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백남준에 헌정 '멀티플 다이얼로그∞전' 시공 초월 예술 혼 느껴져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작고한 지 어는덧 3년이 흘렀다. 하지만 생전에 뜨겁게 타올랐던 그의 예술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쉬며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자극한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 중인 설치작가 강익중(49)에게 있어서 백남준의 존재는 남다르다. 그에게 백남준은 예술적 조언자이자 인생의 멘토와도 같았다.

강익중 작가는 지난 1월 29일 3주기를 맞은 백남준 화백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그와의 미학적 대화를 시도했다. 백남준 화백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18m 높이의 탑 모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한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을 강익중 작가가 램프코어 나선형 벽면(총길이 200m)작 '삼라만상'으로 감싸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가로 세로 3인치 크기의 작품 6만 여 점이 벽면을 구성하게 됩니다. 오브제를 비롯해 영상, 음향, 미디어 설치 작업 등이 포함될 예정이에요. 한국의 3층 석탑을 모티브로 한 '다다익선'과 5층 높이의 미술관 내벽을 채우게 될 '삼라만상'을 통해 산과 바람, 물과 새소리가 어우러진 우리 강산을 재연할 겁니다."

'멀티플 다이얼로그∞'라는 주제로 1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1980년대 초반 캔버스 작업에서부터 문자 그림, 부처 그림, 목각 작업, 최근의 달항아리 연작과 영상·음향작품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고 있다.

더불어 1994년 미국의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2인전 형식으로 가진 '멀티플/다이얼로그'의 후속으로 백남준에게 헌정하는 오마주 전시의 의미도 깃들어 있다.

"1994년 당시 백남준 선생님은 미술관 제의로 저와 2인전을 열면서 본인보다도 제가 더 좋은 공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이후로 저를 볼 때마다 언제 한번 한국에서도 함께 전시를 하자고 말하곤 하셨죠. 그만큼 후배 작가들을 포용하는 마음이 남다르셨습니다."

이번 전시로 두 사람의 재회가 15년 만에 고국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이제는 중진 작가로 자리매김한 강익중은 백남준에 대한 존경을 담아 특유의 3인치 크기 정사각형 나무판 그림이 중심이 되는 자신의 작품 6만 여 점으로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나선형으로 휘감는 계단 벽면 설치작업을 마쳤다.

강익중의 설치물은 가난한 유학생 시절 매일 그림일기를 썼던 것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직접 고안해낸 3인치 작품이 대부분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관객의 얼굴을 찍어 보여주는 디지털 화면, 새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 대야로 만든 둥근 달, LED로 표현된 폭포수 등 작지만 다양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강익중 작가는 이번 작업에 대해 "선생님(백남준)이 이런 전시를 염두에 두고 한국에서 전시를 함께 하자고 한 것 같다"며 "평소에 작가는 산을 오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백남준'이라는 산을 오르는 듯 배우는 마음으로 설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백남준의 '다다익선'탑을 가리키면서 마치 산 정상에 오른 듯한 느낌이다"고 밝혔다.

"아마도 선생께서 미래로 나아가는 로켓을 만드신 것 같아요. 특히 '다다익선'은 생전에 선생님이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후배로서 저는 그 분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점화대에 불을 긋는 작업을 하고자 했어요. 선생께서 추구하신 미래는 굉장히 멀리 내다본 미래 였죠. 같은 작가로서 질투가 날 정도 였답니다."

그는 자신의 기억에 남는 백남준에 대해 회상하며 30세기 먼 미래를 얘기했던 분이고, 낮에도 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생전에 그가 바라봤던 미래를 뒤따라 가고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1984년 전세계에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선생께서 '예술은 사기다'는 폭탄선언으로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암호처럼 숨은 뜻이 담겨 있었죠. 당시 선생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푹 빠져계셨거든요. "사기를 읽느라 15년을 보냈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하신 맨트를 보면 사기가 속임수가 아닌 역사서를 의미했던 거에요."

결과적으로 '예술은 사기다'고 했던 백남준 화백의 말은 평소에도 중의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하던 그의 '우주적 농담'과도 같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우스갯소리같이 던진 그의 농담 속에는 한 시대 예술계를 향한 따끔한 일침이 더해져 있었던 것이다.

강익중 작가는 '현대 미술은 미래 시제를 현재로 옮겨오는 것이고, 현대 미술 작가는 전통과 첨단을 양끝에 매단 장대를 타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백남준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충돌을 이민 작가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한국 문화와 스스로의 예술세계 특징을 '비빔밥'으로 비유했다.

"백남준 선생님은 다양한 재료들이 한 데 섞여 어우러지는 비빔밥을 자주 언급하셨어요. 이번 전시 역시 선생님의 작품과 제 작품이 계속되는 대화를 통해 한국의 자연과 정신을 만나게 하는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백남준 화백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을 명령이나 가르치듯이 제시하기보다는 관객 스스로의 참여와 소통을 지향했다.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두 작가의 대화에 함께하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원불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