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청소년 위해 쓴 단편 엮어 책으로… 대중소설 인터넷 연재도

그를 생각하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부터 떠오른다. 작품 속 인물들이 구사하는 사투리는 짠한 감동과 함께 질긴 생명력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그의 소설에서 '야물딱진' 서울내기가 발붙일 곳은 없다.

"여보시요? 예, 맞는데요. 그란디 제가 지금 영화를 보고 있어요잉. 내일 오전에 다시 연락하시겠습니까?"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영화관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은 그는 공선옥 작가다. 최근 단편집 '나는 죽지 않겠다'를 내고 문학동네 인터넷 사이트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연재 중인 그는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한 모양이었다.

"다다음주에 서울 가는데 그때 만나지요."

춘천에 사는 작가를 기다리는 2주 동안 그의 신간을 읽었고 매일 업데이트 되는 그의 연재물을 봤다. 연재물 끝에 달린 독자들의 댓글에는 칭찬이 가득했다. 작품 안과 밖, 작가의 주변에는 착한 사람들만 넘쳐나는 듯 보였다.

좌충우돌하는 아이들 이야기

"나는 카푸치노."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난 공선옥은 카푸치노를 시켰다.

"고속도로에서 누가 카푸치노를 시켜서 따라 먹어 봤더니 달콤하니 맛나더라고요. 근데 카푸치노는 뭐고 라떼는 뭐에요?"

"에스프레소 원액에 우유 부우면 라떼고, 우유 거품 얹으면 카푸치노에요."

"으메, 인자 확실히 알았네. 전에 에스프레소가 뭔지 모르고 넘이 시키길래 시켰다가 속 쓰려 혼났네."

'목 좀 축일' 음료를 시키고 신간에 대해 물어보았다.

신간 '나는 죽지 않겠다'는 지난 5년간 그가 청소년을 위해 쓴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표제작 '나는 죽지 않겠다'는 급우들이 모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맡았다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에게 내준 여고생의 이야기다.

'일가'에서는 연변에서 온 친척 어른이 한 집에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울 엄마 딸'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자신을 낳았던 엄마를 미혼모가 될 처지가 되자 이해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모두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홀로 의연하고 굉장히 귀한' 아이들이다.

"누가 그래요, 어두운 현실에 있는 아이들을 그렸다고. 어허, 정말 (소설 속)이 애들이 어두운가? 지금 우리나라가 교육광신도잖아요. 사회전체가 병들었어요. 이건 교육이란 이름에 영혼 학살극이랄까요. 애들이 불쌍해. 물론 소설 주인공 같은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아이들이 오히려 건강해 보인다고. 좌충우돌하고 갈등도 하는."

작가는 "이 소설 읽고 '공부 안 해도 인생을 배울 데가 많구나' 알았으면 하는 생각에 공부하는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를 뛰는 고교생 민수 이야기는 '라면은 멋있다'와 '힘센 봉숭아' 두 편의 연작으로 실렸다. 민수는 여자친구 선물을 사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후에도 용돈을 벌기 위해 떡볶이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민수를 쓰기 위해 작가는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자주 찾았다고.

"여러 날 살았죠. 떡볶이 많이 사먹었지. 애들 얘기도 듣고. 아이들이 돈 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욕을 먹고 있어요. 근데 거기 오신 손님 중에 어떤 할아버지가 일하는 애들한테 '야 이놈아, 이러지 말고 집에 가서 공부해'라고 하데요. 노동을 천시하는 거죠. 난 그런 어른들도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어."

타인의 슬픔을 위한 문학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언제나 작고 소외된 자들이다. 이번 소설 속 아이들도 돈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다. 요구르트 아줌마 딸은 돈 때문에 죽을 생각을 하고, 민수는 돈이 없어 여자친구에게 퇴짜를 맞는다. 작가에게 가난은 인간사를 드러내는 열쇳구멍인 듯하다. 왜, 그는 춥고 배고픈 이야기만 하는 걸까?

"인간사에서 말해지는 모든 행복, 위로는 가짜라고 생각해요. 진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통을 말해줘야 한다고. 진정한 위로는 눈물이에요. 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거죠. 저는 근본적으로 내 눈물이 다른 사람의 눈물과 교감을 나누고 싶은 거예요. 타인의 슬픔에 관한 거죠."

'타인을 위한 눈물'은 공선옥 작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 사람들의 굴절된 삶과 그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을 그리는 작가는 언제나 대중적 평가보다 문학적 평가가 더 후한 점수를 받았다. 아마, 이번 작품집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는 "사기꾼에게도 애정을 갖는 게 작가"란 말을 했다. 작가의 글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흔들고 나아가게 할 힘을 가지려면, 우선 타인을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작품의 구조와 묘사와 문체를 묻는 기자에게 그는 "예술은 품성에서 나온다. 큰 틀에서 글 재주는 지엽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아 여보시요? 네, 홍대 도착하면 연락하세요."

인터뷰가 끝나면 작가의 팬들과 술을 마시기로 약속이 된 터였다. 연재 중인 문학동네 사이트에서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지금의 40대가 1980년대 청춘을 회상하면서 그린 연애담이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공선옥 식의 대중소설'인 셈이다.

"가끔 나도 들어가서 댓글 남기는데, 난 매~ 좋은 말만 달아있데. 좀 신랄하게 까고, 들이대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실내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겼다. 2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만나면 사람의 사귐이 이뤄지잖아요. 그래서 작가의 삶이란 것은 읽기와 쓰기와 사람을 만나는 게 함께 가요. 특별히 뭐라 할 건 없어요. 그냥 삶이죠."

오랜 세월 그가 글을 쓰도록 만든 힘은 사람일 터다. 그 무한 애정이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을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