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재즈와 사물놀이의 긴밀한 밀고 당김 2년 만에 단독 콘서트

‘몰아의 경지’. 지난 수요일(4월 8일) 밤 10시, 영등포에 위치한 연습실에서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보여준 사물놀이 광경을 다른 말로 설명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하모니카 대신 장구채를 잡고 장구를 몸 앞으로 바짝 끌어당긴 그는 하모니카를 연주하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7년 만에 잡았다는 장구채는 금세 그의 몸이 되어 리듬을 찾아갔다. 잠시 엇나가던 꽹과리, 북, 징과의 호흡은 자진모리와 휘모리 장단으로 몰아치며 일체를 이루었다. 4월 1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전제덕의 단독 콘서트를 위한 리허설 현장.

서로의 거친 호흡이 하나로 다듬어진 순간, 깊숙한 홀 안으로 빠져든 듯했다. 다시금 거친 숨결이 서로의 틈을 찾아가며 완만해진 순간, 또 다시 보다 더 깊숙한 홀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물놀이를 본다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뜨거운 두드림 속에 홀로 잠겨 있었다. 연습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공연 스텝들과 전제덕 재즈 밴드의 멤버들은 소리에 함몰된 그 순간을 공유했다.

하모니카 연주자가 되기 전, 전제덕은 사물놀이의 ‘장구잡이’였다. 1993년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한마당’ 에서 대상을 받고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 ‘천둥’에서 활동한 실력자였다는 사실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두 곡을 위해 하모니카 대신 장구채를 쥐었다.

“사물놀이나 판소리는 힘이 있어야 해요. 전 그런 음악이 좋아요. 재즈 피아니스트 중에도 오스카 피터슨처럼 파워풀 하면서도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들려주는 연주자를 좋아하죠. 사물놀이는 그 자체로 힘이 넘쳐요. 명인의 연주를 들으면 소리가 통통 튀면서도 가벼워요. 힘이 들어 어쩔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갖고 노는 듯한 느낌? 몇 장단만 쳐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과거에 함께 사물놀이를 했던 10년 지기 친구는 징잡이로 나섰다. 5분간을 ‘몰아의 경지’로 이끈 사물놀이 패는 이어 전제덕의 2집 앨범에 수록된 ‘Over the Top’을 밴드와 함께 연주했다. 재즈와 사물놀이가 긴밀하게 밀고 당기면서 증폭되고 소멸되는 연주 속에서 사념이 존재할 틈은 없었다.

“사물놀이를 하던 시절에 가끔 재즈 밴드와 협연을 했어요. 서양음악에 대해 잘 몰랐던 때라 그 과정에서 재즈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었죠.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네요.”

악기만 바꾸었을 뿐 탄력적인 리듬감과 힘을 담아내는 그가 다시금 하모니카를 꺼내들었다. 5년 전, 한 뼘 크기의 ‘청승맞은’ 악기에 펑키와 그루브한 리듬이란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연주가 시작되었다.

팝과 라틴, 재즈를 넘나드는 음악에 화려한 테크닉과 풍부한 감수성을 담아내며 세상을 놀라게 한 1집, 세련된 감각으로 펑크와 소울을 녹여낸 2집, 그리고 지난해 말 선보인 80년대 가요 히트 곡을 리메이크한 3집 앨범까지 그는 세 장의 앨범을 내놓았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3집은 그동안 그가 보여준 음악세계로 볼 때 다소 의외의 행보였기에 팬들 사이에서도 평이 엇갈렸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팬 층이 생겨나기도 했다.

“예전에 모 방송국에서 제 인생을 드라마로 만들자는 제의를 해왔어요. 드라마 하려면 배경음악이 필요하니, 내가 들었던 80년대 음악을 모아서 음반으로도 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3개월간 긴 인터뷰를 하면서 대본을 만들고 배우까지 캐스팅되었지만 드라마는 제작 도중에 무산되고 말았다. 허탈했지만 그래도 앨범만은 그에게 남았다. 하모니카 연주에 어울릴만한 곡들을 80년대 히트곡 중에서 길어 올렸고 그렇게 찾아낸 곡-광화문 연가, 행진, 가시나무, 우울한 편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한국사람 등-이 추려졌다.

리메이크의 방식엔 기존 곡을 완전히 재해석하거나 기존의 틀을 허물지 않은 채 약간의 편곡을 하는 방식이 있는데, 그는 양쪽에서 절반씩을 취했다.

“이번 앨범에서 사실 힘을 뺐어요. 우리나라 가요에는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한 곡이 별로 없어요. 대부분 사랑의 쓸쓸함, 이별, 고독 같은 것을 노래하죠. 이게 한국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약간의 패배주의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음반을 다 만들고 보니, 조금 아쉬운 게 사실이에요.”

2년 만에 열린 단독 공연에서 그는 뮤지션 전제덕과 인간 전제덕으로 관객과 소통했던 날이다. 세상에 태어나 시력을 잃고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 고통을 잊기 위해 사물놀이에 몰두했던 나날들, 투츠 틸레망의 연주를 듣고 입술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하모니카를 불었던 과정, 긴 세월 그의 눈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 그의 분신이 되어주고 있는 아내와 아들까지. 그의 음악과 삶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였다. 공연장에는 연주에 대한 감탄과 웃음과 숙연함이 공존했다.

그가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은 1집의 ‘바람’. 너비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바람 속에서 한없는 자유를 만끽하는 하모니카의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 어쩌면 그것이 하모니카 마스터, 전제덕이 찾아가는 음악 세계일 거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