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다방 기리는 '다방전', 음악회, 다양한 전시·공연 등 개최

“100년 역사가 넘는 커피를 어떻게 왜색문화라고 할 수 있나. 이제는 우리 것으로 소화해 성숙시켜야 한다”

커피박물관이자 레스토랑인 <왈츠 앤 닥터만>을 운영하는 박종만(49) 씨의 말이다. 20여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커피에 빠져 살며 지금은 한국 최초로 대규모 커피작황을 꿈꾸고 있는 그를 13일 경기 남양주시 커피박물관에서 만났다.

중세유럽의 성채를 연상시키는 북한강변의 커피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나이보다 어려보였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얼굴, 갈색의 사파리 점퍼 차림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박 관장은 인터뷰 사진을 찍는 내내 커피잔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커피의 원산지와 유통경로를 따라 탐험을 떠났으며, 비닐하우스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며 우라나라에서 작황을 꿈꾸는 ‘커피 마니아’의 대부다.

“커피는 늘 음악, 미술과 똑같이 움직여온 문화 그 자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 "커피가 없다고 상상해 본 적 있나"

“사람 사이에 커피가 없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라는 박 관장의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유럽의 십자군 전쟁 이전, 만남에서 독주를 즐겼던 사람들은 결국 싸움으로 자리를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며 “커피가 아프리카, 아라비아에서 전세계로 퍼진 이후에야 토론과 친교의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 관장이 사라지는 다방문화를 아쉬워하는 이유다. 박 관장은 ‘퇴폐’의 선입견을 안고 있는 다방은 우리사회에서 ‘문화의 메카’로 기능 한 측면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7세기 이후의 토론문화에 커피하우스가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며 “커피하우스가 없었다면 데카르트의 변증법, 몽테스키외의 자유주의 사상이 나올 수 있었겠나”라고 반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통찰은 의미가 있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들어온 한국 최초의 커피하우스 <진고개>는 지식인들과 벼슬아치들의 토론과 문화의 공간으로 출발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50년대의 다방은 예술가, 문학가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박 관장은 “다방 깨나 다니는 사람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70, 80년대에도 다방은 경제력 뿐 아니라 낭만, 문화를 의미했다”고 말한다.

박 관장은 “김환기 미술가는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다 그린 초상그림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며 “다방에서 시를 지은 작가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 다방은 생활 속 문화예술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술전, 시화전, 사진전, 시낭송회 공간으로 기능 한 것도 사실이다.

1- 경기 남양주시 '왈츠 앤 닥터만' 커피박물관에서 원두커피 내리기를 시연하고 있다. 신선한 원두는 물을 부으면 부풀어 오른다.
2- '왈츠 앤 닥터만' 커피박물관 전경

■ 아름다운 커피문화 지켜지지 않아 아쉬워

박 관장은 이런 문화공간으로서 전통 다방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 한다. 그는 전국의 다방을 순례한 뒤 지난해 10월께 ‘다방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올해도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그는 “50년 이상된 다방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안타깝다”며 “커피를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말한다. 커피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땅콩 종류인 헤이즐넛에 커피향료를 더한 ‘헤이즐넛 커피’가 유행하는 아이러니는 이런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박 관장은 기록문화의 부재가 커피문화의 성숙에 걸림돌이 되는 것 역시 안타까워했다.

박 관장이 2006년 문을 연 커피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커피관련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을 때 고종황제가 쓰던 커피용 은수저 외에는 거의 보존돼 있는 것도, 기록도 없었다. “오래된 다방에 가봐도 예전에 쓰던 커피잔, 수저 하나 구하기가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서적 번역본 때문에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1896년 아관파천 때로 알려졌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 커피에 빠져든 그 순간

“이렇게까지 커피에 빠지게 될 줄은 나 자신도 몰랐다”는 게 박 관장의 말이다. 남들과 똑같이 커피를 즐기던 인테리어 사업가였던 그에게 커피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박 관장은 1989년 일본 출장 길에 커피 공장에 우연히 들렀다가 커피에 빠져든다. 그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과 커피가 볶아지는 소리,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왔다”며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을 처음 보자마자 빠져들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커피사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관장이 일본에서 원두를 들여와 시작한 ‘왈츠’ 커피점은 한때 70여개의 체인점을 거느리는 대형 커피체인 상표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자취를 감췄다. 그는 ‘왈츠’라는 옛 이름에 커피 박사라는 뜻의 ‘닥터’, 자신의 이름 끝자인 ‘만’을 따서 지난 2006년 지금의 자리에 <왈츠 앤 닥터만>을 만들기에 이른다.

‘당신에게 커피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나에게 커피는 아주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라고 답한다.

■ 커피문화 제대로 알리고, 커피 국내서 재배할 것

“기왕에 우리 몸의 일부가 된 이상, 우리 문화로 인정하고 발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게 현명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의 바람과 현실은 정확히 반대다.

우리나라는 커피시장의 절대다수를 원두커피가 아닌 인스턴트 커피가 차지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전통다방이 대형 체인 커피하우스와 공존하는 문화 역시 없다. 다양성이 핵심인 커피 원래의 정신에서 비껴가 있는 것이다.

커피박물관에서 시연하는 신선한 커피원두는 물을 부으면 크게 부풀어오른다. 반면, 대부분의 커피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인스턴트 커피는 물을 부어 내리면 오히려 사그라진다. 한국의 왜곡된 커피문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는 매주 금요일 저녁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성악가 등의 음악가를 박물관에 초청해 작은음악회를 열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아랍 지역의 커피 원산지와 커피의 전파경로를 따라 ‘커피로드’를 순례했다. 올해도 유럽지역으로 커피 순례를 떠날 계획이다. 그는 여행기를 <커피기행>(효형출판 刊)이란 책으로 묶어 내놨다.

그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호텔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원예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대규모 커피재배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 박 관장은 “2050년에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는 전망이 있는만큼 나의 노력은 꿈이 아닐 것”이라고 말하며 너스레를 떤다.

박 관장의 커피예찬론은 커피박물관에서 시연하는 원두커피만큼이나 뜨겁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