫째가 ‘명성황후 시해’인데, 왜 안되냐고 되묻더군요. <명성황후>와 자연스럽게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그 후속작이 될만하다 싶었습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한 윤 대표는 안중근 기념사업회와는 거리를 둔 채 독자적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념적 영향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법정과 사형집행 사료 외에, 안중근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을 뼈대로 상상력이란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구한 말,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 1902년 고종황제가 일본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만든 기관으로써 국가 정보기관의 효시)가 일본에 발각되어 비밀조직화한 것이 안중근이 이끈 단체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극적 구성을 위해 두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시해를 목격하고 복수를 위해 일본에서 밀사로 활동하는 명성황후가 총애한 궁녀 설희와 안중근을 사랑해 그를 돕고 대신 죽기까지 하는 중국 레지스탕스의 여동생 링링이 그들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어떤 영웅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을 때 안중근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사실만이 부각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 속에는 그가 죽음 전까지 파고들었던 사상, ‘동양평화’까지도 녹여낼 겁니다.”

긴 호흡을 두고 작업을 진행한 덕에 <영웅>은 일반적인 국내 뮤지컬 제작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극본이 1년 전에 이미 완전한 상태로 나온 것이나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하기 전, 한 달간의 무대 리허설을 하는 것이 그러하다. 더욱이 공연을 이끌어갈 스텝 구성에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극작은 연극 <죽도록 달린다> <청춘 18대1>등에서 서재형 연출가와 재능을 선보였던 젊은 작가 한아름이, 뮤지컬 <명성황후>의 무대를 맡았던 무대 미술의 지존 박동우, 세 차례나 바뀐 작곡가가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내가 알고 있는 뮤지컬 구조에 젊은 작가가 보는 역사관이 더해져 극본이 완성됐습니다. 스물 다섯번 만에 오케이 사인이 났어요. 씬 하나에도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아놓고 공간구현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면서 완성됐거든요. 작곡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영국인 작곡가한테도 맡겨봤지만 생각처럼 나오지 않았어요. 중고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오상준에게 맡겨봤는데, 멜로디 라인이 좋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스펙터클’한 무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궁녀 설화가 첩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기차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에 기차가 등장하는데, 그래픽과 마술, 그리고 무대 미술을 활용해 실감나는 무대를 연출하려고 한다.

실제 기차 한 칸도 등장한다. <영웅>이 공연되는 LG아트센터의 무대 특성상, 옆이 아닌 뒤쪽에서, 허공에 뜬 상태로 기차가 나와야 하는 탓에 그와 박동우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총 동원하고 있다.

무대미술과 기술의 총체였던 <명성황후>보다도 진일보한 기술이 적용되는 셈이다. 긴박감 넘치는 추격 장면에는 ‘야마카시’(일명 프리러닝이라고도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프랑스 젊은이들이 장비 없이 맨손으로 건물을 타고 놀던 것에서 유래)도 도입된다.

“8월 초까지 무대 세트와 의상을 완료하고 LG아트센터랑 비슷한 공연장을 잡아서 한달간 시험 운행을 할겁니다. 정말 객석에서 ‘와’ 소리가 나게 해줄 거에요.” 이 같은 무대를 위해 그가 예상하는 제작비는 50억원.

공연 80회가 만석이어야 본전치기다.

<명성황후>는 12억 제작비를 들여 초연에서 제작비를 고스란히 회수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이다. “역사라는 게 모험 없이 이루어질 수 있겠어요. 오랫동안 공연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관객 흥분 시키는 작품 해야 하지 않을까. 경륜이 녹아내린 작품으로 즐겁게 해주고 싶습니다.” ‘공연 좋다’는 평가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눈치다.

70년 극단 실험극장 입단한 그는 39년간 연극과 뮤지컬에 평생을 바친 국내 공연계의 산증인이다.

본격적인 창작뮤지컬의 개막을 알린 것도 그다. 그 사이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1천억원을 넘어섰고 작품, 배우, 관객도 다양하고 풍성해졌다.

단적인 예로 <영웅>에서 진행된 오디션만 보더라도 35명 선발에 600여 명의 배우가 모여들었고 들쭉날쭉하던 기성 배우들의 실력도 상향 평준화됐다. 지난해 경제한파로 뮤지컬시장이 침체되었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뮤지컬협회의 초대 회장이기도 한 윤 대표는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경제 악화로 인한 일시적인 위축은 어쩔 수 없습니다. 올해까지는 작년이랑 비슷하겠지만 내년엔 다시 탄력 받지 않을가 싶어요. 그 사이 뮤지컬 시장도 자연스럽게 정비될 거라고 봅니다.”

2006년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킹>으로 일본의 대표 극단 사계가 국내에 진출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뮤지컬 관계자들은 한국뮤지컬협회를 설립했다.

2000년대 들어 급속히 팽창한 국내 뮤지컬 시장에 구심점이 필요하던 차에 강력한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 극단 사계가 국내 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철수한 이후, 협회는 뮤지컬 전문인력 양성과 뮤지컬 기획,제작사의 권익보호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뮤지컬 전용극장 설립에 대해 정부를 향해 한 목소리를 내고 회원사의 무분별한 수입 뮤지컬이나 라이선스 뮤지컬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야지요. 세트, 조명, 음향 업체와의 가격 합리화와 온라인 티켓판매처의 독점시장이 형성되지 않게 균형을 맞춰갈 예정입니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뮤지컬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건강하게 오래가는 뮤지컬 시장을 위해선 창작뮤지컬만이 남았다.

“왜 이 시대에 이 공연을 봐야 하는지, 어떤 의미를 남기는 지가 중요해졌어요. 뮤지컬 <영웅>은 내게도 중요하지만 창작뮤지컬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작품이 될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역사 속에서 부정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민비’를 재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세대에게 단순히 의로운 애국자로 여겨지는 안중근이 <영웅>을 통해 어떤 깊은 울림을 전해줄지, 2009년 관객들은 주목하고 있다.

◇ 뮤지컬 프로듀서 윤호진은…

현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 한국뮤지컬협회 협회장,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뉴욕대 대학원 공연학 석사 졸업, 연극연출가협회 협회장 역임. 연극 <신의 아그네스> <사의 찬미> <사람의 아들> 뮤지컬 <명성황후> <몽유도원도> <겨울나그네> <페임> 등에서 연출 또는 제작을 맡았다. 동아연극대상(1978, 1981), 대한민국 연극제(1983),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1996), MBC 이달의 예술가상(1996), 허규 예술상(2007), 한국뮤지컬대상 프로듀서상(2008) 등을 수상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