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발레단으로 놀러오세요"스타 발레리나서 경영자 변신… 조용한 리더십으로 발레 대중화 앞장

세상 사람들은 비교하기를 참 좋아한다. 누가 더 아름다운가, 누가 더 천재인가, 혹은 누가 더 위대한 예술가인가. 같은 세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세인의 입방아에 오를 각오(?)가 필요하다.

무용계에서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창단 이후 스타 발레리나로서, 경영자로서 발레의 대중화를 춤추고 말해온 그의 행보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뛰고 있는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과 곧잘 비교되곤 한다. 두 발레단의 차이라면 국립발레단엔 단장보다 더 유명해진 스타 무용수들이 많고, 유니버설발레단의 최고 스타는 여전히 문훈숙 단장이라는 점. 그래서 문 단장은 올해 유니버설발레단 창립 25주년을 맞아,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 곁으로 다가가며 '국민 발레단'으로의 부상에 욕심을 내고 있다.

문훈숙 단장은… 미국 워싱턴DC 출생. 선화예술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후 영국 로열발레학교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서 수학.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설립되면서 수석무용수로 <심청>, <신데렐라>, <라 바야데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등 650여 회 국내외 공연에서 주역을 맡았다. 지젤 역으로 키로프발레단 무대에 선 최초의 동양 발레리나. 이후 유니버설발레단 단장(1995), 유니버설문화센터 이사장(2004) 취임. 2001년 발 부상으로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이후에는 경영과 단원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문훈숙 단장은…
미국 워싱턴DC 출생. 선화예술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후 영국 로열발레학교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에서 수학.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설립되면서 수석무용수로 <심청>, <신데렐라>, <라 바야데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등 650여 회 국내외 공연에서 주역을 맡았다.
지젤 역으로 키로프발레단 무대에 선 최초의 동양 발레리나. 이후 유니버설발레단 단장(1995), 유니버설문화센터 이사장(2004) 취임.
2001년 발 부상으로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된 이후에는 경영과 단원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100여 회 릴레이 공연으로 국민 발레단 욕심

한국 최초의 민간 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은 올해 창단 25주년을 기념해 어느 해보다도 큰 작품들로만 한해 일정을 짰다. 3막짜리 <돈키호테>를 시작으로, 140명이 출연하는 대작 <라 바야데르>가 뒤를 잇는다. 창작 발레 <춘향>은 여름을 책임지고, 처음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오네긴>을 들여와 발레 팬에게 선을 보이게 된다. 물론, 유니버설발레단 하면 떠오르는 성탄 선물 <호두까기 인형>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올해 공연 횟수는 정기 공연 38회와 순회 공연 28회, 그리고 그리스 아테네에서 펼칠 <호두까기 인형> 등 무려 총 103차례. 유니버설발레단 사상 가장 많은 횟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문 단장의 대답은 태연하다. "적어도 이 정도 규모의 발레단이라면 100회 정도는 거뜬히 해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올해 우리 목표는 이 계획을 달성하는 거에요."

공연 리스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라 바야데르>와 <오네긴>. 인도 무희의 슬픈 사랑을 그린 <라 바야데르>는 여느 발레보다 2배나 많은 무용수들이 등장하는 대작이다. 인원수뿐만 아니라 화려한 궁전을 배경으로 대형 코끼리까지 무대에 등장해 객석과 관객들을 사로잡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 단장이 보다 신경을 쓰는 작품은 창작 발레 <춘향>과 국내 발레단으로서는 처음 선보이게 되는 <오네긴> 쪽이다. "창작 발레는 계속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완성하는 작품이어서 더 어려워요. 지난해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창작 발레 <홍등>도 10년을 계속 고쳐온 작품이라고 하잖아요. <춘향>이 보다 완성도를 가지려면 동양의 콘텐츠를 서양의 춤 형식 안에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관건이 될 거에요."

<오네긴>은 2004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내한공연에서 강수진이 주인공 타티아나로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 문 단장은 "개인적으로도 춤 춰보고 싶은 역이었기 때문에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하고 웃으면서도 "이미 완성되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 원형을 우리 무용수들이 어떻게 새롭게 표현하고 전달하는가가 관건"이라고 진지하게 설명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또 국내 예술단체로는 처음으로 '시즌 티켓' 제도를 도입했다. B석은 1만원으로 낮춰져 '만 원의 행복'도 가능하게 됐다. 문 단장은 "경제가 어려워진 탓에 공연도 줄어들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좋은 공연을 많이 보여드려 우리 발레단도 국민 여동생, 국민 배우처럼 국민 발레단이 되려고 합니다. 아니, 되고 싶어요."

'나를 따르라'보다는 말없이 조용히, 문훈숙 리더십

부상으로 발레리나 생활을 접은 것이 벌써 8년이 지났지만 문 단장은 이야기할 때면 발레리나처럼 이야기한다. '발레리나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은 비단 언어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대답에 앞서 생각에 잠길 땐 '생각 중'이라는 연기를 하는 듯한 표정이 나타난다.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땐 눈빛에 생기가 가득하다. 가끔 말로는 잘 표현이 안 될 때는 앉아 있으면서도 손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몸으로' 설명을 보충한다. 이렇듯 천상 발레리나인 그가 발레를 그만두고 경영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는 막막했을 법도 하다.

"이 자리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아버지(박보희 전 한국문화재단 이사장)는 카리스마가 넘치고, 말씀도 잘 하고, 비전도 큰 분이었거든요. 반면 나는 말하는 것도 싫어하고, 나서기도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처음엔 과연 직원들이 나를 따라올까 하는 의구심도 부담도 있었어요." 결국 문 단장이 3년쯤 지나서 깨달은 건 아버지를 따라가려 하기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저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You do it your way! 저처럼 조용한 사람은 저 나름대로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다는 거죠." 그렇게 문훈숙 단장의 조용한 리더십(Quiet Leadership)은 시작됐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문 단장이 수직적이고 귄위적인 경영보다는 수평적이고 친구 같은 관계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단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것도 단장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깨는 모습을 직원과 무용수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도 먼저 걸고 개인적으로 이메일도 보냈다. "단장과 단원의 관계는 명령하고 그에 따르는 구조라기보다 그냥 맡은 역할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인간 대 인간이잖아요. 발레단장의 역할은 모든 무용수들이 더 좋은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지원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석무용수와 단장을 겸임하며 발레단의 경영을 시작한 것이 벌써 15년. 비록 발레와 경영이 둘 다 어렵다고 하는 그지만, 예전의 발레리나로서의 고충을 오랫동안 토로할 때는 여전히 발레가 어렵다는 속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제가 은퇴할 때 주위에서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어요. '발레 이후에는 모든 게 쉽다'고. 은퇴하면서 좋았던 게 무대에 오를 때의 그 긴장감을 더 이상 안 겪어도 된다는 해방감이었어요. 물론 음악을 들으면 지금도 무대에 오르고 싶지만, 후배들이 무대 뒤에서 긴장하고 있는 걸 보면 '저 애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에요(웃음)."

경영자로 변신하며 발레에서 은퇴한 후에야 '왜 즐기면서 안 했을까'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래서 문 단장은 후배들에게 자신처럼 자학하면서 발레를 하기보다는 자신을 칭찬하면서 발레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의 움직임의 균형과 다른 무용수들과의 조화 속에서 찰나의 예술성을 발견하며 찬사를 받았던 최고 발레리나는 그동안 경영자로서도 자신의 특기인 균형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모든 예술단체장들의 고민인 예술성과 대중성의 조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이 문제를, 문훈숙 단장은 두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한다. "가장 대중적인 게 예술적인 것이고, 가장 예술적인 게 대중적인 것이에요. 발레를 알던 모르던 작품의 수준이 높지 않으면 사람들은 실망하고 그걸로 발레는 끝이거든요. 그 반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저절로 대중화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예술성이에요. 예술적 수준이 높아지면 대중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