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환 변호사전근대적 관계설정 국가 개입 없는 한 한류 원동력 발전 요원

“등록제와 보수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연예매니지먼트사업법안’ 외에도 발전속도에 걸맞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관련법 정비가 필요한 분야는 부지기수다.”

최정환(46) 한국엔터테인먼트 법학회 회장(법무법인 두우 청담사무소 대표변호사)의 말이다. 최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최문순 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 한 연예매니지먼트사업 법안을 기초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최 변호사는 1990년대 초반 최진실, 엄정화 등을 발굴한 배병수 씨에 대한 법률자문을 시작으로 1993년 고 최진실 씨 고문변호사를 역임했으며 백지영 비디오 사건, 주병진 성폭행 혐의 사건, 싸이 병역비리 사건을 수임하는 등 연예관련 분쟁을 도맡아 온 전문변호사다.

8일 오전 서울 신사동 법률사무소에서 최 변호사를 만나 장자연 사건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연예매니지먼트 사업 관련 법적 보완, 연예문화산업 전반의 법제도의 문제와 대안에 관해 물었다.

최 변호사는 “연예매니지먼트법은 연예인 보호뿐 아니라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연예산업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우리 문화산업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대한 법,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요약했다.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 사이의 전근대적인 관계설정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한 ‘한류(韓流)’의 원동력인 연예산업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게 최 변호사의 생각이다.

실제로 우리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업자의 관계는 ‘정(情)’과 ‘의리’에만 의존하는 주먹구구식일 뿐 아니라 양자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형태였다.

연예인들은 표준계약서 등을 통한 법적 관리가 전무해 ‘1대 9’에까지 이르는 ‘노예계약’에 시달린다며 울상이다. 매니지먼트사들은 수년 동안 소속 연예인에 엄청난 액수를 투자하지만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소수이며 성공한 이들은 위약금을 치르고도 남을 만큼의 계약금을 받고 이적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을 호소한다.

최 변호사는 “장기적으로 인력 소개소 역할을 하는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사를 분리해 부당계약의 여지를 없애는 게 좋다”면서도 “현재로서는 계약기간이 길어지고 위약금이 높을 수밖에 없는 연예산업 구조를 고려해 50%정도로 최소의 관리를 하는 선에서 법적규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영화ㆍ드라마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관련 법 필요”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 사이의 후진적 계약은 연예산업 자체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 변호사는 ‘내부계약’에 의한 영화ㆍ드라마 제작 관행을 사례로 꼽았다. 전속료가 10억원이 넘기도하는‘스타’를 보유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들은 소속 연예인을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의 작품에 출연시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연예인은 모험적인, 혹은 창조적인 외부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외부제작사도 엄청난 소속사 지급 계약금 탓에 출연료가 높아진 ‘스타’ 섭외를 엄두내지 못한다. 비슷비슷한 출연진이 나오는 식상한 내용의 영화ㆍ드라마가 양산돼 ‘한류 붐’이 식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최 변호사는 할리우드 식의 ‘패키지 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매니지먼트사의 자체 제작을 제한하되, 매니지먼트사가 소속 연예인에 작가, 감독을 더해 영화사에 팔고 중개료를 받는 식으로 하면 좋은 기획이 무수히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일정 수준의 정부 ‘개입’이 효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 변호사는 “80년대 미국의 캘리포니아주가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2년여 동안 방대한 연구 끝에 낸 백서를 통한 탤런트 액트(법) 개정이 할리우드 영화산업 발전에 공헌을 했다”며 “사인(私人) 간의 계약에 법률은 최소한의 규제에 그쳐야 하지만, 문화부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는 외국 시장조사와 사례연구 등으로 보다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악, 공연, 게임산업 법 필요성도 만만치 않아”

영화ㆍ드라마 산업 문제만은 아니다. 최 변호사는 “음악, 공연, 게임산업을 비롯해 미비한 법 시스템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음악산업의 경우 정부는 90곡을 다운받는 데 5천 원 수준인 음원 판매료를 오히려 낮추라고 요구한다. 이는 한 곡당 1달러 20센트 정도를 받는 아이튠즈에 비해 형편없는 가격대다. 최 변호사는 “음반 출시를 기점으로 초기와 후기의 음원 판매료를 달리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인 최소한의 정책 제안과 산업발전 유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연산업 역시 창작공연을 기획하는 제작자의 의지를 꺾는 방식의 운영에 대한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게 최 변호사의 생각이다. 실제로 공연기획자인 설도윤 씨가 음악, 안무, 이야기를 기획, 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는 출연자들이 나가서 비슷한 내용의 공연을 한 일이 있다.

제작자에 법적 권한이 거의 주어져 있지 않아 설 씨는 소송에서 졌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유사한 공연이 두 제작자에 의해 올려지고 있다.

게임산업 법제도 역시 매우 후진적인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을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하고 있다. 게임은 ‘사행성’, ‘중독성’ 있는 것으로만 보는 낮은 수준의 이해다.

최 변호사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아이템을 얻어들이는 것은 우연한 행운만 기대하는 사행성과 구분된다”며 “이세돌이나 미셸 위 같은 미성년자가 프로로서 버는 수익은 인정하면서 이들의 활동은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사회적 편견에 따른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개입의 방식은 자율을 통한 창작의지를 원동력으로 하는 연예문화산업에 있어 가급적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최 변호사는 “연예문화산업의 경우 너무 개입을 안해서 문제”라며 “언론에 보도되는 것 외에도 연예문화산업 전반의 분쟁은 지속적 증가 추세”라고 답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