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다른 구조 뇌검사 통해 사이코패스 진단, 거짓말 탐지 등 활용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행복(또는 불행)한가?", "나는 왜 그(그녀)를 사랑하는가?"

뇌 연구가 이처럼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까지 찾고 있다.

'2009 세계 뇌(腦) 주간(3월14일~21일)'을 맞아 '퇴행성 뇌질환의 예방과 치료', '뇌와 예술', '뇌와 마음' 등 뇌과학의 동향이 일반인들에게 소개됐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이슈는 '뇌로 마음읽기'였다.

이춘길 한국 뇌학회 회장(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으로부터 '뇌와 마음' 연구의 현주소는 어디이며, 풀어가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들어본다.

뇌 과학 인간성의 비밀 풀어

"국내에서 98년 '뇌연구 촉진법'이 제정된 이래 전문가들이 본격적으로 뇌 연구를 하게 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실로 비약적인 연구 발전이 이뤄졌지요."

심리학자인 이 회장은 그 중에서도 '신경측정' 기술의 발달로 마음의 현상과 이를 일으키는 과정을 추론할 수 있게 된 것을 뇌 연구의 가장 큰 성과로 꼽는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ET), 자기공명영상(fMRI), 뇌파(EEG) 같은 최첨단 뇌영상 기술은 뇌의 구조는 물론, 특정 음악을 들을 때 편안한 느낌이 든다든가 하는 마음의 작용기전까지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줬다.

"뇌에 대한 이해가 적었을 때는 행동을 관찰하거나 인터뷰에 의존해 그 사람의 마음을 분석했는데, 이제 보다 정확한 이해가 가능해진 거죠. 예를 들면, 사이코패스를 진단할 때도 예전엔 행동이나 언어 패턴을 분석하는데 그쳤다면 이제 뇌의 구조를 가지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사이코패스의 뇌를 보면 정상인보다 전체적으로 부피가 작고, 충동을 억제하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전두엽이 축소돼 있어요."

뇌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뇌 검사는 이제 사이코패스를 포함해 각종 정신질환을 진단하거나 성폭행범 등 범죄자를 가려내는데도 활용되고 있다. 이 회장은 성폭행범이나 과도한 욕심을 가진 사람, 바람둥이, 주의력결핍증 환자 등의 뇌는 일반인들과 다른 구조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리보다 뇌 연구가 앞서 있는 미국에선 기능적 뇌영상을 이용해 법정에서 범죄인의 거짓말 탐지가 법적인 효력을 가진 증거로 채택된 사례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와 진실을 말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와 활동 패턴이 다르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지요. 호흡과 맥박, 피부 전도율을 측정하는 전통적인 거짓말 탐지기의 정확도가 60% 정도인데 비해, fMRI를 이용한 거짓말 탐지의 정확도는 80~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뇌를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다. 광고효과나 브랜드 인지도 등 소비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뇌파를 이용한 집중력 훈련 게임이 개발되는 등 게임산업에서도 뇌를 이용해 상품을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회장은 "뇌를 활용한 마케팅이나 상품 대상은 너무나 광범위 하다"며 "인터넷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시장을 지배하듯, 가까운 미래에는 뇌 산업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상에 똑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듯이, 뇌의 주름과 크기, 구조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 달라요. 개인의 특성은 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말이니, 결국 인간성의 비밀은 뇌가 쥐고 있는 셈이죠."

뇌 연구가 풀어야 할 윤리, 사회적 숙제들

인간의 행위와 감정을 결정하는 뇌. 그렇다면 뇌는 유전과 환경 중 어느 쪽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까?

이 회장은 현재 뇌 과학은 이 물음에 대해 확답할 수 있을 만한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다만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유전적인 바탕에 좀더 많은 비중을 두는 편"이라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래서 뇌 과학을 알면 알수록 마음 한구석 불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또, 모든 정신 현상이 단지 '뇌'라는 물리적인 매커니즘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용지물인가.

이때 행위의 법적 책임은 어디에 귀결시켜야 하는가. 선천적으로 뇌가 이상해 상습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행위의 책임은 어디까지 물어야 할까.

그래서 뇌 연구는 과학적인 발전 못지 않게 윤리, 사회 그리고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 회장도 "뇌 과학은 다른 과학의 연구성과와 다른 차원의 영향력을 가진다"는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실제 미국 법정에 선 성범죄자가 "내 뇌가 저지른 범죄이지 내 의지가 저지른 게 아니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뇌 검사에서 충동을 억제하는 뇌의 기능이 심각하게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법원은 범인의 비정상적인 뇌가 행위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고려할 수는 있으나 그 행위가 사회유지에 반할 때는 책임을 면치 못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뇌 과학기술의 발달이 법적인 책임을 적용하는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소지가 많다는 시사점을 던져 주었죠."

신경 약물을 이용해 정서 상태와 인지 기능을 개선시킬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메칠페니데이트와 암페타민 등 실행기능이나 기억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이용하면 인지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메칠페니데이트는 교육열이 높은 서울 강남권 지역 병원에서 아이들의 학습효과 향상을 목적으로 처방하는 사례가 보도되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지게 됐다.

이때 학생의 노력과 의지가 아닌 약물의 도움을 받아 학습효과를 높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 일일까.

또, 뇌 전문가들은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를 이용해 인지기능이나 정서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경외과 수술을 통해 특정 뇌 영역을 선택적으로 절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신경공학 기술에 대한 접근 기회의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로가 될 수 있지요. 집중력 향상을 위한 약물 등 치료 목적이 아닌 신경공학 기술은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이 크고요. 그렇게 되면 경제적 취약 계층은 불리한 경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