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노재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화가가 주인공 되는 '미술인의 날' 활성화아시아 젊은 작가 위한 대규모 전시와 화가로서의 꿈에 매진

2007년 국내 미술계의 상황은 아찔했다. 연초에 미술대전은 금품수수 혐의로 몸살을 앓았고 경매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다가 9월을 기점으로 곤두박질쳤다. 신정아 사건까지 불거지며 국내 미술시장은 순식간에 길을 잃고 말았다. 작가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 해 초에 당선된 한국미술협회 노재순 이사장은 이러한 짐을 짊어지고 출발해야 했다. 이미 2년을 넘겨 임기를 약 8개월 남기고 있다. 말도, 탈도 많았던 시간을 오롯이 통과하며 작가들의 예술동기를 북돋우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그를 만났다.

“많이 한 것 같은데, 아직 모자라죠.” 그간의 소회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특히, 잡음이 끊이지 않는 미술대전은 아예 독립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못한 게 가장 안타깝죠. 한국미술협회(이하 미협)가 발전하려면 미술대전은 독립시켜야 합니다. 작가를 발굴해서 상을 주고, 그들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고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해야지요. 아마추어 작가 발굴은 미술협회가 아니라 정부가 전적으로 맡거나 공동으로 철저히 관리해야 권위가 살아날 거예요.”

제자를 양성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 놓인 특정 분야의 사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아무리 양심적인 심사위원도 소용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지난 2년간 열심히 뛰어다닌 덕에 초기 ‘미협 이사장’이라고 하면 ‘아, 그 시끄러운 단체’라는 대답은 피할 수 있게 됐다. 노재순 이사장의 발품만큼이나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겨 이제는 문광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미협이 맡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열리는 문화 관련 포럼에서도 미술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는 점도 노 이사장에게 힘을 실어준다.

정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진행 등 성과

미협의 회원은 현재 3만 여명에 육박한다. 회원이 되려면 프로 작가의 경우,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3년간 작품을 발표해야 하고, 아마추어 작가는 9년간 작업활동이 관건이다. 미협은 과거 친목도모의 성격이 강했다면 현재는 정부의 기획과 정책에 적극 참여하고 요구하며 작가들의 대변인이 되었다.

진행 중인 사안이지만 현재 한 지자체와 서울 근교에 창작촌을 만들어 작가들에게 싸게 분양하자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미협의 수원지부는 수원미술관의 위탁운영을 맡고 있고 부산 비엔날레의 바다미술제도 부산지부에서 만들었다. 미술계 발전에 작가들이 몸소 뛰고 있다.

노재순 이사장이 당선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미술인의 날’ 제정이었다. 문학, 연극, 무용,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각종 시상식으로 예술혼을 북돋고 있는데 미술 분야에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올해로 3회를 맞는 미술인의 날은 작가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예전부터 화가들에게 기념될 만한 날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만든 날이지만 젊은 작가 발굴도 있겠지만 한 평생 미술계를 위해 애쓰신 분들을 위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매년 12월 5일은 한국에서만큼은 미술인의 날이다. 첫 해에는 추천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다행히 다들 좋은 작가들이었다.

“2회부터 추천이 많이 늘었습니다. 선정되었는데, 상을 안 받겠다고 하시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박서보 선생님이나 오광수 선생님도 흔쾌히 받는다고 하셔서 다행이다 싶었지요. 김흥수 선생님과 윤영자 선생님은 링겔을 맞고 시상식에 참석하셨어요.” 지난 2회 시상식이 모두 성황리에 치러졌다.

작가를 위한 ‘올해의 미술인상’은 물론 해외작가상 외에도 미술 발전에 힘써온 후원자들을 위한 미술문화공로상 등이 있다. 이들 외에 특별상으로 김흥수 화백이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를 대상으로 제정한 ‘김흥수 우리미술상’도 있다. 김흥수 화백이 직접 시상하는 이 상은 지난해부터 시작되었다.

“올해에도 특별상이 몇 개 더 생길 것 같아요. 본상의 다섯 부문 중 청년 작가상은 알파색채에서 지원하기로 하셨습니다. 70년대에 알파색채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다가 이번에 부활하게 된 거지요. 앞으로도 이런 상은 계속해서 맡으려고 합니다.”

시상식이 분산되면서 추가 발생하는 비용과 에너지를 줄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공정성을 잃는 순간 폐지되어야 한다”고 단정하는 그의 말에서는 ‘올해의 미술인상’에 담아내는 각별한 의미와 의지가 읽혔다.

젊은 작가 위한 ‘아시아의 혼’을 서울에서

“최근에 열린 서울오픈아트페어에 다녀왔어요. 연예인들의 작품 출품도 눈길을 끌었고 경영인들도 많이 왔더군요. 과거에 영화나 음악에 대한 지원이 많았다면 앞으로는 미술계 지원이 늘지 않을까 싶어요.”

LG전자에서 ‘꽃의 화가’ 하상림 작가의 작품을 응용한 사례를 언급한 그는 “디자인 아닌 순수 아티스트의 작품이 상품과 접목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기업전략이 될 수 있다”며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작가가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 아트페어에 참여할 때조차 자비로 직접 작품을 운송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방글라데시 비엔날레는 역사가 꽤 오래되었고 출품작도 훌륭하죠. 어떤 분이 전화가 왔어요. 그곳에 출품된 우리 작가 작품이 창피해서 못 보겠다더군요. 작품이 작고 볼품이 없어 화장실 입구 쪽에 걸려 있더랍니다. 선발권은 미협에 있어서 선발하면 작가 자비를 들여야 하니 운송비 때문에 큰 작품은 도무지 가져갈 수가 없는 거죠.”

한번은 일본 전시에 가는데, 다른 아시아권 작가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작품을 따로 운송했지만 한국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주렁주렁 손으로 들고 가야했다. “해외에 우리의 문화를 소개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하다”고 그는 말했다.

경기도에서 백남준아트센터를 지을 때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백남준의 아트센터를 짓는 것보다 미래의 100인의 백남준을 위해 예산을 쓰는 것이 어떠냐’고 거침없이 말했던 그다.

서울오픈아트페어를 보면서도 마냥 흐뭇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최근 국내 젊은 작가들에게선 중국 작풍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5년이나 10년 후에 또 다시 트렌드가 바뀌면 그때 살아남을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요? 일본의 한 저명 미술인사도 한국 작가들의 시류에 휩쓸리는 작품에 실망했다고 하더군요.”

자신 역시 화가이기도 한 노 이사장은 젊은 작가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꾸준히 작품 세계를 이어나갈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니, 당장 팔기 위한 작품을 그리는 젊은 작가들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을 위한 대규모 전시를 했으면 합니다. 베트남 하노이에 가보니, 공산주의 안에서 프랑스 영향 받아 추상미술 하는 뛰어난 작가들이 많아요. 또 중국의 송장에도 훌륭한 작가가 많지요. 한국에도 재기 넘치는 작가들까지 서울에서 소개하는 겁니다. 피카소 옆에 무명의 젊은 작가의 그림을 거는 건 공정하지 않아요. 아시아의 신진작가들을 세계의 화상들이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그가 미협을 맡고 나서부터 ‘서울에서 비엔날레 해야지’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광주와 부산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로 그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 아시아의 젊은 작가전을 서울에서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시아의 혼(魂)’이라는 부제도 이미 정해놓았다. 실행하기까지 남은 임기는 너무나 짧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는 새로운 이사장이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그는 재임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했다.

“행정가도 좋지만 화가로서의 꿈에 매진해보고 싶다”는 그는 “그만둘 즈음에는 열심히 뛰어 다니며 노력한 사람이다”라는 평이면 충분하다고 말을 줄인다.

한국미술협회 노재순 이사장은...


1950년 충남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20회의 개인전을 비롯해 '대한민국 금일의 미술전'(1983), 소피아 트리에날레(1986), KIAF-한국국제아트페어(2005), 한중 현대미술초대전(200), 한국 베트남 현대미술교류전(2008) 등 30여 차례의 국제전과 단체전에 작품을 출품한 서양화가이다.

한국미술협회 상임이사,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나혜석 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안견 미술대전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21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자 한국예총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